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HOLY NIGHT, 홀로 차 안에 앉아.
RED MOOD ― 저무는 해가 붉은색 대시보드를 비추자 차 안은 제법 따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든다. 이런 무드에서 음악이 빠지면 서운하니까, 블루투스를 연결해 잭슨 파이브의 ‘Give Love On Christmas Day’를 틀어놓고 시트를 살짝 젖혀 눕는다. 차 안을 빙 둘러 배치된 8개의 하만카돈 스피커에서 열 살 남짓, 마이클 잭슨의 영롱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린 마이클 잭슨의 미성은 언제 들어도 신비롭다. 잭슨 형제들의 솔 가득한 코러스는 또 어떻고. 팔짱을 낀 채 느린 템포를 따라 검지로 툭, 툭, 옆구리를 두드리면서 눈 내리는 주차장에서 즐기는 이런 크리스마스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심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IM GRINCH ―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별로.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더 별로. 뾰족하게 심술 난 마음이 꼭 영화 <Grinch>의 초록 괴물, 그린치를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에 시내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니까, 이참에 텅 빈 외곽 도로나 시원하게 내달리며 기분이라도 내는 편이 낫지 싶었다. 이왕이면 세팅도 다시. 드라이브 모드는 스포츠, 초록색 엠비언트 라이트에 맞춰 음악은 영화 <Grinch>에 삽입된 일스의 ‘Christmas is Going to The Dogs’가 좋겠다. 뼈나 던져달라, 크리스마스보다 개껌이 좋다, 그냥 불 옆에 누워 있겠다는 아무‘개’의 시큰둥한 노랫말이 꼭 내 마음 같기도 해서.
GO EAST ― 문득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낯선 곳으로 가서 낯선 크리스마스를 만나면 괜찮겠다, 싶었다. 겨울비가 매섭게 내리지만 고민 없이 차에 오른다. 두 손은 운전대에 고정한 채, 통화하듯 목적지를 말하자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에 경로가 척, 나타난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2시간 30분 남짓. 거기에도 겨울비가 내리고 있을까? 밸트를 쭉 당겨 매며 다시 인포테인먼트에 퀸의 ‘Thank God It’s Christmas’를 주문한다. 노랫말 “Will Make This Christmas Right”를 꾹꾹 눌러가며 노래하는 프레디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니까.
LET IT SNOW ― 하루 종일 컴컴하던 하늘은 결국 눈이 아닌 비를 뿌렸다. 도로 상황을 생각해 평소 같으면 다행이라고 여겼겠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내심 펑펑까진 아니더라도 살금살금 떠다니는 흰 눈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대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를 들으며 기분이라도 내볼까? 중앙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보랏빛 엠비언트 라이트가 올드 팝의 멜로디와 묘하게 어울린다. 순간 운전석은 작은 청음실 같기도,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아담한 바 같기도 한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으로 뚝딱, 변신한다. 아무렴 어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싹 잊게 만드는 O Holy Night!
- 콘텐츠 에디터
- 신기호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