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미국 신사들은 턱시도를 입는 사교 모임을 열었다. 랄프 로렌은 그때부터 턱시도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카우보이 타이를 맸다. 랄프 로렌에게 패션이란 사립학교 교복처럼 엄숙하거나 규칙을 엄수하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랄프 로렌은 명랑함을 즐긴다. ‘아메리칸 클래식’이라는 패션에 관해선 더욱 그렇다. 그리고 아메리칸 클래식의 교본이 된 그를 인터뷰했다.
제일 먼저 디자인한 게 넥타이였다고 들었다. 1967년에 만든 그 넥타이가 궁금하다.
당시 정통이라고 불리던 2인치 넥타이와는 다르게, 현란한 무늬의 천으로 폭이 넓은 넥타이를 만들었다. 30년대 영화와 잡지, 그리고 윈저 공이 이와 비슷한 넥타이를 한 걸 봤는데, 폭이 넓은 타이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그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말도 안 되게 비좁은 사무실을 얻어 놓고, 청바지와 낡은 보머 재킷 차림에 폭 넓은 넥타이를 매고 낡은 녹색 모르간 스포츠카를 운전해서 직접 타이 배달을 다녔다.
랄프 로렌이란 브랜드가 40년이 넘었다. 그간 당신이 패션에 이룬 ‘혁신’ 은 어떤 것들일까?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기 이전에, 옷을 통해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다. 폭 넓은 타이, 넓은 옷깃과 사이드 벤트가 달린 수트 등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은 명확했다. 물론 남자라서 다른 남자들이 뭘 입길 원하는지 이해하는 것도 쉬웠다.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에 납품한 타이가 큰 인기를 얻은 후, 남자용 셔츠와 수트를 디자인했고, 그 다음엔 여성복에 도전했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아동복을, 그리고 자연스럽게 홈 컬렉션으로 넓혀갔다. 난 항상 나와 내 가족의 삶에 필요한 것들에 관해서 직감을 쫓아 행동하는 편이다.
랄프 로렌은 남자들에게 ‘아메리칸 클래식’ 스타일의 지침서다. 디자이너 로서, ‘아메리칸 클래식’의 미래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대학 시절엔 블레이저, 학교문장 장식, 렙 타이와 새들 슈즈처럼 클래식한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좋아했고, 서부로 옮겨간 후엔 실용성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떴다. 난 항상 ‘아메리칸 드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해진 모자, 부츠, 청바지와 작업복 셔츠는 카우보이의 삶이자 일의 한 부분이었다. 난 어떤 용도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옷이 좋다. 그런 게 미국 패션의 진짜 뿌리이고,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통해 옷을 만들어 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믿는 비전은 변함없다. 내가 그랬듯이 ‘아메리칸 클래식’의 차세대 디자이너들도 그들만의 비전을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누구든 간에 말이다.
폴로 로고는 카피도 많이 됐고,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한 상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폴로 로고를 랄프 로렌의 얼굴로 선택했을 때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야구나 농구도 고려했었다. 난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폴로는 격식을 차리지 않는 느긋함과 고상함을 보여 준다. ‘스포티’하고 ‘스타일리시’하다는 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폴로 선수 로고는 남자의 일상을 상징한다.
세월이 바뀌어도 아름다운 건 뭐가 있을까? 랄프 로렌의 ‘클래식’ 목록을 작성한다면 말이다.
첫 순위는 빈티지 자동차다. 어렸을 땐 아버지의 폰티악에 반했다. 형 둘과 누나 한 명을 둔 막내라서 그 차를 운전하려면 차례를 한참 기다려야 했지만. 빈티지 자동차엔 디자인과 기술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기능적이면서도 각각의 개성과 소리와 느낌이 있는 게 예술과도 같다. 같은 이유로 빈티지 시계와 유틸리티 시계도 좋아한다. 로맨스 영화들, 특히 30년대 로맨스 영화 속 인물들은 강하지만 매력적이고 자꾸 봐도 질리지 않는다. 콜 포터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들도 목록에 넣겠다. 이 모든 것들엔 공통점이 있다. 세대와 시간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랄프 로렌다운 남자란 어떤 사람인까?
자신감을 가진 남자들한텐 끌릴 수밖에 없다. 그런 남자라면 뭐든 자신이 원하는 걸 입을 수 있고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옷을 입는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남자는 그날의 역할에 맞는 옷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몇 년 전 뉴욕에서 랄프 로렌 여성복 패션쇼를 봤다. 그때 카우보이 모자를 쓴 여자도 우아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난 컨버터블 카에서 휘날리는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좋아한다. 여성복을 처음 디자인하면서, 자연스러운 여자를 생각했다. 두꺼운 메이크업이나 하이힐은 싫었다. 청바지에 소매를 걷어올린 흰 셔츠와 남자친구의 재킷을 입는 여자가 매력적이다. 그런 여자가 나와 결혼한 리키다.
그렇다면 랄프 로렌 여성복은 리키 스타일인 셈인 건가.
만난 지 얼마 안됐을 때, 리키와 승마복 가게엘 간 적이 있다. 그때 리키에게 남자용 트위드 승마복을 사줬는데 다들 어디서 샀는지 난리였다. 그때 여성복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 스타일이 좋았다. 몇 년 동안 여자들에게 여러 종류의 검정 타이를 스타일링했다. 청바지나 치마, 위에는 징 장식의 모터사이클 점퍼와 베레모를 조합했다. 내게 섹시한 여자란 드레스가 아니라 턱시도를 입은 여자다.
남성복과 여성복, 아동복, 스포츠와 피트니스 라인, 향수, 게다가 80년대엔 홈 컬렉션, 90년대엔 랄프 로렌 라벨을 단 페인트도 나왔다. 그래서인지 ‘랄프 로렌’하면 한 벌의 옷이 아니라,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인 하나의 집이 연상된다.
내 사무실은 커다란 스크랩북 같다. 아이들이 그려준 그림, 모델 카, 흑백 사진, 예술이나 자동차나 미국 서부에 관한 책,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테디베어라든지 거대한 나무 테니스 라켓 같은 소중한 선물들… 거기엔 내가 사랑하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요즘 세계는 환경 오염이나 사회 환원에 관심이 많다. 랄프 로렌이 실천하는 건 무엇인가? 아, 유방암을 위한 핑크 포니 캠페인이 기억난다.
만약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거나 함께 얘기할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초라해진다. 난 15년 넘게 암과 싸우는 데 헌신했다. 랄프 로렌 암 관리 센터는 랄프 로렌 사회 환원 프로그램의 중요한 기반이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와 공동으로 할렘가에 암 센터를 세우고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성장盛粧을 할 땐 무엇에 중점을 둬서 입는가?
어떤 날은 수트를, 또 어떤 날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옷으로 실험하고 규칙을 깨는 게 재미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사치가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직장이나 사회 통념에 도전장을 내밀 것까지야 없지만 취향을 표현할 줄은 알아야 한다. 정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수트의 컷, 셔츠의 무늬, 타이로 충분치 않나.
패션쇼 피날레마다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차림으로 나오던데, 랄프 로렌의 일상복은 어떤가?
내겐 평범한 날이란 없다. 매일 아침 그날을 어떻게 보낼지, 내가 하루 동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 생각한다. 어떤 날은 핀스트라이프 맞춤 수트를 입고 어떤 날은 오래된 모직 조끼에 닳아 해진 가죽 바지를 입는다. 아래위 모두 검정으로 통일하거나 운동용 바지와 스웨트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 날도 있다. 옷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역할에 몰입하게 하고 또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조합의 비결을 부탁한다.
뭔가 모순되고 예기치 않은 요소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아내인 리키와 내가 정중하게 입어야 하는 ‘블랙 타이’모임에 초대받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턱시도로 쫙 빼입는게 정말 싫었다. 내 정체성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 그래서 턱시도 재킷에 청바지나 부츠를 조합하거나 웨스턴풍의 셔츠에 카우보이 타이를 매곤 했다.
랄프 로렌을 디자인하기 전부터 아끼던 패션 아이템은 무엇인가?
브롱크스에서 살던 어린 시절, 동네 상점 윈도에 전시된 파란색 스웨이드 구두를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그 구두를 너무 갖고 싶었지만 살 돈이 없어서 생일이 되기만 기다렸었다. 난 지금도 숍 윈도 앞에 서 있는 소년 같다. 흥분과 손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젠 파란 스웨이드 구두 대신,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다.
요즘 한국에선 F.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 작가들의 책이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피츠제럴드와 관련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과 스타일, 특히 개츠비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은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초창기부터 많은 영감을 줬다. 1974년, 그의 소설을 영화화했을 때 난 로버트 레드포드를 위해 특별히 분홍 수트를 디자인하고, 폴로의 남성복들로 영화 속 패션을 완성했다. 이후 영화 속‘ 개츠비 룩’은 당시v남자들의 옷차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패션 디자이너인 나에게도 끊임없이 영향을 줬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영화, 동경하는 영웅들은 언제라도 큰 영감을 준다. 피츠제럴드가 그렇고 조 디마지오, 프랭크 시나트라, 게리 그랜트, JFK, 프레드 아스테어도 그렇다.
그 시절을 모르지만 궁금해하는, 지금 ‘폴로 스포츠’를 입고 자라는 젊은세대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게 있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느끼고 스스로를 믿어보라는 것.
만약 앞으로 남은 인생에 오로지 단 한 번만 쇼핑이 가능한 상황이 온다고 치자. 당신은 뭘 택할까?
어렸을 때 내가 사랑에 빠졌던 파란 스웨이드 구두처럼, 지금도 나를 매혹시키는 것들은 많다. 낡고 찌그러진 픽업트럭일 수도, 오래된 트위드 재킷이거나 시계가 될 수도 있다. 뉴욕매디슨 가에 랄프 로렌의 첫 번째 매장을 열었을 때, 그곳은 내가 디자이너로서 말해왔던 모든 것들을 축약해 놓은 꿈의 장소였다. 나는 사람들이 그 매장에서 멋지고 안락한 가정을 방문한 것 같은 경험을 하길, 그리고 그 공간을 통해 옷으로 삶의 방식을 표현하길 바랐다. 그건 한 남자가 꼭 소유해야만 하는 아이템에 관한 게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의미 있는 삶에 관한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에 따라 필요한 패션 아이템이 다를 거다.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나이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은 뭔가?
남자는 넥타이 하나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넥타이라면 그 남자의 수준과 카리스마, 개성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사회 정책이 있나? 미국 패션계를 이끄는 당신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얼 기대하나?
오바마 대통령은 근면, 정직, 자유와 독립이 통합된 미국의 전통 위에 뿌리 내린 긍정의 힘과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와 그의 어린 자녀들은 백악관이란 상징물을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살아있고 숨쉬는 하나의 가정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 공간에 필요한 게 있다면 활발한 애완견이다.
<랄프 로렌의 진짜 옷 입기>
40년이 넘는 세월을 남자들의 클래식을 정리하는 데 보낸 남자, 랄프 로렌의 옷 입는 비법은 이렇다.
인생의 첫 수트 16세에 브룩스 브라더스 재킷을 처음 샀다. “브룩스 브라더스를 사랑했다. 브룩스 브라더스의 전통을 말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랄프 로렌은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매장에서 일했다. 손님들은 브룩스 스타일로 입길 원했는데, 그들의 취향은 크게 4가지 스타일 정도였다. 그건 좀 지루해 보였다. 그래서 영국 남자들의 수트에 끌리게 됐다. 어느 날 더글라스 페어뱅크 주니어란 남자를 보고, 랄프 로렌은 사이드 벤트가 들어간 스트라이프 수트에 반했다. 그가 찾던 스타일이었다.
옷도 숙성된다 랄프 로렌은 절대로 옷을 버리지 않는다. 그게 20년이 넘은 셔츠든 청바지든 말이다. 그건 옷을 수집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보기에 좋으니까 갖고 있는 것이다.
규칙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입어야 되지?’하고 패션에 관해 겁을 먹는다. 랄프 로렌에겐 옷 입는 데 규칙이 없다. 원할 땐 언제라도 흰색으로 빼입는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이 남자를 가장 멋져 보이게 하느냐’이다.
청바지 예나 지금이나 랄프 로렌은 오래된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낡은 청바지는 어느 날 갑자기 유행하게 됐다. 어떤 사람은 이런 청바지를 내다 버린다. 반면에, 누군가는 그걸 찾아다 5배가 넘는 가격으로 되판다. “난 그게 너무 좋다.”
일상의 수트 “수트엔 아무런 감흥이 없다고 생각지 말라. 핏이 어떤가, 어떤 컷으로 되어 있고, 그 수트가 주는 느낌은 어떤가를 생각해 보자. ”
좁은 옷 랄프 로렌은 폭이 좁은 청바지를 좋아한다. “한때는 넓게 입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헐렁한 옷을 입으면 누구나 작아 보인다. 그런 청바지가 잘 어울리려면 키가 190cm는 돼야 한다.”
시대 불변 랄프 로렌에겐 목표가 있다. 절대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입는 것. 빈티지랄프 로렌도 쇼핑을 하긴 할까? 물론이다. “모터사이클 재킷이나 사파리 재킷을 산다. 그리고 그것에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난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 아니면 그런 것들의 개념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빈티지의 매력은 혼합이다. 단순히 오래된 옷을 입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오래된 가죽 재킷을 입었을 때, 다른 어떤 옷과도 멋지게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넥타이 “난 이제 더 이상 패턴이 들어간 타이는 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무늬가 들어간 타이를 맨 남자를 보면, 전혀 느껴지는 게 없다.”
모자는 뺀다 스무 살의 랄프 로렌은 트위드 재킷에 가방을 둘러메고,뉴저지 교외에 있는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타이를 팔았다. 어떤 가게에서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자는 어디 있어요?” 랄프 로렌이 “모자는 잘 쓰지 않는데요”라고 말하자, 그 남자는 “그렇담 난 당신 물건을 못 사겠어요. 당신이 내가 하는 걸 지지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이 하는 걸 지지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 남자는 랄프 로렌이 모자 없이 가게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음 번엔 모자를 들고 갔다. 쓰지는 않았다.
- 에디터
- 박정혜
- 포토그래퍼
- 애니 리보비츠(Annie Leibov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