만화 <영심이>를 보면 이런 노래가 나온다. “하나면 하나지 둘은 아니야, 둘이면 둘이지 셋은 아니야.” 그토록 명백한 숫자의 세계라니. 이 차트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바도 같다. “1위면 1위지 2위 아니야, 5위면 5위지 10위 아니야.” 명명백백 숫자로부터 우리를 둘러싼 ‘지금’을 가차없이 정렬했다.
페터 춤토르의 작품은 아직까지 한국에 없다. 그의 건축은 시와 같다. 이제 서울엔 그렇게 절제된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만약 그의 건물이 지어진다면 서울에도 새로운 건축철학의 시작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할 수 있다면, 프로젝트는 이미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녔을 테다. 알바로 시자는 국내에서 몇개의 작품을 했다. 그의 건물은 항상 감동을 주었다. 지금 서울에 있는 주거 공간엔 감동이 필요하다. 그가 설계한 주택이 서울에 있다면 보는 것만으도 행복할 것 같다. 한편 존 파우슨은 건축계의 금욕주의자다. 욕망의 도시 서울에 욕구를 거세한 집이 들어선다면 어떤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런 충돌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은 더욱 흥미로운 도시가 될 것이다. 마에다 케이스케는 일본의 젊은 건축가다. 그는 아주 단순한 ‘박스’ 집으로 자연을 끌어오는 솜씨가 일품이다. 서울에 남은 몇몇의 자연 경관 옆에 굳이 뭔가를 지어야 한다면 그의 손길이 필요해 보인다. 알베르토 칼라치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멕시코의 대표 건축가다. 그는 공간을 정말 화려하게 다룬다. 멕시코에서 그의 작품인 Mr. Black의 집을 보고 놀라 자빠졌다. 지금 서울엔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해 보인다. 장영철(와이즈 건축 소장)
자동으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름은 이경규다. ‘존경’의 의미를 넘어 정말 본능적인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2위 신동엽은 왜, 어떻게,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기막히게 안다. 엇비슷한 얘기들에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안 지쳐. 대본 주고 돈 주면 돼. 돈을 여섯 번 주면 여섯 번 모두 다르게 웃길 수 있어.” 진짜 프로페셔널 아닌가. 3위는 정태호와 김영희다. 요즘 둘이 너무 예쁘다. 4위는 이영자.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보면 “왜 봐요?” 라는 말로 웃길 수 있는 여자가 이영자다. 옛날에 부모님을 도와 생선을 팔 때도. “아저씨, 생선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묻고는 생선이 좋다고 하면,”그럼 좀 사가요” 해서 생선을 다 팔아치웠다는 여자다. 무섭지 않냐고들 하는데, 공복인지, 포만 상태인지만 알면 된다. 5위는 김준호. 김준호는 민망하면 혼자 웃는데, 오랫동안 봐온 동료로서 그 표정이 참 재밌고 좋다. 무엇보다 김준호는 연기를 잘한다. 어떨 땐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연기를 한다. 후보권을 살펴보면 김희애가 있다. 이제 내가 흉내 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힐링캠프>를 보니 김희애가 김영철 흉내를 내던데? 김영철(개그맨)
칼 라거펠트가 주위에서 박수를 받을 때 샤넬에서 명예 은퇴하고, 여러 소문의 후보 대신 피비 파일로가 후임이 된다면? 샤넬이야말로 여자가 만들고 여자만 입어야 할 브랜드니까.(요샌 남자들도 입어 영 못마땅하다.) 남자 속옷 옷감을 일자로 길쭉하게 재단해 그 위에 진주 목걸이를 치렁치렁 걸었던 희대의 샤넬 룩을 피비가 21세기적으로 디자인한다면! 셀린의 대성공이라면 명분은 차고 넘친다. 2위은 헬무트 랭. 그는 예술혼만 불태우며 패션계로 다신 안 돌아갈 거라 맹세했다. 패션과 유행을 넘어 하나의 현상과 사조가 된 헬무트 랭은 역시 그가 아니면 안 되는 듯하다. 2005년 은퇴 후, 현재로선 전형적인 미국 내셔널 브랜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루이즈 부르주아, 제니 홀저를 패션에 끌어들여 살갗을 벨 듯한 ‘랭이즘’을 다시 보여주기를! 3위는 마르탱 마르지엘라다. 자기 이름으로 만든 브랜드에서 나간 그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마르지엘라가 질 샌더라는 숭고한 미니멀리즘에 거룩한 아방가르드를 곁들여주기를 바랄 뿐. 4위는 공동 수상이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새 컬렉션을 발표하기 무섭게 거의 맨 먼저 ‘신상’을 사 입는 두 남자가 있으니, 한 명은 마크 제이콥스요, 다른 한 사람은 라프 시몬스다. 심지어 마크는 프라다 여성복 차림으로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라프는 남성복 디자이너 출신답게 프라다 남성복을 빼 입은 채 디올 패션쇼 피날레에 인사하러 나온다. 미우치아가 눈 딱 감고 못 이기는 척하며 두 남자에게 자리 하나씩 내준다면 어떨지. 한편 5위는 카린 로이펠드다. 아사 직전의 파리 <보그>를 가장 영감 넘치는 잡지로 만들 무렵, 미국 <보그> 편집장을 그녀가 차지할 거란 소문이 돈 적 있다. 괴소문이라며 펄쩍 뛰었지만, 파리 <보그> 10년을 마친 뒤 뉴욕으로 일터를 옮겼다. 거기서 패션지
신사동 언덕 위 앙드레김 매장은 여전히 화려하다. 그는 패션계가 (상대적으로) 덜 언급하는 디자이너였지만, 수십 년간 자신만의 ‘동일한’ 창작을 했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누군가에겐 불통처럼 보인 그의 소통은 사실 서울, 아니 이 나라의 커다란 단면 같다. 이명신은 이십 대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고급 패션과 소비 지향의 패스트 패션 사이에서 허둥거리는 서울의 패션에 로 클래식은 하나의 균형이다. 옥근남은 한결같이 스케이트보드 문화만 파고든다. 소위 ‘스트리트 패션’을 한다는 디자이너 중 그만큼 ‘서울 거리’를 녹여내는 이는 없다. 모든 게 휙 바뀌는 빠른 도시, 박윤수는 청담동을 위시한 패션 문화의 시작을 함께한 디자이너다. 말하자면, 지금 한남동과 서촌이 붐비기 전, 청담동의 영화榮華가 박윤수의 옷에 축적되어 있다. 송자인의 옷에 는 정적이 흐른다. 조용한 강북 어느 골목 같은 무드가 있달까? 홍석우( <스펙트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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