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이토록 대담하고 극적인 도전자.
GQ 첫 솔로 미니 앨범이 나왔을 때 <지큐>와 만났더군요. 그때 받은 마지막 질문을 오늘의 첫 질문으로 해볼게요. “귀여운 것만 보면 정신 못 차린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최근에 본 제일 귀여웠던 ‘짤’은?”
LO 앗, 제가 뭐라고 답을 했었죠?
GQ 이렇게 말했네요. “팬사인회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웃는 저의 모습을 찍은 사진요.”
LO 진짜요? 제 입으로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어요.
GQ 잠시만요. 뒤에 더 있어요. “정말 바보같이 웃네. 짜식, 귀엽네.”
LO 반어법이네요, 반어법. 웃는 모습이 바보 같아서 귀엽다고 했을 거예요.
GQ 그래서 최근 제일 귀여웠던 사진은 뭐예요?
LO 조카를 찍은 사진요. 두 살인데 너무너무 귀여워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포뇨를 닮았어요.
GQ 얼마 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마쳤는데 공백기는 어떻게 보냈어요?
LO 레오가 아닌 정택운으로서 자기 객관화를 해보는 시간을 처음 가졌어요. 이십 대의 대부분을 레오로 살았거든요. 3일 이상 쉰 적이 없었어요.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날까지 공연을 했죠. 공백기가 전환점이 됐는데 갑자기 정택운의 삶으로 돌아오니 공허한 기분도 들었어요. 틈틈이 채웠으면 좋았을 텐데, 싶더군요.
GQ 물론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진 않았겠죠?
LO 처음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요. 9개월을 그렇게 지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과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보컬 레슨을 받았어요. 소리를 바꾸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어요.
GQ 11월에 공연하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준비하면서 달라진 소리를 적용해보고 있나요?
LO 노력 중이에요. 저는 운명론자인데 이 작품을 지금 만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일찍 만났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GQ 앙리 뒤프레와 괴물 1인 2역을 맡았는데, 뮤지컬계에서 워낙 힘든 역할로 통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껴요?
LO 겨울에 공연을 하는데 극의 절반 이상 상의 탈의를 하고요, 괴물이다 보니 발성 부분에서 난이도가 높아요. 소리를 계속 지르는데 목이 갈리는 듯해요. 그리고 넘버의 음역대가 저음부터 아주 높은 고음까지, 굉장히 넓어요. 외롭고 상처받은 캐릭터라 눈물 콧물 다 쏟아내기도 하고요. 예전에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해보면 어떨까 싶다가도 ‘어휴,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은 기억이 나요. 직접 해보니 왜 극악적인 역할이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GQ 그래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뭔가요?
LO 지금은 퍼즐 조각을 보고 있는 단계예요. 퍼즐을 맞추기 전 어떤 모양인지 살펴보는 중이죠. 일단 괴물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괴물이라고 해서 몸이 우락부락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처럼 저만의 괴물 만들기가가장 큰 목표예요.
GQ 몸을 잘 쓴다는 점에서 고난도 신체 언어를 표현해야 하는 괴물 역이 기대가 돼요.
LO 춤을 추기 때문에 몸을 잘 쓸 수 있겠지만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GQ 강렬한 퍼포먼스와 서사적인 콘셉트가 그룹 빅스의 색깔이자 경쟁력인데, 이런 부분이 뮤지컬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LO 맞아요. 빅스의 무대는 콘셉트에 몰입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게 잘 안 되면 자칫 유치하거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거든요. 덕분에 이번 작품도 그렇고 <엘리자벳>의 죽음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었어요.
GQ <프랑켄슈타인>은 여러모로 도전적인 작품인데 지금처럼 도전에 맞서면 어떤 상태가 돼요?
LO 저는 기준이 높아요.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고요.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제 자신을 괴롭히죠. 타협도 하지 않아요. 이 정도면 되겠다, 그런 게 없어요. 그런데 공백기 동안 자기 객관화를 해보니 제가 그런 도전을 즐긴 게 아닌가 싶었어요. 힘들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이뤄나가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고, 그래서 스스로를 밀어붙이면서 이겨내지 않았나.
GQ 결과는 어때요?
LO 물론 좋아요. 하지만 제 자신을 돌보지 못했어요. 저한테 일순위는 제가 아니었죠. 스스로한테 늘 미안한 부분이에요. 이젠 여유를 좀 갖고 저를 챙길 생각이에요.
GQ 정택운과 빅스의 레오, 1인 2역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LO 레오는 무대에 서는 사람이고 완벽주의 성향을 지녔어요. 책임감도 되게 강해요. 뭐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자신을 탓하죠. 그래서 정택운이 되는 시간에도 레오로 살았어요. 계속 고민하고 파고드느라.
GQ 그럼 정택운은요?
LO 레오보단 유약해요. 레오가 워낙 강해서요. 하지만 정택운이 곧 레오예요. 지금 하는 일도 정택운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빅스가 1위를 하면서 중압감과 책임감이 따랐죠. 사람들의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고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레오도 커졌어요.
GQ 정택운이 괴물 같은 힘을 냈던 적은 언제예요?
LO 축구선수 생활을 했던 중학교 때부터 데뷔 전까지요. 어린 나이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루 종일 운동을 해야 했는데 그 시기를 버텼던 제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힘들고 지칠 때면 ‘지금보다 훨씬 어린 정택운도 해냈는데 고작 이걸 못 해?’라며 마음을 다잡아요.
GQ 시간이 더 쌓여야 가능한 범주의 일도 있어요?
LO 저는 이상향을 꿈꾸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에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저걸 해봐야지, 이런 이상을 이루기 위해선 현실 감각이 필요해요. 그래서 큰 그림이나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지금 주어진 것부터 잘 해나가려고 해요. 저한테 이상향은 삶의 목표라기보다 방향성 같아요. 흘러가는 대로 잘 사는 게 꿈이라면 꿈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진짜 열심히 살아야 해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말이죠.
GQ 하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LO 그래서 연연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해요. 저는 결과물이 나오면 그대로 받아들여요. 예전 앨범을 들으면 당연히 아쉬워요. 하지만 그때의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았기 때문에 그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GQ 지금 온 힘을 다 쏟고 있는 건 뭐예요?
LO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이 일순위예요. 원래 활동을 재개하면 앨범을 먼저 내고 싶었지만 이 작품에 대한 욕심이 그만큼 커요.
GQ 공백기 동안 음악에 대한 고민도 했을 텐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은 어떤 거예요?
LO 겉멋을 빼고 싶어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그리고 싶은 음악을 악기나 어떤 효과로 멋있는 척 포장하지 않고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가사에도 변화를 주려고요. 제 이야기를 많이 담았는데 그게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장황하게 이야기로 풀어내니까 곡을 듣고 나서 아무런 이미지가 남지 않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겠더라고요.
GQ 그나저나 뮤지컬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LO 2013년에 박효신 형이 나온 <엘리자벳>을 보고 압도당했어요. 막연히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GQ 그리고 운명처럼 5년 뒤 <엘리자벳>에서 ‘정택운만의 토드’를 만들어내 큰 호평을 받았죠.
LO 당시에는 부담감이 말도 안 되게 컸는데 지나고 보니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어요.
GQ 그런데 연습생 때 연기 연습은 죽어도 받기 싫다고 했다면서요.
LO 연기는 제 길이 아니라고, 끝까지 버텼죠.
GQ 뮤지컬을 해보니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LO 배우 간에 주고받는 호흡과 기운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좋아요. 극 중에서 저는 죽기도 하고, 제가 죽으면 누군가 저를 위해 눈물을 흘려요. 잠시나마 저와 다른 삶을 살아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동료들과 공유하는 순간이 중독적이리만큼 행복해요.
GQ 자신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감정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LO 너무 치열했고 너무 힘들었고 때로는 아파하며 이십 대를 보냈어요. 그때마다 무대를 통해 힘과 위로를 얻었어요. 저를 채워주고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건 무대뿐이었죠. 그래서 아무리 혹독해도 제 길을 꾸준히 나아갈 수 있었어요.
GQ 인생 2막을 맞이한 지금은 어때요?
LO 제가 익숙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편안함이에요. 하루를 편안하게 쉬면 불안해요. 좀 더 나이가 들면 ‘오늘은 쉬어도 돼, 괜찮아’라고 편안함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때 더 이상 도전할 게 없다면 되게 슬플 것 같아요.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두렵기도 하지만 무척 설레고 행복해요. 왜냐면 도전할 게 있으니까. 도전은 저를 아프고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열심히 도전하며 사는 게 저의 업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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