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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록 "누가 저보다 저에 대해 잘 알겠어요"

2021.10.01김영재

귓가와 입 안에 부쩍 맴도는 동글동글한 이름, 금새록.

네이비 수트, 블루 셔츠, 넥타이, 넥타이핀, 블랙 레이스업 부츠, 모두 톰 브라운.

블랙 레더 원피스, 라카지.

GQ 아까 영상 인터뷰하면서 별명이 동그라미 여덟개라고 말했죠?
SR 얼굴, 눈, 귀가 다 동글동글해 친구들이 동그라미 여덟 개를 그려 놓고 저 같다고 해요.
GQ 이런 질문 어때요? 성격도 동글동글해요?
SR 동글동글하면서 삐죽삐죽하기도 해요. 따지면 동글동글한 편에 속하는데, 요즘 삐죽삐죽한 것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다음 작품에서 그런 캐릭터를 맡았거든요.
GQ 금새록의 삐죽삐죽한 면은 뭐예요?
SR 나름 기준이 명확해요. 좋아하는 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만 싫은 건 잘 못 해요. 또 부당하다고 느끼면 어느 정도 참다가 아니라고 말하고요.
GQ 얼마 전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았죠? 금새록의 이십 대에는 어떤 드라마가 담겨 있는지 궁금해요.
SR 혼자 프로필을 돌리고 직접 준비한 의상을 배낭에 넣어 연출부 차를 타고 촬영장을 오가던 때가 있었어요.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암살>, <덕혜옹주>, <밀정>에 단역으로 출연했죠. 혼자 힘으로 뭔가를 찾아서 해낸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사실 외롭고 답답하고 캄캄해 많이 울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단단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GQ 성장통 같은 시간을 앓으면서도 왜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SR 연기를 하기 전에는 살면서 최선을 다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한 무용도 그냥 그랬죠. 저 스스로도 끈기가 부족하고 잘 하는 게 없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3학년 때 처음 연기 학원에 갔다가 눈이 번쩍 뜨였어요. 제가 너무 열심히 하는 거예요. 남들보다 먼저 학원에 갔다가 마지막에 나왔죠. 나도 잘하고 싶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걸 연기를 통해 알게 된 거예요. 연기가 내 운명이다, 싶었어요.
GQ 그래서 해보니, 연기는 늘 재미있는 일인가요?
SR 그러면 좋겠지만 절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도, 희열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연기예요. 괴롭히기도 했다가 안아주기도 하는데….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GQ 배우로서 한 발짝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어떤 거예요?
SR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님의 <독전>에서 비행 청소년 역할을 맡았어요. 저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감독님이 하나하나 이끌어줬고 많이 배웠어요.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GQ 그럼 금새록이라는 배우를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면은 뭐예요?
SR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연기한 수련이는 저와 잘 어울리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캐릭터예요. 1980년대 학생 운동에 앞장섰던 수련이가 우연히 TV 속 운동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나중에 봤더니 제 눈빛이 반짝반짝한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저절로 나온 것 같은데, 수련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스트라이프 셔츠, 스커트, 모두 한킴.

레드 패턴 블레이저, 수기. 레드 플라워 네크리스,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GQ 아무래도 MC로 합류한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이름이 곧잘 거론되고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이런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SR 처음에는 배우가 아닌 인간 금새록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어요. 저를 알리는 건 좋지만 ‘골목식당의 누구누구’로 알려지고, 저라는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어떨지 몰랐죠. 하지만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고, 값진 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GQ 살면서 자신을 크게 성장시킨 경험은 뭔가요?
SR 스물네 살 무렵 일주일간 혼자 제주도 여행을 했어요. 그전에는 1분, 1초가 심심할까 봐 혼자 여행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죠. 그 당시 저조차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어요. 뭘 좋아하고, 잘하고, 두려워하는지. 주관도 뚜렷하지 않았어요. 제주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일기를 쓰거나 울기도 하면서 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어요. 배우는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잖아요. 그러려면 자기 장점과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굉장히 큰 자양분이 됐어요.
GQ 그렇다면 지금 ‘백종원 대표의 솔루션’ 같은 답을 얻고 싶은 게 있다면요?
SR 올해 일이 바빠지면서 지인들로부터 “잘 지내?”라는 연락을 자주 받았어요. 여기에 “바쁘게 사는데 잘 지내는지 모르겠어”라고 답장을 보냈어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이게 잘 사는 건지, 맞는 건지 확신이 없더라고요.
GQ 그러게 말이에요. 인스타그램 계정에 ‘여름방학’이라고 쓴 건 어떤 의미예요?
SR 아주 오랜만에 이틀 정도 여행을 했어요. 잠깐이긴 했지만 여름방학처럼 느껴졌어요.
GQ 금새록이란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었던 2021년의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 것 같아요?
SR 서른 살의 여름은 ‘그래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해요. 한참 부족하고 채울 것도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어요. 겨우 몇 걸음이고 느릿할 수 있지만 그 한 걸음이 저한테는 엄청 소중하고 중요해요.
GQ 좋아하는 건 열심히 한다고 그랬잖아요. 연기 말고 꾸준히 해온 게 있을까요?
SR 사진 찍는 걸 진짜 좋아해요. 언젠가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며칠 전에 다 지웠는데 인스타그램에 ‘금새록필름’이라고 해시태그를 달아 제가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어요.
GQ 최근 찍은 것들 중에서 가장 예뻤던 건 뭐예요?
SR 제주도의 하늘요. 보랏빛이었다가 주황빛이었다가 파랗다가, 제주도의 하늘은 매일 달라 보여요. 김영갑 선생님이라고 20년 동안 제주도 하늘과 오름을 찍은 작가님이 계세요. 그 사진들을 전시한 김영갑 갤러리는 제주도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해요. 아주 외진 곳에 있어 3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가거든요. 한 번은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3시간을 기다리기도 했어요. 그때도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길게 늘어놨어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면서.
GQ 이제 금새록에 대해 빠삭하겠네요.
SR 네, 누가 저보다 저에 대해 잘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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