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매달 예쁜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에 디자이너들이 보내온 여섯 개의 서신.
Magazine Lego 길종상가 @parkgagong
“ 어떤 프로젝트를 위해 늘 빠른 시간 내에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고, 버려요.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나 캠페인을 하면서도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니, 아이러니죠.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이번 프로젝트를 만났어요. 직접 만들지 않고 아이디어 스케치와 구상 정도로 모두와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죠.” 길종상가가 고안한 ‘매거진 레고 Magazien Lego’는 잡지나 책을 쌓거나 말고, 종이 테이프로 감싸 구조를 만든 뒤 아크릴 혹은 유리판을 올려서 선반이나 테이블을 만드는 아이디어다. 버리기는 선뜻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쌓아두면 애물단지인 무수한 잡지를 이용해 누구나 자신의 공간에서 뚝딱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신박한 방법. “친환경적인, 재활용이 가능한 원재료를 가지고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만든 적은 있지만, 잡지를 이용해 만들어본 건 처음이에요. 잡지를 분해해 낱장의 종이로 사용하기보다는, 잡지 그 자체를 원재료로 사용해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종상가는 ‘GQ’의 로고 타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책을 둥글게 만 형태로 표현했다. “직접 구현하고 싶은 공간요? 에디터의 방이나 구독자의 공간에 마구잡이로 쌓인 수많은 잡지로 연출하면 재미있겠네요.” 길종상가는 1년에 4번, 에르메스 쇼윈도 작업을 진행한다. 현재는 신차 발표회를 위한 재활용 오브제 설치를 구상 중이다.
Bloom Holder 아틀리에 에스오에이치엔 @atelier_sohn
‘블룸 홀더 Bloom Holder’는 쉽게 구부리고 겹칠 수 있는 종이의 성질을 활용해 명함이나 펜을 수납하는 기능을 지닌 데스크 액세서리다. “잡지에 쓰이는 종이 재질은 비교적 질기고 내구성이 좋아 충분한 사용성을 지녀요. <지큐> 과월호의 다양한 페이지 조합은 그래픽적 요소로 활용하고, 베이스 역할을 하는 금속 재질은 가벼운 종이와 대비되는 무게감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거예요. 우선 제가 <지큐>의 오랜 팬이라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막연히 종이를 재활용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대상이 잡지이고, <지큐>의 과월호이기 때문에 각 페이지의 퀄리티 있는 사진과 그래픽 요소를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에서도 이 지점을 살려 <지큐>가 써내려온 이야기가 살아 있기를 바랐죠. 우리가 일상에서 잡지를 넘기고 구부리는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그 경험의 잔상이 오브제를 만드는 과정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했고요.”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에 좀 더 다양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아틀리에 에스오에이치엔의 손동훈은 이제는 자원 순환의 측면에서 자원의 수명을 늘리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잡지의 미학을 일상으로 연장하는 아이디어는 반짝 빛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아트 퍼니처 B.S.P 시리즈가 있고, 디자인 마이애미 2021에서 보테가 베네타와 협업해 개인전을 열었다.
Annual Magazine Chair 나이스워크숍 @niceworkshop_
“ 잡지는 한 달이 지나면 생을 다하죠.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력을 잃지만, 반대로 희미해지는 잡지의 생명력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가구를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나이스워크숍의 ‘애뉴얼 매거진 체어 Annual Magazine Chair’는 의자의 시트가 비어 있는 미완성의 형태로 작업이 완료된다. 빈 의자의 시트에 잡지를 한 권씩 쌓아 올리고, 1년 동안 12권의 잡지가 쌓이면 그것이 온전히 시트 역할을 하는 의자로 완성된다. 가구 뒷면에는 잡지 수납공간을 두고, 하부에는 롤러를 결합해 이동식 수납장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처음 이 기획 주제를 들었을 때 단번에 흥미롭다고 느꼈어요. 오늘날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이에 우리가 무의적으로 놓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기존에 작업을 진행하면서 ‘새 활용’을 통해 버려지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제작하거나 생산할 때 무거운 책임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라며 디자이너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토로했다. “애뉴얼 매거진 체어를 현실에 꺼내놓는다면, 잡지를 판매하는 서점이나 중고책 서점에서 기획 의도에 맞게 구현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스워크숍은 곧 선보일 개인 전시에서 새로운 가구 시리즈를 공개할 예정이다. 대표작으로는 리모와의 알루미늄 재료를 결합해 제작한 ‘RIMOWA BLC’와 볼트 라운지 체어가 있다.
Alchemy 텍모사 @texmosa
텍모사 Texmosa의 ‘연금술 Alchemy’은 <지큐>를 타일과 같이 하나의 패턴을 가진 모듈로 인식한 작업이다. 분해가 되면 다시 종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화학적 작업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고민에서 착안한 아이디어. 이러한 각 모듈들은 결합되어 가구의 일부로서 역할한다. “평소에는 주로 주관적인 주제로부터 작업이 시작돼요. 이번 기획 제안을 받고는 동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웠죠. 그동안은 재활용, 새 활용이라는 말의 진정성을 별로 믿지 않았어요. ‘선한 의도’에 숨어서 또다시 무분별하게 상품화되고, 다른 쓰레기를 만드는 ‘선한 얼굴을 한 악순환의 고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기회로 새 활용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라도 누군가 시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초기 구상 단계에서는 잡지를 종이로 인식해 분해하는 과정을 거쳐보았는데 그렇다면 굳이 대상이 잡지, 더군다나 <지큐>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잡지를 활용한 작업이라면 그 특성을 최대한 살려보고 싶었죠. 쓸모없어진 어떤 것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현대의 연금술 아닐까요?” 겹겹이 쌓인 잡지가 가진 무수한 가능성. 텍모사의 대표작으로는 ‘청각의 시각적 전환’을 통해 음악을 입체화한 연작, ‘Playlist Series’가 있다.
Magazine Lamp Series 권중모 @jungmo_kwon
한지를 베이스로 작업하는 권중모는 ‘매거진 조명 시리즈 Magazine Lamp Series’를 고안했다.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가장 많이 버리는 물건이 잡지였어요. 무게와 부피를 줄일 때 가장 용이한 게 잡지였으니까요. 버려지는 잡지를 보면서 공들인 기간에 비해 소장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죠.” 한지에 동시대적인 감각을 부여하고자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Layers’라는 작품을 만든 그는 <지큐>에 한지를 접목한 조명을 고안했다. “접은 한지를 잡지 안에 넣고, 잡지의 오린 부분을 통해 한지의 투과성을 드러내는 작업이에요. 잡지가 조명의 프레임이 되는 거죠. 한 권으로 된 램프, 두 권 혹은 세 권이 연결된 램프, 혹은 더 여러 권의 잡지를 연결해 공간에 풀어내는 설치 작업으로 확장해 연출할 수 있다면 과월호 잡지를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중모는 평소 오래된 것, 혹은 한국 전통 소재나 가공 방법 등 시대의 변화로 수요가 줄어가는 것을 재해석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깊은 관심을 두고 작품에 적용시킨다. 잡지는 그에게 흥미로운 재료일 수밖에. “미흡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면 비록 속도는 느려도 선한 영향력으로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권중모의 대표작으로는 ‘Layers Series’가 있으며, 현재는 상반기에 선보일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GQ Paper 햇빛스튜디오 @sunnystudio.kr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햇빛스튜디오는 ‘GQ지’를 떠올렸다. <지큐>의 화려한 페이지를 세절해 색색의 콘페티(Confeti, 여러 모양으로 잘린 사육제, 색종이 조각)로 만들어 종이로 제작하는 아이디어다. “이번에 새 활용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환경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어요. 그래픽 디자이너는 의도치 않게 한 번 쓰고 버려질 물건을 많이 만들게 되는 직업이죠. 비록 아이디어와 스케치 단계이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이유예요. 마치 속죄하는 마음으로 임했죠. 요즘은 인쇄물을 만들 일이 점점 줄고 있어 종이와 서먹해졌지만, 종이는 무척 친환경적인 재료라고 생각해요. 그 특유의 속성을 살려보고 싶었죠.” <지큐> 종이를 둘로 나눠 하나는 산산히 조각내고, 하나는 잘게 찢어 해체한 콘페티는 마치 축제의 꽃가루처럼 새 종이 위에 예쁘게 얹힌다. 그 자체로 패턴이 되는 것이다. <지큐>의 배송 포장지, 봉투,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든 활용될 수 있다. 왜, 우리는 포장을 하기 위해 다시 포장지를 생산하지 않는가. “<지큐>는 내지 화보와 디자인, 하물며 광고까지도 매우 화려한 잡지잖아요. 잘게 부쉈을 때 예쁠 것 같았어요.” 햇빛스튜디오는 최근 국제앰네스티가 개최한 <국제앰네스티 편지 쓰기 캠페인 전시 WRITE A LETTER, ENTER CHANGE>에 참여했다.
- 피처 에디터
- 전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