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골똘히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유승호는 가히 아름답다.
GQ 오랜만에 얼굴 보니 반가워요. 드라마 <메모리스트>가 끝난 게 작년 이맘때였죠.
SH 그 작품을 마치고 후속작이 예정되어 있었고 이후 일정도 어느 정도 논의가 됐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와 여러 사정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1년 가까이 쉬었는데 오는 5월부터 새로운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요.
GQ 다시 시작하는 기분인가요?
SH 늘 하던 대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죠.
GQ 여덟 살에 데뷔해 지난 20여 년 동안 드라마든 영화든 참 꾸준했어요. 이렇게 긴 휴식기를 보낸 건 오랜만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SH 그렇긴 해요.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운동하러 가고 집안일하고 고양이들이랑 놀아주고, 아니면 유튜브 보거나. 항상 비슷한 하루예요. 특이하지 않고, 별거 없죠. 성격이 활달한 편은 아니고, 조용히 혼자 있길 좋아해서요. 그래서 제가 고양이와 잘 맞나 봐요.
GQ 고양이 집사로서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요?
SH 만점은 아니지만 나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왜냐면 사고를 쳐도 혼내는 일이 없고, 간식을 잊지 않고 챙겨드리고, 때 되면 놀아드리고, 장난감도 자주 사드리고, 질색하시는 발톱 깎기도 되도록이면 적게 해드려요.
GQ 그런가요? 굉장히 깍듯하네요.
SH 그럼요. 제가 모시며 사는 분들인데.
GQ 말하자면 한쪽으로 쏠린 듯한 그 관계로부터 얻는 건 뭐예요?
SH 엄밀히 말해 고양이들한테 원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제가 도움을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에요. 하나 말한다면 독립해서 살고 있는데 위로까진 아니더라도, 고양이들 덕분에 외로움을 덜 느껴요. 온기를 지닌 존재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요.
GQ 아까 촬영할 때 모니터링을 하면서 그랬죠. “운동하길 잘했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SH 실은 작년에 준비한 작품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어요. 근육량을 키워 몸무게를 15킬로그램 정도 증량하는 게 목표였어요.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이 결국 무산되는 바람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동 습관을 들여 제대로 몸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GQ 이 정도로 몸을 만든 것도 처음이죠. 신체적 변화 외에 크게 달라진 게 있나요?
SH 어릴 때부터 좁은 어깨와 살이 찌지 않는 몸이 콤플렉스였어요. 한번은 작품을 하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50킬로그램대까지 살이 빠지기도 했어요. 근데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몸에 근육이 붙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노력하면 나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라면 자신감이 붙었고 전보다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GQ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SH 멘탈이 강하다고 느끼진 않아요. 극한의 상황까지 쉽게 내몰리진 않지만 정신이 와르르 무너지면 큰일 나요. 일을 하면서 그런 적은 없지만 사적으로 몇 번 겪어보니 와, 답이 없더라고요. 어느 정도냐면, 일상적인 것조차 못 하게 되고 복구가 안 되다시피 해요.
GQ 듣기만 해도 어휴, 그럴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SH 기막힌 해결책이 있진 않아요. 그저 시간이 약이에요. 무기력한 상태로 괜찮아질 때까지 어떻게든 기다리는 거죠. 빠져나오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해요.
GQ 그렇다면 유승호는 예민한 유형의 사람인가요?
SH 그보다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어요, 그것도 어릴 때부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아주 일찍 시작했고 학교생활도 꾸준히 했어요.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 일하러 갔고, 촬영이 끝나면 학교에 갔죠. 그 둘을 병행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그 와중에 사춘기를 크게 겪었고요.
GQ 어떻게 어려움이 없을 수 있겠어요.
SH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주위 사람들이 제 투정을 어떻게 감당하고 받아줬나 싶어요.
GQ 유승호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은 누구예요?
SH 아무래도 어머니죠. 항상 제 편이고, 다 이해해주시니까. 어릴 땐 다른 사람들도 어머니처럼 저를 이해해줄 줄 알았어요. 큰 착각이었죠.
GQ 유승호에겐 “참 바르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따르는데 남모를 사연이 있었네요. 이건 가늠이 되나요? 배우 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지.
SH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어려워요. 일을 하면서 안 건데, 경험과 나이가 쌓인다고 해서 그냥 이뤄지는 건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뭐든 되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땐 10년 뒤에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연기도 잘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항상 새로운 작품, 새로운 나이가 저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에요. 계속, 끝까지 그럴 거고, 그래서 다음이 어떨 거라는 건 짐작도 안 돼요. 근데 요즘은 이런 느낌도 강하게 들어요.
GQ 뭔데요?
SH 스물아홉 살이 되기도 했고 아까 말했듯이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키운 상태고, 그래서인지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어요. 기존 틀에서 벗어난다든지 해보지 않았던 것을 차츰 시작해보려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오늘 찍은 화보도 제 기준에서는 정말 파격이에요.
GQ 그래서 그럴까, 지금이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것 같아요.
SH 맞아요,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GQ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거짓말하기 싫어서 인터뷰를 자제해왔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스스로 솔직하려는 게 느껴진달까요.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유승호가 스물아홉 살이라니.
SH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들어 전보다 더 나이를 의식하게 돼요. 생각해보면 이십 대가 되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아, 이제 어린애가 아니구나. 아역 배우로 활동하면서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일하기 더 편해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 같아서. 근데 벌써 스물아홉 살이 됐어요. 뭘 했는지, 이십 대를 잘 보냈는지도 모른 채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아쉬움이 커요.
GQ 그래도 달라진 게 있겠죠. 이십 대가 되고 이룬 가장 큰 성취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SH 음, 나답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는 거요. 한 작품을 하는 동안 제가 맡은 캐릭터로 4~5개월씩 살다 보면 카메라 밖에서 나도 모르게 캐릭터의 습관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자꾸 반복되니까 유승호라는 사람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다는 고민에 직면했고, 이를 계기로 과연 나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어요.
GQ 그래서 그걸 찾았어요?
SH 아뇨. 이제 질문을 손에 쥐었으니 답은 차차 알아가야죠. 어떤 식으로든.
GQ 그럼 자신의 이십 대는 청춘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나요?
SH 잠깐만요. 언제부턴가 청춘이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하지 않고 살았어요. 이런 생각은 오랜만이네요. 아름다운 건 그때는 잘 모르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청춘처럼. 신기하게도 저한테 청춘의 시기는 학창 시절부터 바로 어제까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내일이 되면 오늘까지가 청춘이라 여길지도 몰라요.
GQ 과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가 봐요.
SH 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제 마음에 깊이 박혀 굉장히 씁쓸하고 슬프게 느껴져요. 아무리 오늘을 아름답게 보낸다고 해도 내일이 되면 과거가 되어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슬퍼요. 그래서 더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있어요.
GQ 청춘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억은 뭔가요?
SH 어릴 때부터 비 내리는 여름날을 무척 좋아했어요. 학교에서든 촬영장에서든 빗소리와 비내음이 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날의 느낌이 막연히 기억나요.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저한텐 여름이 청춘의 이미지처럼 남아 있어요. 비 오는 날의 여름.
GQ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다시 보기도 하나요?
SH 부끄러워서 일부러 찾아보진 않는데 TV에서 우연히 나오는 걸 가끔 봐요.
GQ 작품으로 말하면 언제 적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SH 다른 것 상관없이 얼굴만요? 그럼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제 얼굴이요.
GQ 정확히 10년 전이네요.
SH 그때의 저를 보면 어쩜 저렇게 잘생겼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얼굴에 잡티 하나 없어요. 당시에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죠.
GQ 아까 직접 말했듯이, 아름다운 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죠. 오늘 하루 딱 하나만 할 수 있다면 뭘 해야 아름다운 날로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요?
SH 부모님 다음으로 요즘 저한테 가장 소중한 존재는 고양이들이에요. 아침마다 눈을 떴을 때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생명체죠. 근데 고양이들이 싫어해서 제대로 안아준 적이 없더라고요. 고양이들을 꼬옥 안아줄래요.
- 에디터
-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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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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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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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