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
<중간착취의 지옥도>
은행 경비원으로 입사해 맡은 첫 업무가 매일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은행 지점장의 차를 세차하는 일이었다는 첫 번째 인터뷰이 강지선 씨의 이야기를 읽자마자 이 책을 더 넘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슬퍼졌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 팀이 노동시장의 최하부인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취재한 이 르포르타주를 들여다볼수록 지옥이 달리 어디 있을까 되묻게 된다. 그럼에도 한 인사가 추천사로 적은 문장을 힘주어 밑줄 긋고 싶다. “‘독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가 되고, 다른 노동자의 말을 경청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시민’이 된다면 ‘변화’라는 두 글자를 새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자신을 대여하는 모리모토 쇼지의 21세기 대여 서비스 현장 기록집. 신상 음료를 마셔보고 싶은데 남기기는 싫어서 신청한 사람, 사과하러 가는 자신 뒤에 그냥 서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 이렇게까지 필요한 일이었나 당혹스럽다가도 그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하는 사람이 10개월 만에 10만 명이 훌쩍 넘었다는 대목에선 그 ‘10만 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마 그중 절반은 재밌어서고, 절반은 정말 필요해서고, 대체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원해서는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역설. 한없이 유쾌하고 더없이 진지하다.
- 피처 에디터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