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당신의 도시를 만나는 방법

2021.11.16전희란

허락되지 않는 장소와 건축물을 경험하는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은 도시라는 무대에 직접 뛰어들어 나의 도시를 체득하는 과정을 선사한다.

삶의 토대이자 배경이 되는 도시 환경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는 일부에 그친다. 평소 허락되지 않는 장소와 건축물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현대 유산의 뛰어난 건축 공간이 주는 영감을 체득하게 한다. 사적인 영역의 일시적 전환을 통해 도시의 중간지대를 만들고, 이를 통해 도시를 무대로, 건축을 주인공으로, 시민이 주체가 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경험을 이끌어내는 것, 전 세계 46개 도시에서 열리는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의 취지다.
도시는 자연환경과 물리적 구축물인 건조 환경 Built environment으로 이루어진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구조로 엮여 있는지, 지역의 특성과 조직은 어떠한지 보여준다. 아파트 단지와 저층 다세대/다가구 주택, 오피스 빌딩 숲 등 법과 제도에 따라 용도가 다른 건물들의 군집을 보기도 하고, 구도심의 유기적인 조직과 격자형으로 뻗어나간 신도심 가로의 차이도 볼 수 있다.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는 어떨까? 출퇴근길에서, 특정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 교통수단을 통해 혹은 도보를 통해 우리는 도시를 가로지른다. 가로수길이 주는 매력을 느끼고, 도로의 폭과 건물의 높이가 주는 규모에 따라 편안함 혹은 위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거닐며 머물면서 나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생각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과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형상과 배경 Figure & Ground’은 건물을 형상으로, 그 외 도로와 공지를 배경으로 접근하는 개념이다. ‘형상과 배경’으로 바라본 도시는 물리적 구축물 Solid과 빈 공간 Void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그곳이 접근 가능한 곳인가를 살펴보면, 도시공간의 성격은 더 세분화된다. 빈 공간이라도 접근이 허락된 공간 Open Void과 차단된 공간 Gated Void이 존재하고, 건축물 Solid에도 방문 가능한 건물과 허락된 사람만 출입하는 건물이 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접근 가능한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다.


도시의 많은 장소와 공간은 사적 영역과 상업 영역에 포함되어 있고, 우리는 그 너머를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허락된 보이드와 건축물을 통해 도시를 경험하지만, 안타깝게도 뛰어난 현대 건축물과 장소의 많은 경우는 사적 영역에 놓여 있다. 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뛰어넘어 누구나 뛰어난 건축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도시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무장 해제하는 경쾌한 시도, 도시의 문턱을 낮추는 도시건축 축제가 바로 오픈하우스서울이다.
닫힌 공간의 문을 열어 모두가 건축물에 접근 가능하도록 한 도시건축 축제는 1992년 런던에서 시작했다. 빅토리아 손튼 Victoria Thornton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건조 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도시의 문을 여는 ‘오픈하우스런던’을 기획했다. 무엇보다 문화재가 아닌 현대 건축에 대한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도시의 뛰어난 환경과 건축이 어떤 감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예술 경험을 이끌어냈다. 런던에 이어 2002년 오픈하우스뉴욕이 문을 연 후 지금까지 전 세계 46개 도시가 이 오픈하우스 월드와이드에 함께하며,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2014년 시작해 올해 8번째 문을여는 오픈하우스서울은 46번째 도시로 이 국제 네트워크에 동참하고 있다.
오픈하우스서울의 핵심은 평소 방문하기 힘든 건축물과 장소를 한시적으로 개방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개념’은 사적 영역을 공적 공간으로, 상업 공간을 비상업 공간으로 도시 공간의 성격을 일시적으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만나는 중간지대가 만들어지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해, 뛰어난 건축 공간의 감흥과 함께 도시에서 환대받는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특히나 한국의 도시들은 공적 인프라의 부재를 민간 개발이 채우면서 도시 공간의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도시 공간의 심리적 장벽이 많은 이유다. 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서고 건축을 도시 문화의 한 구성원으로 다룰 때, 우리는 보다 나은 도시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오픈하우스뉴욕이 9.11 테러로 경직된 뉴욕에서 개방성과 접근성을 옹호함으로써 더 역동적인 시민 생활을 이끌어냈듯, 오픈하우스서울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중간지대를 넓혀 우리 도시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도시 환경과 건축을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우리의 도시를 이야기하고자 시도한다.
지난 7년 동안 오픈하우스서울은 을지로에서 서울시청 광장까지 이어진 100년 된 하수구를 탐방하고, 아름다운 기업의 사옥을 방문했다. 가장 사적인 집의 공간을 열기도 하고, 대선제분과 같은 오래된 공장을 방문해 그 가능성을 상상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해 서울관으로 쓰이는 기무사 옥상을 캠핑장으로 바꾸기도 하고, DDP의 유려한 지붕을 걸어보기도 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함께 도시 안의 또 다른 영토인 대사관저의 문을 열기도 하고,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도시의 내력을 담은 장소와 동시대 뛰어난 한국 건축, 건축가가 있었다. 건축가들이 어떻게 도시를 바라보고 건축을 설계하는지, 그 건축물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구조와 재료를 사용하는지,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공적인 영역을 고려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그 자체로 우리의 도시 환경을 읽어내는 가이드가 되곤 했다. 도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단순히 답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라는 무대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하면서 ‘나의 도시’를 체득하는 과정을 선사한다.


기꺼이 방문자를 위해 문을 열던 활발한 도시 탐색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내렸다. 많은 도시 축제들과 마찬가지로 경직된 도시 공간 안에 멈춰 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경계가 강화된 도시의 오픈하우스들이 온라인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전 세계 도시는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기도 했다. 지난해 처음 열린 오픈하우스 월드와이드는 전 세계 도시들을 48시간 중계하며 한 자리에 모였다. 텅빈 런던의 거리를 자전거로 활주하는 라이브나 코로나로 다시 환기된 집의 요소들에 대한 영상을 소개하면서, 도시 공간은 코로나로 닫혔지만 여전히 우리가 도시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환기하기도 했다.
건축 공간의 감흥을 직접 경험하길 바랐던 오픈하우스서울 역시 올해도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과 일부의 현장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소극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건축 공간의 경험을 제안하면서,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도시의 광장까지, 우리의 도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도시의 상황은 우리가 함께 고민할 여러 테마를 던져주기도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확대된 공공 공간의 필요를 제기하고,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과하는 도시가 아니라 장소를 찾고 경험하면서 나만의 도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는 각자의 지도 만들기 게임”이라는 건축가 최욱의 말처럼, 서울에 대한 개개인의 지도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나의 도시’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임진영(건축 기획자 & 오픈하우스서울 대표)

    피처 에디터
    전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