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도쿄 올림픽 속 빛나는 한 마디

2021.08.04차동식

‘이번 올림픽 누가 보려나?’ 했다가 온 국민이 다 보고 있는 2020 도쿄 올림픽. 폭염보다 더 뜨겁게 우리를 감동시킨 선수들의 한 마디를 모았다.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후회 없이!”
여자배구팀 주장 김연경 선수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다시 한번 두루두루 월드 클래스임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7월 29일, 한국과 도미니카 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은 황연주 해설위원을 울릴 정도로 깊은 감명을 줬다. 4세트에서 9대 15의 큰 점수 차이로 한국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울린 작전 타임 휘슬. 김연경은 다시 코트로 나가기 전 동료들에게 뭐가 됐든 ‘해보자’고, 후회 없이 해보자고 외쳤다. 모두가 패배를 느끼던 그 순간, 그가 소리 높여 외친 이 한 마디가 기적처럼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넘어 노력한 만큼 후회 없이 펼쳐보자는 뜨거운 격려였다. 그 결과 한국 여자 배구팀은 도미니카 공화국을 꺾고 2연승을 올릴 수 있었다.

“의심하지 마”
남자 사브르 단체전 국가대표팀 구본길 선수는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지난 7월 28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 초반부터 여유있게 앞서나갔던 한국팀은 마지막 9라운드에서 흔들리게 된다. 팀의 막내 오상욱 선수가 내리 5점을 내줬던 것. 세계 랭킹 1위의 한국 펜싱 간판 스타도 금메달 결정권 앞에서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구본길 선수는 “의심하지 마. 의심하니까 자꾸 (칼을) 드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지난 시간을, 피와 땀과 눈물을,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너를 믿는 만큼 너도 너 자신을 믿으란 외침이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오상욱은 5점을 다시 연달아 따냈고, 한국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것도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일 교포 3세 안창림 선수는 일본에서 귀화 제안을 뿌리치고 한국에 왔다. 이번 도쿄 올림픽 유도 경기가 열린 부도칸은 일본 유도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매 경기가 연장되는 바람에 엄청난 체력을 소진했고,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고 자랑스러운 동메달을 걸었다. 그는 “하루하루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것도 인생이라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늘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게 인생이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유도인의 묵직한 한 마디였다.

“괜찮아”
실패하고도 스스로에게 웃으며 “괜찮다”를 외치는 선수가 있다.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은 2m 37을 넘지 못했지만 웃었다. 이미 자신의 최고 기록을 넘은 데다 한국 신기록을 세웠고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었다. 아깝게 4위로 메달을 걸진 못했지만 “저보다 더 힘들었던 선수들이라 메달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 박수와 호응을 유도하는 프레디 머큐리 급 무대 매너와,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함께 출전한 선수들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인싸 기질’도 이번 도쿄 올림픽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늘 긴장감 넘치던 올림픽 경기에 유쾌한 느슨함을 안겨준 우상혁 선수의 “괜찮아”는 모든 선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끝”
도쿄 올림픽을 찢어버린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남자 양궁 단체전을 들겠다. 팀의 맏형 오진혁은 남자 양궁 단체전 마지막 화살을 남기고 있었다. 9점 이상만 쏘면 금메달이 확정되기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의 바로 뒤에서는 동료 김우진 선수가 남은 시간을 알려줬다. 오진혁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은 뒤 과녁에 꽂히는 걸 보기도 전에 “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짐이라도 챙기러 가는 사람처럼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이 화살은 10점에 명중했다. 스포츠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에디터
    글 /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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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