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카 시장이 점점 젊어지는 기분이다. 오너들의 세대 교체 때문만은 아니다. 통념을 넘어 연식이 짧은 올드카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올드카는 단순히 낡고 오래된 자동차가 아니에요. 특정 시대를 풍미한 제품이죠. 그 속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요.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고, 과거에서 미래를 상상하며 만든 제품이죠. 그걸 미래 관점에서 본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일부는 지금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이고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자동차와 제가 사랑에 빠진 이유예요.” 클래식카 라이프를 즐기는 한 지인의 얘기다. 그는 이십 대 중반이다. 일반적으론 최신형 전기차에서 구동되는 첨단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더 열광할 세대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에 만든 BMW 3 시리즈 왜건을 탄다. 차를 보니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요즘 차와 비교하면 작은 차체에 동그랗고 귀여운 헤드램프와 각진 보디 디자인이 한눈에도 매력적이다. 크롬 장식이나 가죽 시트까지 아주 잘 관리된 것이 세부 디테일만 놓고 보면 출고한 지 2~3년밖에 안 된 분위기다.
흥미로운 것은 차 뒷유리에 붙은 스티커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로고가 질서 없이 붙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골목을 휘젓는 스케이트보드의 밑바닥처럼 보인다. 틀이 잡히지 않은 자유가 있다. 이처럼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신세대와 구세대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런데도 본인은 아주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가 활동하는 클래식카 카페에는 20~30대 젊은 층이 상당수다.
실제로 그렇다. 2000년 이후부터 한국 올드카 시장엔 젊은 오너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자연스럽게 클래식카 오너의 상당수가 20~30대로 구성되면서 그들만의 레트로 문화가 두껍게 형성되고 있다. 젊은 오너들이 클래식카를 타는 이유는 다양하다. 디자인이 예뻐서 혹은 제품에 담긴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서. 가격 대비 가치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이들에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예컨대 1989년형 BMW 3 시리즈는 중고 가격이 2천만원대 수준이다. 같은 가격으로 국산 차를 타면 경차나 준중형차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1989년형 3 시리즈를 선택한다면,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한결 멋스러운 카 라이프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클래식카 오너들 중 일부는 카-테크(자동차의 몸값이 계속해서 오르는 현상)를 목적으로 차를 수집하기도 한다. 한정판 나이키 신발처럼 단종된 이후 시장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몸값이 점점 올라가는 자동차에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이런 차들은 보통 ‘퓨처 클래식’ 혹은 ‘영타이머’라고 부른다. 생산된 지 최소 35~40년이 지난 정통 클래식카(올드타이머)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공장을 빠져나온 지 25~35년이 된, 다시 말해 1986~1996년에 생산된 비교적 현대적 모델이 영타이머의 주를 이룬다.
영타이머는 최신 기술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기계적 감성이 돋보이는 차종이다.(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클래식 그룹이다.) 포르쉐 911 터보(993), 메르세데스-벤츠 SL(R129), BMW M3(E30, E36), 아우디 콰트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차종들은 컴퓨터를 이용한 정밀 전자 제어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이전 시대에 태어났다. 그런 배경 탓에 모든 결과를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로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까 영타이머는 아날로그 특유의 기계 중심적인 모습이 매력이다.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투박한 디자인과 비효율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차들을 접해보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을 느끼게 된다. 자동차에 영혼이 녹아 있다.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치 살아 있는 기계라는 착각을 불러온다. 컴퓨터 제어에 의존하는 최신 자동차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독일과 영국, 미국, 일본까지 중고 시장 가격이 꿈틀대는 영타이머가 꽤 많다. 그중 BMW와 포르쉐 영타이머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정판이나 특별판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동종의 하위 모델까지 몸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몸값이 오른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증거다. 수요가 많다는 것은 그 제품을 소유할 때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이것이 클래식카 시장의 본질이자 원동력이다. 여기에 젊은이들이 합세하면서 판이 더 역동적으로 회전한다.
흥미로운 점은 수입 영타이머 시장이 구축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국산 차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대 갤로퍼를 신차 수준으로 복원하고 개조해서 판매하는 업체가 꾸준히 인기다. 현대 프라이드와 티뷰론 기아 레토나, 프라이드, 대우 티코 같이 오래된 국산 차라도 깨끗하게 관리된 차라면 새 주인을 금방 찾을 수 있다.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는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클래식카는 연식과 비례해서 문제를 찾기가 어렵다. 고장 난 부분이 생겼을 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복원한다는 개념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부품을 더해 컨디션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예상과 다르게 시장의 클래식카들 상태는 훨씬 좋다. 또 요즘 자동차와 비교하면 부품값이 싸고 구조가 덜 복잡해서 공임 같은 유지비도 합리적이다.
물론 제아무리 영타이머나 클래식카의 장점을 이야기해도 모든 사람이 경험해볼 수는 없다. 개체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극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시장이다. 특히나 수입차의 경우 2000년대 이전에 국내에 판매된 수량이 워낙 적다. 중고 매물이 드물고, 국산 차의 경우 중고차 수출 사업이 활발해 조금만 오래돼도 아예 길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거기에 일정 시간의 내구성만을 고려해 부품을 만드는 자동차 회사, 신차의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해 오래된 차를 지속적으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제도도 문제다. 알면 알수록 클래식카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가 신차를 계속 구매하게끔 유도한다.
해외에서 좋은 개체를 들여오는 것도 녹록지 않다. 외국에서 차를 들여올 때는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 자기 인증을 받아야 하고, 또 배출가스 및 소음 기준 법규도 통과해야 한다. 이삿짐이 아닌 판매용으로 수입하는 경우 중고차와 신차 상관없이 무조건 자기 진단 장치(OBD)가 달린 전자 제어 엔진과 그에 맞는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국내 인증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부 젊은 수집가들은 번호판이 없는 클래식카를 수집한다. 하지만 이런 차는 가치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의 가치는 도로에서 타고 달릴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니까. 클래식카에도 경험의 효용성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지인의 말에 근거하면 그 경험의 범위는 차를 타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최신 자동차는 돈만 있으면 쉽게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영타이머 같은 클래식카는 특별한 인연을 맺어야 하죠. 내가 동경하는 모델을 찾아야 하고, 그 차를 수년간 추적해서 결국 내 차고에 들이는 과정이 필요해요.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클래식카는 그 속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해 지금의 나와 연결되는 거죠. 그런 관점에선 클래식카를 좋아하고 소유하는 건 나이와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이들이 클래식카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해요. 그만큼 안목이 있다는 거예요.”
-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 이미지
- www.elfer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