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하우스들과 ‘가치’패션의 소매상들은 해마다 남성복 컬렉션을 통해 남자를 ‘새로운 여자’로 대하는 방식을 시험한다. 남자를 위한 부티크를 만들고, 남자도 숙녀처럼 재킷 길이와 패턴과 액세서리까지 변형하며 놀도록 장려한다. 전에 본 것도 같은 저 눈깔사탕옷은, 더 빠직거리는 비닐봉지로 포장돼 있다. 그래봤자 일인당 연간직물 소비량은 몇 킬로그램밖에 되지 않을 텐데. 그런데, 늘 궁금한건 왜 이런 은유로,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이번 파리 남성복 컬렉션도 고역스러웠다. 일단 쪄죽을 것 같았고, 물가는 더 치사했다. 쇼장에서 끈적한 뺨과 뺨을 돌려대며 공중으로 뻥키스를 날리는, 자유로운 영혼인지, 살 부딪힘의 찬란한 만찬인지, 문화적 교태인지 여전히 모를 짓도 해괴해 보이긴 매한가지였다.
폴 스미스 쇼도 기존 매뉴얼의 변종 답습만 같았다. 우아하게 고안된 ‘토털룩’도, 고상하고 투박한 구두도 성긴 가재눈 앞에선 다 시뜻하기만 했다. 곧 모델들이 퇴장하고, 다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연인보다 더한 갈망으로 그가 나타나길 고대하는데, 갑자기 마이클잭슨의 ‘스릴러’가 울렸다. 그리고 순진한 동네 패거리처럼 겅중겅중 춤추는 모델들과 엉킨 채 폴 스미스도 얼기설기 농가월령가 몸짓으로 런웨이를 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난,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이틀 전 마이클 잭슨의 부고가 뉴스 네트워크를 탔었다. 다음 날,그는 여전히 죽어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날보다 더 죽어 있는 것 같았다. TV는 죽도록 ‘스릴러’영상을 반복했다. 부적절해 보이긴 했다.거기서 그는 시체니까. 하지만, 폴 스미스는 연륜으로 세공한 세심한주의로, 마이클이 죽음으로써 취한 영속성을 패션의 덧없는 순간성 위에 덧입혔다. 문명과 함께해 온 근원적 오브제였다가, 어느 틈에 한계절에 네 번 변하는 속도 유행의 중개인이 되어버린 옷에 다른 의미의 영원성을 대입한 것이다. 입과 몸의 언어로 결합된 그 음악까지도.
호텔로 돌아올 때 도시 개발자이자 아트 딜러인 상엽에게서 문자가 왔다.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가보세요.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엔 꼭 들르세요. 그럼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파리에 와서 공동묘지에 들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 층계와 둔덕을 따라 도열한 석관들, 무성하고 무상한 나무들, 순례자가 많은 무덤과 잊힌 무덤, 지도를 들고 뮈세를 찾는 이와 트럼펫을 안은 채 방부된 청년의 사진…. 묘지는 모든 책임으로부터 방임된 정원 같았지만, 훤한 햇빛 아래 우수와 상실, 추억과 적막이 불안하게 꿈틀거리는 몸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의 끝까지 올라가 두둑한 대리석에 기대 긴 숨을 쉬는데, 그 이질적인 돌덩이에 제이콥 엡스타인의 날개 달린 천사가 새겨져 있었다. 천사인지 부처인지 알 수 없는그 몸이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한 키스 마크와 짧은 사랑의 인사말들로 덮여선….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이었다….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죽는 게 이렇게 가벼울 수 있을까. 오스카 와일드는 옆집에 잠깐 놀러 갔다 금방 올 것 같아. 답신이 왔다. 응, 형. 죽었으나 살아 있어.
사람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모순 덩어리라면서, 다른 이에겐 그런 말을 하지 않은 듯 군다. 하지만 그의 글 한 단락만 읽으면 그를 알 수 있다. 삶이 무결하진 않았지만,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솔직하며, 스스로 종적을 감추었다고 자신할 때조차 속을 드러냈던 그 사람을. 그리고 이것은 무엇일까…. 바람도 없었는데, 종이 하나가 잊히지 않을 음색으로 툭, 발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마취제를 맞고 꼼짝없이 얼어버린 나비 같았다…. 모서리가 닳은 손바닥 만한 종이엔 볼펜으로 구불구불 영어가 적혀 있었다. 그의 한 문장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견딜 수 있는 뭔가를 원한다. 그래서 부질없는 것들로 마음을 채운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어리석은 희망으로.
오후 두 시였다. 끝없는 중얼거림으로 주문을 외는 시간. 시계는삶에 부는 바람들을 다 흡수할 것만 같다. 모든 사람은 시간을 인지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한다. 때론 시간이 멈춰,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유지되길 바랄 때도 있다. 하지만 명예로운 시간 낭비보다 화려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석관들이 희미한 바람에 뒤척이는 빳빳한 치마 주름처럼 보였다.
- 에디터
- 이충걸(GQ KOREA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