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해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삽입? 사정? 아니면 오르가슴일까? 이 세 가지 기준이, 섹스에 있어선 얼마나 중요한 걸까?
누구나 섹스를 하지만, 기준은 다양하다. 이건 몇 번의 술자리와 전화 인터뷰로 그들의 기준을 취합한 작은 결과다. 결과를 분포도로 그리면, 좌표엔 작은 점만 무작위로 찍힐 것 같았다. 첫 번째 술자리, 남자 셋이 모였다. 불쾌하게 취하기 전에 섹스 얘기가 나왔다. A가 만나고 있는 여자 얘기였다. 둘은 애매한 사이였다. 사귄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 섹스를 한다고 했다. 아니, 할 뻔했다. 아니, 했다고 해야 하나?
“모텔엔 몇 번 갔지. 근데 자진 않았어.”
“잠을 안 잤어?”
“자고 다음날 아침에 나왔지.”
“근데 섹스를 안했어?”
에디터와 B가 A를 추궁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여자였다. A의 아는 동생이라는 소개를 받고 넷이서 술을 마셨었다. 그게 지난 주였다. A는 우리 둘을 남겨놓고 ‘동생’과 자리를 떴다. 이건 그날 있었던 얘기다. A가 말했다.
“걔가 또 좀 취했어. 팔짱을 끼고 자꾸 안기길래 모텔에 갔지. 키스하고, 옷 벗기고 그랬지. 그러다….”
“했어, 안 했어?”
“음…. 안 했어”
‘팩트’는 이랬다. 친구와 ‘아는 동생’은 서로 호감이 있었다. 모텔엔 네 번 정도 갔다. 이미 전라로 뒹군 적이 있는 사이였다. 물고 빨기로 밤을 다 샜다. 그런데 끝까지 한 적은 없었다. 삽입은 했지만 사정은 안 했다는 얘기다. A가 대답을 망설인 이유였다. A는 그런 남자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타입이 아니었다. 서울역에 갈 땐 반드시 경부선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야 했다. 용산역에 내려서 1호선을 타거나,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는 건 죽어도 싫었달까? 가도 갔다고 할 수 없었다. 이유는 없었다. A의 종착지는 확실했다. 체내 사정이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갈 때마다 콘돔이 없었거든. 모텔에 있는 건 또 싫대. 그런 게 지 몸에 들어오는 게 싫다나. 다른 사람이 했던 걸 또 쓰는 것 같대.” 그래서 사정은 안 했다. 결국, A와 ‘아는 동생’은 네 번이나 모텔 에서 밤을 보내고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이로 남았다. “치사한 새끼, 걔는 분명히 너랑 잤다고 생각하고 있을걸?” 하지만 A가 욕먹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무책임한 남자가 아니었다. 일말의 감정도 없이 재미로만 자고 마는 불한당도 아니었다. 그 여자애와 네 번의 밤을 보내면서도 매번 열과 성을 다했다. 단지, 체내 사정에 집착할 뿐이었다. 그건, 그냥 그런 거다. 이것도 취향이라면 취향이랄까, 어쨌든 A의 기준이었다. 한편, B의 기준은 ‘삽입’이었다. 사정엔 집착이 없었다. “청소년 자위하듯이, 나만‘분출’했다고 만족하는 게 아니잖아.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과, 상대방도 좋아하고 있는 걸 원하는 만큼 봤는가도 생각해야지. 만족과 배려? 배려의 기준은… 여자애들은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할 땐 그 이후에 만족도에 대한 얘기도 솔직하게 할 수 있잖아. 그리고, 아무래도 여자애 가 몸으로 반응을 하지. 난 그걸 느껴야 ‘했다’고 생각해. 정서적으로도. 그래서 혹자가 누구 누구와 잤다고 얘기하려면 ‘삽입’이 꼭 있어야 한다고 본다.” 두 번째 술자리. 소설가 P씨는‘섹스의 기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호언장담했다.“ 난 무조건 여자가 절정에 오르는 걸 봐야 해요. 안 그럼 했다고 할 수 없지.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걸 못 보면 난 그냥 마음이 불편해. 그건 내 보람이기도 해요. 섹스는 그렇게 해야지.” 시인 J씨는 혀를 찼다.“ 네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허풍이냐”는 거였다. 여자가 절정에 오르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여자 들은 가끔 느낀 척을 하기도 한다고, 그것도 ‘리얼’하게. 12월 섹스 칼럼 ‘스물여덟 여자들의 섹스이야기’에 등장했던 영어 강사 박수진 씨 (가명)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런 남자들이 꼭 있죠. 전혀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그걸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나봐? 남자는 사정을 해야 느끼지만, 여자는 ‘했다’는 자체가 중요해요. 오르가슴은 느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하지만 그걸 못 느꼈다고 해서 안 좋았다고는 못해요. 해서 좋았다고 느낄 땐 삽입 자체가 좋은 거죠. 근데….”
“그런데요?”
“그런 건 있어요. 남자가 사정을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찝찝해요. 이왕 시작한 건데, 좀 그런 것 같애.‘ 끝났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고, 그럼‘했다’고는 말 못할 것 같아요. 안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깔끔하진 않죠.”
“그럼‘했다’의 기준이 남자에 있는 건가요?”
“…남자에 맞춰주는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못 느꼈어. 그럼 또 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렇다고 안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근데 남자는 사정을 안 하면 못 느낀 거잖아. 그래서 진짜 하기 싫을 때도 참고 할 때가 있죠. 그럴 땐 어떻게 해서든, 빨리하도록 유도를 하죠.”
어떻게 ‘유도’하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았지만, 이후에 만난 여자들도 비슷한 얘길 했다. 선배 L씨는 이렇게 말했다. 옆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삽입은 1번, 사정은 2번, 오르가슴은 3번이라고 미리 정해놓고 물어봤다. “일단 3번은 ‘했다’의 기준이 될 수 없어. 그건‘잘’한 거지. 웰 던.‘ 던done’의 기준은, 난 1번이야. 남자의 2번엔 굳이 집착 안 해. 여자들끼리 ‘했다’고 얘기할 땐 주로 1번이지.” “어떤 소설가는 여자의 3번을 봐야 했다고 생각한대요.” “풉, 웃기지 말라고 그래.” <소녀경>에선, 사정 없이 오래 지속되는 섹스를 일종의 경지로 봤다. 그래서 남자의 사정을 연장하는 기술에 비중을 두고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정이든 삽입이든, 오르가슴이든 그건 섹스를 둘러싼 서양 중심, 혹은 남근 중심의 신화다. “손으로 하든, 입으로 하든, 사정하면 한 거 아닌가요?” 이니셜로도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한 남자의 기준은 철저히‘헌법’에 의거하고 있었다. 유사 성행위도 섹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도 관계없었다. 용산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든 택시를 타든, 서울역에만 가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결국 사정이 기준이라는 말이다. 지난 10월 이후 에디터의 섹스 칼럼을 주의 깊게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삽입과 사정의 느낌에 대해선 자세히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1월 칼럼 ‘중국 여인과 일별함’에선 이렇게 썼다.“ <색,계>처럼 아크로바틱하진 않았지만 탕웨이만큼은 뜨거웠다. 제니는 내 위에서 절정이었다.” 12월 칼럼 ‘원나잇 스탠드 의 냄새’에선 아예 생략했었다.“ ‘그래서 했어, 안 했어?’ 친구들은 물 었다. 그렇지, 남자들은 그게 중요하지. 하지만 중요한 얘긴 이미 다 했다.” 이렇게 전후 사정만 썼었다. “좋다 말았다”는 독자들도 많았다. 중요한 얘길 빼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단편 소설 같아 읽는 재미는 있지만 섭섭함이 가시질 않는다고. 당신도 그렇다면, 이 남자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섹스는 할 만큼 해 봤다고 생각하는 사진작가 Y씨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흥미가 없어졌어요. 결혼을 해서 그런가? 어쨌든 매일 같으니까요. 사정을 위해서 섹스하는 건가…. 동물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옛날엔 그게 재미가 있었어요. 총각일 땐 업소에서도 즐겼어요. 룸살롱 같은 데서 놀기도 많이 놀았고. 그런데 이제 힘도 빠지고, 섹스를 생각해도 활력이 없어요. 전희, 삽입, 사정. 그 과정에 이르는 운동 자체가 지겨워요. 사정 한 번 하자고 땀 흘리는 것도 싫고.” 질문의 대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좌표 안에 무작위로 점만 찍힐 것 같다는 예상은 빗나갔다. 체내 사정에 집착하는 A도 있었고, 전라로 서로의 감촉만 느껴도 좋다는 어떤 로맨틱한 남자도 있긴 했 지만…. 남자들한테만 물었을 땐 대체로‘사정’에, 여자들에게까지 물었을 땐 ‘삽입’에 방점이 찍혔다. 분포도를 그린다면 ‘항아리형’이 될 통계였다. 하지만 이건 질문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질문들. “만약 남자가 삽입은 않고 손가락이랑 혀로만 했는데 절정에 올랐어요. 그럼 한 걸까요, 안 한 걸까요?” “만약 형이 삽입을 하다 말고 참고, 또 하다 말고 참았어. 여자가 사정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거든. 그럼 한 거야, 안 한 거야?” 질문도, 대답도 삽입과 사정을 기준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그게 섹스를 정의하는 중요한 지점인 건 맞다. 하지만 섹스를 포장하는 단단한 신화이기도 했다. 거기엔 어떤 집착이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어떻게 하면 ‘했다’고 생각하나? 대신 대답해줄 순 없는 문제다. 지금 당신과 살을 섞고 있는 그 여자, 혹은 그 남자와 고민해볼 문제다. 무책임한가? 에디터는, 원래 질문을 주로 하는 사람이다.
-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