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표기법이 개정되며 와사비가 아닌데 와사비라 표기한 제품이 수두룩하게 드러났다. 지금껏 먹어온 와사비가 와사비가 아니면 무엇이 와사비란 말인가.
‘와사비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앞으로의 긴 이야기는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우리가 먹은 게 가짜 와사비였을까? 일단 그렇다. 이번에 식약청에서 적발한 사례의 요지는 와사비나 고추냉이라는 이름을 붙인 제품에 해당 재료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품 패키지 뒤를 보면 식품의 각 요소를 표기한 표가 있다. 그 표의 원재료명에 적혀 있는 것이 실제 재료다. 와사비가 아닌데 와사비라고 표기한 재료의 주인공은 겨자무다. 겨자무는 서양고추냉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무엇인지는 이 식물의 현지 이름을 알면 간단해진다. 홀스래디시 Horseradish. 외국 식품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홀스래디시 드레싱이 바로 이 제품이다. 가공하지 않은 홀스래디시는 흰색을 띤다. 여기에 연두색 식용 색소를 넣고 와사비라고 파는 업체가 이번에 적발된 것이다.
‘어머어머 그럼 우리가 먹던 와사비가 와사비가 아니고 가짜야? 몸에 안 좋은 거 아니야?’ 같은 걱정이 들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 홀스래디시는 앞으로 이어질 와사비 이야기에서 최고의 피해자다. 홀스래디시는 동유럽이 원산지인 유서 깊은 뿌리 작물이다. 인간과 함께한 역사로 치면 홀스래디시 쪽이 훨씬 길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신화에도 나왔을 정도니까. 델포이의 신탁을 통해 아폴론 신에게 “홀스래디시는 같은 무게의 금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약 2천5백 년 동안 홀스래디시의 가치는 같은 무게의 금에서 엄청나게 떨어진 셈이다.
홀스래디시는 왜 더 쌀까? 더 영양이 부족해서? 맛이 없어서? 다 틀렸다. 재배량이 많아서다. 전 세계 홀스래디시 생산량은 3만 톤 정도, 그중 헝가리에서만 1만2천 톤 정도를 생산한다. 반면 와사비의 생산량은 일본 기준으로 2천 톤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와사비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생와사비가 비싼 건 마찬가지라 홀스래디시에 다른 성분을 넣어 만든 대용품을 많이 쓴다. 우리가 주로 먹는 게 가짜 와사비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가짜 와사비를 즐기고 있다.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와사비는 왜 더 비싼가? 더 영양이 풍부하므로? 더 맛있어서? 이것도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와사비는 재배가 어렵다. 캐나다에서 와사비를 재배하려고 한 블레이크 앤더슨 씨의 사례가 BBC에 소개됐을 정도다. 그는 2014년 인터뷰에서 와사비를 두고 “금 같은 겁니다. 우리는 금에 비싼 값을 내려고 하죠. 와사비에도 비싼 값을 내려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와사비는 세계에서 가장 재배하기 어려운 상용 작물 중 하나로 꼽힌다. 와사비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와사비는 수경재배로 기르는 게 일반적인데 와사비가 좋아하는 수온도 정해져 있다. 와사비는 9~16도의 깨끗한 물이 대량으로 흐르며 햇빛이 없는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일 년 내내 깨끗한 물이 콸콸 흐르는 그늘지고 차가운 곳에서 자란다는 이야기인데, 세상에 그런 곳은 많지 않다. 일본, 대만 남부, 뉴질랜드, 미국 오리건주 등에서 생산에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진짜 와사비는 맛이 다를까? 내 경험에 따르면 그랬다. 분야를 막론한 고급 식재료 맛의 공통점은 입체성과 신선도다. 하나의 식재료 안에 자연의 여러 맛이 들어 있고, 그 맛이 신선하기에 하나의 식재료 안에서 여러 가지 맛이 순식간에 나타나며 특정한 맛의 상을 이룬다. 진짜 와사비의 맛은 코를 찌르는 매운 느낌을 바탕으로 단맛, 쓴맛, 특유의 향이 향불처럼 들어왔다가 아련하게 사라진다. 내가 이 맛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캐시미어의 촉감처럼 확실히 고급스러운 면이 있다.
진짜 와사비인 줄은 어떻게 알았냐고? 내 눈 앞에서 갈아주니까. 고급 초밥집 중 오마카세가 시작되면 눈앞에서 와사비를 갈고 바로 만들어주는 곳이 있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의심을 아예 차단시키는 퍼포먼스다. 일본의 일부 횟집은 직접 갈아 먹으라는 의미로 강판과 생와사비를 내주기도 한다. 직접 갈아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러면 필요 이상으로 맵다. 와사비는 갈고 나서 10분 정도 지나야 매운맛이 빠지기 때문이다. 잘 먹고 다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진짜 와사비의 맛만큼이나 입체적이고 복잡한 것이 한국에서 와사비를 부르는 호칭에 대한 문제다. 가짜 와사비 기사를 읽다 보면 헷갈릴지도 모른다. “겨자무(서양고추냉이)를 사용했으면서 고추냉이(와사비)를 사용한 것처럼 제품에 표시한 업체가 적발됐다”는 게 이번 가짜 와사비와 관련해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첫 문장이다. 겨자무, 서양고추냉이, 고추냉이, 와사비는 어떻게 다를까? 정리하면 이렇다.
홀스래디시=겨자무=서양고추냉이.
와사비=고추냉이.
국립국어원이 일본어의 한글화 노력에 따라 와사비를 ‘고추냉이’라 부르기로 정하면서 생긴 일이다.
문제는 와사비와 고추냉이가 식물학적 분류로는 다른 식물이라는 점이다. 국립수목원의 표본 사진을 보면 와사비와 고추냉이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와사비를 고추냉이로 부르고 고추냉이는 참고추냉이로 부르기로 했다. 그러자 더 헷갈렸다. 참고추냉이의 학명은 ‘Cardamine Pseudowasabi’. 풀어 말하면 황새냉이속 Cardamine 가짜 와사비 Pseudowasabi다. 식물학 학명상 가짜 와사비를 부르는 이름이 참고추냉이가 되었다. 게다가 참고추냉이 자체가 없는 식물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국형 참고추냉이로 알려진 식물의 유전자검사를 해보니 한반도에 오랫동안 자생하던 미나리냉이 Cardamine Leucantha였다는 것이다. ‘입질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 김지민 씨가 올해 7월 밝힌 사실이다.
이 정황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꼬일 일은 꼬이게 마련이구나 싶다. 애초부터 와사비를 와사비로, 홀스래디시를 홀스래디시로, 고추냉이를 고추냉이로 불렀으면 될 일이다. 브로콜리나 아스파라거스나 블루베리는 그렇게 부르듯.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와사비를 고추냉이로 부르기로 하며 이야기가 복잡해졌다. 국립국어원 역시 나름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더 이해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세상의 모든 외국어 고유명사를 풀어 말할 수는 없고, 일본 고유명사를 굳이 한국어로 바꾸는 것도 괜한 자격지심처럼 보인다. 이유와 사연이 뭐든 이해하기 어려워질수록 개별 소비자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복잡한 현실과는 달리 한국에서 진짜 와사비를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국산 와사비를 주문하면 된다. 놀랍게도 한국에 와사비 수경재배에 성공한 업체가 있다. 한국에도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연간 풍부하고 그늘진 곳이 있는데,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철원이다. 철원의 샘통농장에서 1997년부터 와사비 재배를 시도해 성공한 후 지금 ‘철원샘통고추냉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산 와사비를 판매한다. 그걸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당신도 진짜 와사비를 먹어볼 수 있다.
다만 가격은 감안하셔야 한다. 샘통농장에서 파는 와사비의 가격은 1백 그램당 2만~3만원에 육박한다. 한국산 와사비의 킬로그램당 가격은 최대 30만원인 셈이다. 물론 그만큼의 값어치야 하겠지만 가격을 보고 나면 저렴한 가짜 와사비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글 / 박찬용(칼럼니스트)
- 피처 에디터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