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기반 인기 식당 분석을 통해 맛집의 배경을 들여다보았다. 폭격처럼 쏟아지는 콘텐츠 사이에서 ‘맛집’을 찾을 길이 스친다.
몇 달 전 어느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제작 의뢰가 왔다. 시대의 흐름과 관계가 있었다. 21세기 플랫폼 기업의 수익 모델은 항구적 수수료 징수다. 플랫폼 구축의 최종 목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쥐덫 같은 걸 쳐서 개인 고객과 고객사의 돈과 시간을 계속 빼가는 것이다. 요즘 그렇게들 부르짖는 ‘콘텐츠’는 그 쥐덫 안의 미끼 중 하나다. 나는 미끼 납품업자의 기분으로 미팅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 의뢰는 무척 흥미로웠다. 클라이언트는 음식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 회사는 대규모 식당 매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사 데이터를 활용한 음식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 데이터를 활용해 동네의 맛있는 집을 찾고 그에 대한 기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수요미식회>나 <한국인의 밥상>이나 <VJ특공대>에 안 나가도, ‘최자로드’에 나올 만큼의 술안주가 아니어도, 깨끗하고 정직하고 소박한 식당이 있을 테니, 그런 식당을 찾아서 소개해보자고 했다.
데이터를 활용해 맛있는 집을 찾는다는 건 합리적인 논리로 보이지만, 이 논리가 기능하려면 먼저 증명되어야 하는 가설이 있다. ‘품질이 좋다면 어떻게든 인정받는다’이다. 기분 좋은 가설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서 통하지는 않음을, 어른이 된다면 깨닫게 된다. 데이터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데이터를 보니 매출이 높은 가게들은 거의 예외 없이 프랜차이즈 업체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정말 프랜차이즈 국가였다. 프랜차이즈는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가 보장되나 개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으려나 싶었다.
데이터를 계속 보다 보니 의외의 사례가 잡히기 시작했다.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데 의외로 실적이 도드라지는 집들이 가끔 보였다.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방송에 나온 적도 없고, 파워 블로거 리뷰도 별로 없는데, 매출 성적이 좋은 수수께끼 같은 가게들이 구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어떤 가게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가을 어느 날 월계동 장수국수를 찾아갔다. 광운대 정문 앞 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 2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홀 영업을 멈췄다. 나중에 물어보니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데다 근처에 사랑제일교회까지 있어 잠깐 홀 손님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 안에서 본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기분 좋은 가을 햇살 사이에서, 텅 빈 홀 안에 배달 앱의 주문 신호만 울리고, 헬멧을 쓴 라이더만 드론처럼 물건을 받아갔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을 그려도 손색이 없었다. 제목은 ‘21세기의 음식 공장화된 식당 풍경’.
취재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으니 음식을 직접 먹어봐야 했다. 포장 주문해서 광운대 앞 계단에 앉아 비빔국수를 먹어보았다. 어, 정말 맛있었다. 국수를 삶고 식힌 정도, 비빔국수 양념장의 단맛과 매운맛과 신맛의 정도, 따로 챙겨준 국물의 진한 정도와 감칠맛의 정도, 모두 적당했고 의도가 있었으며 부자재가 모두 신선했다. 이런 식당이 장사가 잘된다면 정말 시장과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후 가서 먹어본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공릉동에는 호텔 셰프 경력의 대표가 운영하는 버거집 루이스 버거가 있다. 이곳도 가서 먹어보니 동네 버거집 이상의 품질이었고, 역시 동네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버거를 사 먹고 있었다. 샤넬 백을 메고 집에 가는 길에 들른 듯한 여성이 햄버거를 사 가고, 그 옆에서는 이 동네에 사는 듯한 백인 네 명이 모여 앉아 햄버거를 먹었다.
나를 비롯해 남들 보는 걸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는 좋은 걸 만드는데 세상이 몰라준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식당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실적 데이터는 정직하다. 브랜드 파워든 마케팅 규모든, 시장에서의 성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맛이 성공의 유일한 비결이라는 주장은 순진한 발상이다. 다만 수준 높은 맛을 계속 유지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성공한다. 나는 데이터에 입각해 발로 직접 다니고 입으로 먹으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식당들을 다니며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도곡동의 정성만 김밥은 라면 하나를 끓일 때도 자체 육수를 쓴다. 이대 앞에는 뉴욕주에서 유태인을 상대로 베이글집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뉴욕 레시피로 베이글을 굽는 마더린러 베이글이 있다. 도곡동은 외지인이 많이 가는 동네가 아니다. 지금 이대 앞은 90년대에 비하면 사막화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권 자체가 사라졌다. 그 안에서도 그런 가게들은 잘되고 있는 걸, 숫자로 보고 내 눈으로 한번 더 보았다. 먹어보니 역시 맛있었고, 팬데믹 상황에서도 그런 가게에서는 계속 배달 앱의 효과음이 울리고 있었다.
홀이 깨끗했다. 프랜차이즈 사이에서 성적을 내는 가게의 공통점이었다. 수저통 같은 걸 만졌을 때 찐득거리는 느낌이 없었다. 카운터 뒤로 보이는 부엌도 청결도가 보일 만큼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이건 돈이나 업계 사정을 뛰어넘는 정성과 태도의 문제였다. 관악구는 ‘배달 음식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1인 가구의 배달 수요가 높다. 이 동네의 우수 업소는 거의 서민적인 식당이고, 99.99퍼센트 프랜차이즈 혹은 음식 공장 같은 배달 전용 식당이다. 그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프랜차이즈나 음식 공장이 아닌데 실적이 좋은 곳이 있었다. 고시촌 정류장 근처 포도나무 김밥. 이곳도 가서 먹어보니 역시 깨끗했다. 깨끗한 식당에서 믿을 수 있는 맛이 나오고, 믿을 수 있는 맛이 나오면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적어두면 간단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생존의 상식이다.
나도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읽을거리를 만들고 싶었다. 곳곳에 콘텐츠가 넘치지만 막상 열어보면 현실은 환상보다 훨씬 지저분하다. 대부분의 콘텐츠는 관찰은 없고 평가만 있다. 기준은 없고 추종만 있다. 정보를 가장한 광고도 많다.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오염되지 않은 정보를 얻기 위해 자꾸 노력해야 한다. ‘오빠 맛집’ 같은 검색어를 쓰면 진짜 데이트 식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그러면 전문 리뷰어들이 ‘오빠 맛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홍보 포스팅을 올린다. 정보를 찾는 사람과 광고를 넣는 사람끼리의 눈치싸움이 계속될수록 소비자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오염된 물이 나오는 곳에서는 깨끗한 물을 찾아 먼 곳의 우물까지 가야 하듯.
독자가 헤맬 필요가 없는 정보를 만들고 싶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식당은 아니어도, 집 근처에서 정직하게 음식을 만드는 식당은 누구에게나 좋은 장소다. 누구에게나 좋은 곳을 알릴 수 있다면 클라이언트의 기업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에게도 유용할 거고,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가시는 소규모 업자들께 힘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걸 만드는 나의 보람도 클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팀을 꾸려서 계약에 성공했다.
이 기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팅을 거쳐 일정표를 만들고 샘플 콘텐츠까지 나왔는데 클라이언트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그래도 이 모든 경험은 큰 의미가 있었다. ‘좋은 것의 이유를 설명한다’는 모델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론칭에는 실패했으나 실무 담당자와 팀원들이 이 프로젝트를 좋아해주었다고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신호다. 세상은 한 번에 변하지 않고, 좋은 것일수록 한 번에 뿌리내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걸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글
- 박찬용( 저자)
- 이미지
-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