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야근 지옥에 빠진 카피라이터의 24시간

2021.12.06김은희

시대를 풍미하던 광고 카피는 숏폼 물결 속에서 어떻게 유영하고 있을까. “소셜스럽게 해주세요” 의뢰를 듣는 요즘 카피라이터의 24시간.

밤 12시 9분. 나는 지금 야근 중이다. 농담 하나 안 보태고 한 달 동안 이런 식이었다. 평일 집에서 아내와 오붓하게 저녁을 먹은 횟수가 지난달에만 2~3회뿐이다. 뭐가 문제일까? 문제는 정말 많지만 내 생각에 지금 나를 지옥의 뻘밭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건 바로 ‘숏폼’을 표방한 SNS 채널들이다. 내가 지금 왜 지옥에서 허덕거리는지, 그 탓을 왜 SNS에 돌리는지, 난데없는 상황에 설명 겸 내 직업과 간단한 이력을 밝히겠다. 나의 직업은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이자 기획자. 모 업체의 SNS 대행 업무를 하고 있으며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10년간 잡지사 에디터로 일했다. 그래서 지금 일이 수월하냐고? 전혀 아니다. 신입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매일 삐걱댄다. 하루하루가 위태롭고 불안하다. 잠깐, 팀장님이 부른다. 넵!
새벽 3시 35분. 퇴근하고 집에 왔다. 자, 다시 글을 이어볼까? 컴퓨터 먼저 켜고, 잠깐! 잠시만 눕자. 딱 10분만 누워서 허리 좀 쫙 펴자. 오후 12시 41분. 점심을 먹고 왔다. 새벽에 그대로 잠들었다가 부랴부랴 출근해 밤새 클라이언트로부터 온 30통 넘는 메일에 답장을 하는 사이 오전 시간이 사라졌다. 앞으로 약 50분간은 자유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직원들끼리 서로 건들지 않는다. 메일을 열어보지 않아도 된다. 휴, 이제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하겠다. 어제 새벽 나는 수많은 SNS 채널과 포털 사이트들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유튜브,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등의 채널에 올려야 할 광고 소재와 여기에 붙는 카피를 정리하는 일로 몇 시간을 헤맸다. 타임보드, 롤링보드, 반응형 광고, 비즈보드, 비즈보드 익스펜더블, 마스트헤드, 트루뷰 인스트림, 경매형 인피드 광고, 트렌드 테이크오버 플러스, 프로모션 트윗, CPM, CPC, CTR…. 이게 다 디지털 광고 지면의 상품명이다. 쉽게 말해 잡지의 광고면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 광고대행사에서는 각 SNS 채널을 매체라고도 한다. 수많은 ‘매체’를 파악하느라 두 눈알과 머리털이 다 빠질 뻔하면서 나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건 넘치는 매체, 자가 증식하듯 늘어나는 광고 상품 수만이 아니다. 광고주의 아리송한 요청을 이리저리 유추하고 해석하느라 또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예를 들면 “소셜스럽게 해주세요”.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길 원합니까?”라고 광고주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은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 한다. ‘소셜스럽게’ 를 정의하는 일은 당분간 어떤 광고회사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광고계도 SNS라는 플랫폼이 가져온 혼란에 여전히 어리둥절한 것 같으니까. ‘소셜스럽게’란 맥락 없이 웃기게만 하란 말일까? B급을 가리키는 걸까? 소통을 강조하는 말일까? 이건가 저건가, 과일가게에 수북이 쌓인 수박을 하나하나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전략을 짜고 아이디어를 고른다.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만 더 살펴보자. 우선 내가 체감하는 광고계, 특히 텔레비전 CF 분야의 상황은 이렇다. 업계 동료에 따르면 예전에 그가 다녔던 광고 회사는 텔레비전 CF 한 편에 온종일 매달렸다고 한다. 그 한 편을 위한 준비기간이 좀 힘들긴 해도 온 에어 되면 몇 주는 편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SNS 운영과 관리’라는 게 생겨서 1년 365일 광고주와 SNS에 찰싹 달라붙어 신경 써야 한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도 나처럼 거의 매일 야근한다. 보통 한 업체를 전담하는 인원이 서너 명. 이 팀에 다른 업체 업무가 또 붙는다면 이 팀원들에겐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두 업체가 요구하는 것들, 이를테면 (수많은) SNS 운영 아이디어 제안, 결과 보고, 미팅 등의 일을 일주일 단위로 업데이트하면서 쫓아다녀야 한다.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허덕거리면서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한 동료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이게 된다고? 진짜로?”
숏폼과 SNS가 광고의 새로운 매체가 된 현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런 플랫폼과는 거리를 두는 전통적인 광고 회사도 있다. 아마 쉽사리 SNS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인력과 시간이 전에 비해 훨씬 많이 투입되는 반면 따라오는 수익은 아직까지 그에 미치지 못해서다. 쉽게 말해 365일 내내 클라이언트에 시달리면서 진을 빼는 것보다 CF 한 편 만들고 헤어지는 게 더 효율적이고 깔끔하다는 거다. 무엇보다 SNS 콘텐츠 운영에 능한 인력 또한 부족하다.(매우 중요한 점. “소셜스럽게”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소셜스러운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는 직원이 꼭 있어야 한다.) 아, 점심시간이 끝났다. 메일을 열어보니 이번엔 51통의 읽지 않은 메일이 있다. 키보드에 손을 조심스럽게 올리고 방어 태세에 돌입한다. 이야기는 또 잠시 후에.


오후 3시 49분. 잠깐 쉬는 시간. 바람 쐬러 회사 건물 옥상으로 올라왔다. 혹시 이 사실을 아는가? 지난 2월 유튜브 통계 분석 전문 업체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광고 수익 유튜브 채널은 인구 529명당 1개 꼴로 집계됐다. 유튜브 기준으로만 이 정도 수치일 뿐, 다른 SNS 플랫폼까지 추산하면 사실상 현대 사람들 대부분 SNS를 통해 돈을 벌고 있거나 적어도 돈을 벌 기회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세계는 이미 거대한 기획자들의 도시다. 지금 우리가 하는 SNS 광고대행 일은 개인의 SNS 생활과 다르지 않다.
오후 5시 58분. 퇴근을 할까 말까 고민을 잠깐 하다가 그만두고 에라 모르겠다 쉬는 시간. ‘잘 쓴 문장’의 정의가 바뀐 시대다. 어느 날 SNS 피드 하나를 위한 ‘멘션(카피)’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있었다. 멋진 문장으로 휘리릭 꾸미려고 시간을 꽤 썼다가 이렇게 적었다. “탐나면 오세요!” 이걸 본 나보다 한참 어린 기획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소장 욕구 뿜뿜!”이라고 제안했다. 와…, 획기적인데? 어떻게 이런 멘션을 쓰지? 내 머릿속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카피다. 나는 어린 기획자를 칭찬했다. 지난 10년간 에디터 생활을 하면서 자리한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을 쓰라’는 완고한 지침이 와장창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밤 10시 28분. 아이데이션 회의가 끝났다. 맥락 없고 정신없어 보이지만 숏폼 콘텐츠 사이에서는 그들 나름의 성공 법칙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헤매고 또 헤맨다. 예를 들면 우리의 제안서에는 이런 내용들로 꽉 차 있다. “<지큐> 유튜브 채널 ‘컬찢남’을 활용한 아이디어 실행 방안”. 아주 무딘 송곳으로 현실을 꽉 메운 어떤 덩어리를 뚫는 일 같지만, 그렇게 그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우리끼리 재미있다고 손뼉친 아이디어를 우겨 넣는다. 그러고 보니 누구나 감탄할 만한 굉장한 아이디어를 실행시키는 일은 다 망가진 잇몸에 임플란트를 박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 잇몸과 새 치아를 넣어 반짝반짝하고 멀쩡하게 만드는 일은 대담하면서도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새벽 3시 37분. 드디어 퇴근이다. 할 말이 더 있지만 그만하고 자야지. 화면 조정 시간이 없는 온 에어 플랫폼을 3시간 뒤 다시 마주하려면. SNS 세상을 나와 동료들은 이렇게 떠받치고 산다. 애처로운가? 하지만 숏폼, 우리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즐기시라. 그래야 우리의 레퍼런스가 풍부해진다. 광고 소재를 활용할 곳이 다양해진다. 피드를 헤엄치는 우리의 ‘멘션’이 당신의 “좋아요”를 받길 바라며. 글 / 윤성중(카피라이터)

    피처 에디터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