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시는 어디로든 향할 준비가 되어 있다.
GQ 무릎은 괜찮아요?
MS 오, 맞아요. 요즘 무릎이 안 좋아요. 특히 작년에 시영 언니와 함께 자주 산을 탔더니 피로가 쌓였는지 무릎이 아프더라고요. 조금 유의해야겠다 싶어 요즘은 등산을 쉬고 있어요.
GQ 시영 언니라 하면 <스위트홈>에 함께 출연한 이시영 배우 말인가요? 금세 친해졌나보군요.
MS 네. 시영 언니가 “민시야, 오늘은 운악산이다” 그러면 “알겠어요, 언니” 하고 따라갔어요. 그런데 언니가 운동선수이기도 하다 보니 속도감이 정말, 태릉선수촌 선수분들 스파르타 훈련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빠른데, 그 속도를 어떻게든 이 악물고 따라잡다 무리했어요. 결국 “언니 이제 저는 좀 쉬어야겠어요” 그랬어요. 원래는 100대 명산 가기로 했는데.
GQ 몇 군데 완등했어요?
MS 다섯 군데요. 마지막으로 간 데가 가평 운악산이거든요. 정상에 딱 도착했을 때 울었어요. “드디어 정상에는 왔고 이제 내려갈 일이 남았구나” 하고.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요. ‘악’ 자가 들어 있는 산이 엄청 험하잖아요.
GQ 그래도 중도 포기는 안 했네요.
MS 오르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야죠. 오기로, 눈물로. 시영 언니와 언니 매니저님이 도와주셨어요. 언니가 “민시야, 2킬로그램은 빠졌을 거야” 응원하면 “알겠어요, 언니” 하며 올라가고.
GQ 새 드라마 <지리산> 촬영 준비하느라 무척 열심히 산을 탔나 보다 싶었는데.
MS 아, 그건 아니에요. 산은 예전부터 좋아해서 다녔고, 이번에는 이러다 무릎이 더 안 좋아져서 <지리산> 촬영에 문제 생길까 봐 오히려 (등산을) 급하게 중단한 면이 없지 않아요.
GQ 등산에 흥미가 없으면 산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텐데, <지리산> 이응복 감독이 용케 등산 애호가를 캐스팅했네요.
MS 너무 감사한 일이죠. 감독님과 <스위트홈> 막바지 촬영쯤이었는데 현장에서 갑자기 (새침한 목소리 톤으로) “은유는 다음 작품 뭐 잡혔니?” 물어보시는 거예요. 이러저러하다 말씀드렸더니 “하나 더 같이할래?” 하시더라고요. “감독님 작품요?” 그랬더니 그렇다고, 그래서 바로 “너무 좋죠, 너무 감사하죠” 그랬죠.
GQ 그 자리에서 바로요?
MS 네, 바로.
GQ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요?
MS 사실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은데, 뭐, “어떤 분이 나와요?” 아니면 “언제 방송 예정이에요?”, “어디서 해요?” 이런 되게 세세한 거 여쭤보고도 싶었는데, 또 그렇게 너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감독님이 김은희 작가님 작품이라는 것까지만 알려주시고 <스위트홈> 촬영 끝나면 책(대본) 보내주겠다고 하셔서 바로 알겠다 그랬죠. 너무 좋았어요. 마음이 따뜻했어요.
GQ 제가 배우라면 밤새 뿌듯했을 것 같아요. 처음 합을 맞춰본 작품에서 그다음 작품까지 제안한다는 건 나를 믿는다는 얘기기도 하잖아요.
MS 정말요.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어떤 자극제가 되는 것 같아요. “무조건 하겠습니다” 그랬죠.
GQ 그런데 민시 씨는 이응복 감독을 두고 <스위트홈>에 발탁해준 귀인이기도 하면서 “무섭다”고 표현한 적도 있잖아요.
MS 무서워요. 일하실 때는 표정도 많이 없고 그러세요. 처음 현장에서 되게 떤 기억이 나요. 감독님이 딱히 뭔가를 하시진 않아요. 그냥, 굉장한 경험치가 있는 분이고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배우를 바라보는 것 같은. 잘하지 못하면 소리 지르거나 그러는 스타일이 아니고 (차분한 어조로) “다시 한번 해볼까? 다시 해보자”, “은유야, 이 앞 상황이 어땠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런 게 더 무섭거든요. 치밀하게 꿰뚫어보는 것이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것보다 더 무서워요.
GQ 그런 감독이 다음 작품도 함께하자 제안한 거고. 민시 씨의 무엇을 봤을까. 뭐라고 하시던가요?
MS “네가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 네 성격이랑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돼.”
GQ 이번 <지리산>에서 맡은 이다원 역은 팀 분위기를 책임지는 쾌활하고 명랑한 막내라던데, 카메라 안팎의 고민시는 그런 사람인가 보네요.
MS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보셨나 봐요. 에너지가 좋고, 밝고, 그런 걸 많이 느끼셨다고.
GQ 스스로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스위트홈>에서는 유리 역을, <마녀>에서는 자윤 역을 하고 싶었다고 했죠. 두 캐릭터 모두 민시 씨가 연기한 역할보다 훨씬 말수도 적고, 차분한 인물이네요. 그런 역을 소화하는 게 자신과 더 맞는 것 같아요?
MS 일단 유리는 제가 웹툰 원작을 봤을 때 그 이미지가 너무 독특했어요. 천식이라서 항상 두건 같은 걸 마스크로 쓰고 있고, 호흡기를 들고 다니고, 그러면서 어르신을 보필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비슷한 또래 캐릭터인 유리, 지수, 은유 모두 너무나 임팩트 있었지만, 제가 볼 때 지수가 거의 메인 느낌이고 유리는 제가 부담을 덜 느끼는 선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GQ 오히려 너무 주연 같은 느낌은 부담스럽군요?
MS 부족한데 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제 선에서 잘해낼 수 있을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유리 캐릭터를 (고)윤정 배우가 연기해서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 것 같고, 저는 저대로 은유 캐릭터를 하게 되어 스스로에게 아주 만족하게 됐죠.
GQ 그럼 <마녀>에서는요?
MS <마녀>는, 사실 저는 오디션에 자윤 역으로 합격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나 어떡해! 주인공 됐나 봐!” 그랬는데 친구더라고요. 하하하하하. 감독님이 책 받으러 오라고 하셔서 갔는데 “너랑 되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로 줄 거야. 그런데 우리 영화에서 대사가 제일 많아” 그러시는 거예요. ‘그말인즉슨 (말이 별로 없는) 자윤이가 아니란 얘긴데 뭐지?’ 하고 대본을 봤는데 대사가, “허억” 정말 너무 많아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어요. 어떡하긴 뭐,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대본 보고, 밥 먹으면서 대본 보고, 영화 보면서 저런 장면 여기다 써먹으면 좋겠다 공부하고,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대사 달달달달 외우고 그랬죠.
GQ 그렇게 <마녀>의 명희가 됐군요.
MS 상상도 못했는데 많은 분이 명희를 좋아해주셔서 얼떨떨했죠. 너무 좋아요. ‘이런 에피소드가 있어서 나는 명희를 만날 수 있었어, 은유를 만날 수 있었어’ 이런 소소한 과정이 저는 좋아요. 제 캐릭터에 애착이 더 높아져요.
GQ 그런데 두 일화 모두 이런 느낌이네요. “전 이걸 잘할 수 있어요.”, “아냐 넌 저게 어울려.”, “네.”
MS 하하하하하, 맞아요, 맞아요.
GQ 왜 그렇게 금방 수긍해요.
MS 그냥 ‘다 이유가 있겠지, 모든 일에는’ 그래요. 제 모토가 좀 “쿨하게 살자”라서 그런 것도 같아요. 예전에는 좋으면 한없이 좋아하고, 이 행복한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고, 그러다 슬프면 ‘하…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이런 편차가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엄마가 늘 “민시는 좋을 때는 너무 좋아했다가 슬플 때는 어쩜 그렇게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슬퍼하니. 그러면 너 자신이 힘들어. 평정심을 배우는 마음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셨거든요. 처음에는 “엄마, 아우 무슨 소리야” 그랬는데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확실히 저한테 더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편차가 큰 건 연기에서만 그렇게 하고 평소에는 감정 소모를 너무 많이 하지 말자, 늘 평정심을 유지하자, 그렇게 생각해요.
GQ 말이 쉽지 어떻게 그래요.
MS 그런데 인생이 너무나 힘들 때, 무언가 지칠 때 가면 정말 좋은 데가 있거든요? 수락산에 기차바위라는 코스가 있어요. 밧줄 하나에만 의지해 절벽을 올라가야 하는 코스인데 난도가 최상이에요. 정말 액티브해요. 밧줄에 매달려 아래를 보면 너무 아찔하고 무서워요. ‘내가 그동안 겪은 힘든 시련은 시련이 아니구나. 지금 이 순간 나 되게 간절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같이 올라가는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등산객 분들이 서로서로 도우면서 올라가거든요. 에너지 바를 주고받는 정겨움도 느끼고 정말 좋아요.
GQ 밧줄 하나에 의지해서 절벽을 오른다고요?
MS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바람이 많이 불면 몸이 흔들릴 정도로 높고 아찔한데, 그래서 해냈을 때 더 ‘난 해냈어. 뭐든 할 수 있어’ 싶은 거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성취감이 들어요.
GQ 그 기운 받아, 민시 씨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요?
MS 음…, 자유와 건강. 이 두 가지만 충족되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서서히 자유롭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안에서도 최대한 제 자유를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지 아직 답은 못 찾았는데, 예를 들면 지금 다이어트 중인데 피자가 너무 먹고 싶을 때는 달걀이랑 치즈 같은 다이어트 식품 위에 케첩을 뿌려서 먹는다든지, 최대한 피자와 비슷한 맛을 내서 먹으려고 하거든요. 앞으로 무언가 제 삶이 변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최대한 나다운 것을 지키려고 한다면 자유롭지 않을까요?
GQ 이건 정말 우연인데요, 오늘 촬영장 간식으로 피자 시키려고 했거든요. 피자의 유혹 괜찮겠어요?
MS 어머, 진짜요? 세상에! 너무 좋아요! 딱 한 조각만 먹을래요. 한 조각은 괜찮아요.
- 피처 에디터
- 김은희
- 포토그래퍼
- 박종하
- 스타일리스트
- 김미현
- 헤어
- 이한별
- 메이크업
- 오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