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사색을 향한 목마름을 안고, 한 발을 내딛으면 다른 발을 뻗는 반사 신경에만 의존한 채 걷고 걸었다. 미지의 세계, 케냐 로이타 힐스에서의 일이다.
흑백사진 속 풍경만큼이나 색이 없는 새벽. 어디가 지평선인지 경계를 알 수 없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안개. 우리는 바로 어젯밤에 아카시아와 야생 포도나무로 둘러싸인 이 숲에 텐트를 쳤다.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나무들, 그중 어떤 것들은 1백 피트가 넘고 그 끝을 볼 수도 없다. 다음 날 아침, 처음에는 나무가 모두 사라진 줄 알았다. 나는 홀리듯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숲이 있던 것 같은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자 유령 같은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선명해졌다. 이 지역에 사는 마사이족은 이곳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숲”이라고 부른다. 그 명명의 연유를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날 아침 풍경을 떠올려보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곳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에 걸친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Great Rift Valley의 서쪽 끝, 로이타 힐스 Loita hills다. 마사이 부족과 함께 며칠간 걷기 여행을 하기로 한 곳이다. 엔타세케라 Entasekera 교역소에서 멀지 않은 올 레이저 밸리 Ol Laser Valley에서 시작해 느구루만 Nguruman 절벽을 가로질러 케냐 남부 호수 마가디호와 탄자니아 북부 호수 나트론호 사이 건조한 평원까지, 짧은 경사로와 긴 언덕을 포함하는 경로다.
로이타 힐스에 오고 싶었던 이유에는 어느 정도 감상적인 면이 있다. 내 아내는 케냐인이다. 아내와 나는 근 20년 간 이 지역을 드나들었다. 아내의 조부모님이자 영국의 고고학자인 루이스 리케이 Louis Leakey와 마리 부부는 이 지역-언덕 위가 아닌 평야 아래, 양국의 국경에 걸친 지역-에서 인류 진화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을 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부족이 거주한다. 케냐를 떠올리면 나이로비 남쪽으로 뻗은 마사이 랜드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서쪽의 마사이 마라 Maasai Mara와 동쪽의 암보셀리 Amboseli는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이지만, 그 사이를 가르듯 복도처럼 생긴 이 지역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넓은 평원인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는 엄청나게 뜨겁다. 그곳에서 솟아오른 언덕은 숲이 우거져 접근하기 어렵고 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인내심과 의지를 갖고 극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상당하다. 그곳에는 특히 내가 아주 사랑하는 특별한 먼지가 있다. 그 곱고 미세하면서 기분 좋은 향…. 나는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 내게는 이 나라 전체가 그 먼지의 향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멈춰 서서 일부러 발을 툭툭 쳐 약간의 흙먼지를 일으킨 다음 그 고운 가루들이 내 부츠 위에 가만히 내려앉는 것을 지켜본다.
케냐 지역 대부분은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에 비해 알아볼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이 변했다. 나이로비 일부 지역은 올 때마다 새로울 정도다. 그러나 로이타 힐스에는 육안으로 구분할 만한 변화는 거의 없다. 약 50년 전에 작가 피터 매티슨 Peter Matthiessen이 책 <The Tree Where Man Was Born>에 로이타 힐스에 대해 쓰길 “길이 없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희망과 순수의 아프리카 대서사시” 라고 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곳은 여전히 길이 없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환경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마사이족을 제외하고는.
올 레이저 밸리의 무성한 그늘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야생동물이나 마사이 소들이 주로 서식하는 길을 따라갔다. 그러다 길이 없을 때는 날이 긴 낫으로 낮은 가지를 쳐내고 덤불을 치워가며 길을 만들어 나아갔다. 이 지역의 풍경과 케냐 타 지역의 좀 더 익숙한 풍경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완만한 평야 라이피키아 고원 Laikipia Plateau에선 끝없이 펼쳐진 하늘 아래, 수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곳의 날씨가 변하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엄청나게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로이타 힐스에 대한 가장 강한 인상은 혼잡과 폐쇄다. 좁다는 의미가 아니라, 극도의 빽빽함과 수직 방향의 압력이 느껴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거진 숲에는 틈이 너무 적어서, 초고층 건물 떼가 해를 가려 낮에도 어두운 맨해튼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두드러지는 의상과 장신구 덕분에라도 아마 마사이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족일 것이다. 그들은 마치 시간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듯 변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른 약 40개의 케냐 지역 부족이 식민지 이후 또는 독립 이후 상황에 적응해가는 동안 마사이족은 대체로 그렇지 않은 편이었다. 19세기 중후반에 마사이족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대부분을 따라 북쪽과 남쪽으로, 그리고 간헐적으로 극동 지역인 스와힐리 해안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이때가 부족의 최전성기였다. 20세기 초, 식민지 세력과의 협정 이후 그들의 영토는 5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 쇠락은 이후 다양한 형태의 세분화와 토지 사용의 변화를 거치며 더욱 악화됐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집단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가치관이 옮겨간 건 특별히 마사이족에게만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마사이족이 확고하게 추구하는 세미 노마딕, 즉 절충적 유목 생활 형태의 목축업도 극심하게 어려워졌다.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이었고, 토지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공동 자원이었던 사람들에게 이 변화가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심각했다.
마사이족의 이런 문제는 예측 가능하게도 모든 마사이 마라 지역 중에서 국제적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고, 그중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은 마사이랜드 지역에서 도드라졌다. 그러나 악영향을 받은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로이타 힐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걷는 중에도 우리는 부족 간의 분쟁 해결차 다시 경계를 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토의 선을 여러 번 넘나들었다.
우리가 걸어 지나온 대부분의 영토는 지역 사회를 위해 신뢰를 기반으로 만든 일명 마사이 트레일이다. 마사이 트레일은 이를 만든 아드리안 휴즈 Adrian Hughes라는 남자의 조율 아래 운영되고 있다. 소유권과 국경이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되기 전이라, 그는 숲이 끝나는 곳에 있는 두 개의 학교에 지불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마사이족에게 캠프 비용을 지불한다. 마사이족은 수세기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부족민들과 가축들이 통행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계속 이 땅을 사용하고 있다. 타협이 필요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 결론은 꽤 실용적이고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두 명의 가이드 니타아니 카모논 Ntiyani Kamonon과 리메리아 코야티 Lemeria Koyati와 함께 다녔다. 내가 메모를 할 때 리메리아는 내 어깨 너머로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때로 그는 내가 틀린 장소 이름이나 단어의 철자를 고쳐주기 위해 내 노트를 가져갔는데, 무척 대담하고명확한 필체를 갖고 있었다. 내가 그의 우아한 글씨체를 칭찬하자 그는 초등학교 교육의 혜택 덕분이라 말했다. 리메리아는 나록 Narok에 있는 기숙학교를 다녔다. 지금 리메리아의 아들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비가 비싼 것이 리메리아의 불만이지만, 아들은 잘 다니고 있다. 나는 리메리아가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며 양치기가 되거나 전사가 되는 법을 배우는 전통적인 교육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또 다른 형태의 타협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리메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서 다른 케냐 소년들 사이에 있을 때는 케냐인입니다. 집에 와서 교복을 벗으면 다시 마사이족이 되는 거죠.”
마사이족은 붉은 쪽은 태양, 검은 쪽은 비를 관장하는 유일신인 엔가이 Engai를 믿는다. 내가 방문했을 때 붉은 신은 어디 구금된 것 같았고, 동시에 검은 신은 폭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걸었던 지역은 여러 다른 서식지의 특징이 드러나야 했지만, 계절에 맞지 않는 녹음이 지나치게 우거져 뚜렷한 구분이 사라진 상태였다. 밤이 되자 텐트 위 플라이 시트에 비가 내리치는 소리는 잔혹할 정도였다. 폭우 사이 가끔 비가 그쳤을 땐, 누군가 식탁 위 유리잔을 깬 순간처럼 숲은 숨을 들이마신 채 침묵했다. 한때 케냐 남부 전역에 폭넓게 서식했던 검은코뿔소는 더 이상 로이타 힐스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코끼리, 사자, 표범, 버팔로는 아직 남아 있다. 하마도 이 습한 날씨에 적응하며 여전히 로이타 힐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이 도보 여행을 떠나기 전 내 장인은 특별한 울림을 가진 숲의 사자에 대해 회상했다. 숲에 사는 사자들은 사바나 평원에 사는 사자들의 갈기에 비해 색이 훨씬 어둡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행동 특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를 들면… 어떤 거죠?”, “사자는 호기심이 아주 많아. 때로는 몇 시간 동안이나 네 뒤를 바짝 붙어 쫓아올지도 모른다. 아마 꽤 당황스러울 거다.” 장인은 미소를 띠며 알려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동물들은 꽤 일관성이 있었다. 발자국, 배설물, 나무 껍질 등의 긁힌 모양, 풀 위에 뒹굴어 평평하게 남은 자국까지 녀석들의 흔적은 어디에나 있었고, 그들이 내는 소리도 어디에서나 들려왔다. 새들과 다람쥐들이 삑삑대는 소리는 재즈 같았다. 박자나 음정이 꽤 변칙적이라는 점에서. 험난한 지형과 습한 날씨 때문에 보폭을 균일한 간격으로 유지하며 리드미컬하게 걷는 게 거의 불가능했던 이 도보 여행에는 이런 즉흥 변주 풍의 사운드 트랙이 적합해 보였다. 그리고 여기엔 또 다른 사운드, 마사이족의 지저귐이 있었다. 그들이 내는 소리에 따라 일행의 수는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때때로 우리는 서너 명의 모르는 이들과 합류했다가 헤어졌다. 장난감 같은 활과 독화살을 들고 다니는 난해한 동행자 도로보 Dorobo 부족민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여행 둘째 날 밤 그들은 양처럼 울부짖었고, 이내 몇 시간 만에 일행이 작은 마을만큼 늘어난 적도 있다.
이 여행을 하고 싶었던 마음 중 일부는 캠프파이어와 허리케인 램프(바람이 불어도 불이 꺼지지 않게 만든 캠핑용 램프)에 둘러싸여, 익명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익명의 낯선 사람이 되고, 뒤집은 양동이 아래에서 샤워를 하고, 그냥 흙바닥에 누워 자고, 아침에 일어나선 뒤꿈치를 툭툭 털어내면 그만인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약간의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사이족에게는 이 3일간의 도보가 여유로운 잠깐의 산책 수준이다. 리메리아에게 걷는 행위가 즐거웠는지 물었을 때 그는 “당연히요”라고 답한 다음 잠시 멈췄다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건 걷는 거라고 하기는 어렵죠. 자면서 걷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마사이족은 걷는 것에 있어선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이다. 젊은 전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하루에 40마일을 이동할 수 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속도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무슨 기술처럼 보이는 부분은 전혀 없다. 탄력이 있지만 보폭이 지나치게 크지 않으면서 번잡한 동작도 없고 명백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힌트도 없다. 그러나 걷고 있는 마사이족을 만난다면, 잠깐 사이에 그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속보 경주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를 빨리하는 건 이 여행 경험 전체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눈과 귀를 열어둔 채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는 행위만으로도 점점 만족감을 얻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최선의 생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어떤 생각도 부담감에 멀어져야 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하루 종일 걷기로 한 일정 마지막 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만한 일이었다. 허리 높이 정도로 풀이 자란 들판을 지나고 있을 때, 풀 향이 배어 있는 싱그러운 비가 내리며 산들바람이 불어왔을 때, 갑작스럽고도 강렬하게, 거의 뺨을 후려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야생 바질과 재스민 꽃 향기가 훅 다가왔다. 다른 이들은 앞으로 계속 걸었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저 그 순간에 영원처럼 멈춘 채 숨을 쉬고 싶었다.
오전을 지날 때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혔다. 붉은 신이 돌아왔다. 로이타 힐스를 벗어나 우리는 9시간 동안 투쟁하듯 나아갔다. 적도의 강렬한 태양 아래, 느구루만 절벽 아래는 중간 정도 크기의 암석이 지표면을 이루고 있고 좀 더 작은 돌들이 사방에 위험하게 흩어져 있다. 그것은 마치 아래에 골프공이 깔려 있고 그 위로 크리켓 공이 깔려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경사까지. 빌려온 지팡이는 이번 여행에서 특히 내 좋은 친구였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녹색 올리브의 곧고 얇게 뻗은 가지는 껍질이 매끈하게 벗겨져 있고 아래쪽은 뾰족하면서 위쪽은 잘 다듬어져 있다. 마사이족이 사용하는 바로 그 지팡이다. 잘 채워진 바의 매끈한 카운터처럼 의지하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마침내 우리가 평야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전날의 가파름, 강건함, 숲으로 뒤덮여 있는 넓은 공간, 비가 내린 후의 건조한 열기까지 모든 것을 겪어낸 지구에 애정을 느꼈다. 현자의 깨달음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여정이 이제는 정말로 끝이라는 아쉬움 속에 달콤쌉싸름한 쾌락만이 남았다. 우리는 안녕을 고했다. 나는 내 지팡이를 옆에 치우고 발끝으로 땅을 툭툭 건드렸다. 고운 먼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
아베크롬비 & 켄트 abercrombie & kent는 1인 4천1백95유로에 케냐에서의 5박을 제공한다. 2박은 나이로비의 타마린드 트리 호텔에서, 3박은 마사이 트레일을 겸한 로이타 힐스에서다. 식사, 가이드, 경유를 포함한 비행을 제공한다. abercrombiekent.co.uk
- Writer
- Steve King
- Photographer
- Julien Capm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