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 곁에 둘 요긴한 친구.
Dessert & Baker’s
커피, 홍차, 버번? 디저트의 룰이 달라지고 있다. 디저트 타임에서 버번은 훌륭한 대안이 되고 있으니까. 달콤하면서 쌉싸름하고, 강한 펀치를 날리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부드러움에 정신을 잃게 되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 너트류 풍미가 매혹적인 버번, 베이커스는 홀로 서도 훌륭하나 견과류가 들어간, 혹은 견과류 풍미가 나는 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 더욱 빛난다. 카라멜콘 땅콩 과자, 구구콘 같은 소박한 주전부리를 씹으며 소스를 더하듯 베이커스를 입 안에 머금으면 내가 알던 과자가 맞나 다시 보게 되고, 때로는 근사한 피칸 파이를 곁에 두고 즐겨도 좋다. 베이커스는 디저트의 격을 높이고, 그 달콤한 맛은 베이커스를 또다시 소환한다. 버번에 적신 듯한 브라운 컬러 커버를 한 건축가 피터 줌터의 책 <분위기>를 더한다면, 분위기 한번 끝내주겠지.
Barbecue & Russell’s Reserve, Rare Breed
거친 숯 향이 활활 피어나는 바비큐의 현장. 기름이 좔좔 흐르는 섹시한 토마호크 스테이크 육체에 버번 글레이즈드 소스를 마음껏 끼얹는다. 풍부하다 못해 폭발할 듯한 농밀한 감칠맛이 밀려온다. 어떤 술도 이 요리를 능가할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 술을 마셔야 할까, 심드렁한 기분이었다가도 와일드 터키 레어브리드를 만나면 눈이 번쩍 뜨인다. 물을 단 한 방울도 섞지 않은 배럴 프루프 버번. 58.4란 도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그만큼 매섭게, 그러나 섹시하게 목구멍을 질주할 거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 술에 지지 않을 술을 하나 더한다면 그 옆엔 러셀리저브 싱글 배럴이 좋겠다. 증류소 숙성 창고의 배럴에서 바로 꺼내 마시는 버번의 맛과 가장 흡사한 술. 그 자체로 버번의 본고장 켄터키를 닮은 젊고 경쾌한 맛.
Meditation & Old Forester
버번 옆에 놓이는 것들이 반드시 입으로 향할 필요는 없다. 버번의 그윽한 향에 걸맞은 근사한 친구는 얼마든 있으니까. 캔들, 시가, 인센스, 책, 영화, 음악, 하다못해 아름다운 오브제까지 버번의 시간을 매혹적으로 물들일 수 있다. 달콤한 캐러멜과 은은한 바닐라. 기분 좋을 만큼 스파이시한 여운이 남는 올드 포레스터 1870에는 바닐라 시럽을 살짝 넣은 게이샤 커피, 그리고 마테차 향에 오렌지 향을 더한 일 블랑쉬 캔들이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거기엔 무질서한 글렌 굴드의 피아노 선율이 흘러도 좋겠고, 시나몬보다는 생생한 생강 향이 풍기는 최백호의 목소리가 더해져도 멋스러울 것이며, 촌스럽지만 다정한 트로트를 곁들여도 괜찮다. 버번이란 본래 어떤 상황, 칵테일에서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활약하는 친구이니까.
Camping & Whistle Pig
캠핑에 즐거운 동반자가 하나 늘었다. 요즘 가장 화제인 라이 위스키, 휘슬피그다. 매일 수도 없이 버번과 라이를 손에 쥐는 선수 바텐더들이 애정해 마지않는 휘슬피그가 정식으로 한국에 왔다. 캐러멜과 구운 참나무 향, 토피와 은은한 바닐라와 박하 팔레트, 길고 스파이시한 피니시를 지닌 최소 10년 숙성한 스몰 배치 라이 위스키는 가슴에서 비장하게 꺼내어 한잔 돌리면 분위기도 살고 동지애는 고조된다. 프랑스 소테른, 포르투갈 마데이라, 포르투갈 포트 오크통에서 총 12년 숙성한 라이는 바비큐 폭립과 함께 즐기며 풍미를 더해도 좋고, 혹은 벤앤제리스 트리플 캐러멜 청크에 곁들여 극도의 단맛의 바다에서 마구 헤엄쳐도 좋다. 15년 숙성한 46도 라이 위스키는 그 자체로 훌륭해서 버디가 따로 필요 없다. 너와 나, 그리고 이 밤이면 충분하다.
- 피처 에디터
- 전희란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