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와 잤다. 여기에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뀐 과정을 옮긴다. 누가 더 이상한 사람인지는 두고 봐야 안다.
노래라면 들어줄 만한 곡이 앨범에 한 곡밖에 없더라도 참을 수 있다. 덱시스미드나잇 러너스의 앨범은 ‘Come On Eileen’덕분에 망치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원 히트 원더’는 여자의 원죄를 가볍게 하지 못한다. 지금, 이브가 눈앞에 있다. 내가 뱀이라는 건 아니다. 그녀가 말한다.
“손이 참 예뻐요.” 언제 적 거짓말을 한다. 나도 안다. 내 얼굴이 그렇게 잘나지 않은거. 하지만 그녀가 한 저 말은 선택적인 참이라기보다 경험적인 대안에 가깝다. 인간의 매력에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올바른 성품이 있고, 청신한 언어가 있고, 아주 드물게 손이 예쁜 걸 좋아하는 취향도 있다. 제발이지, 그것에 대해 좀 얘기해보자는 거다. 그녀는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숱하게 남자를 겪어오면서 알았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예쁘지 않으면 성품이 어떤지,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보려고하지도 않는다는 걸. 그런 의미에서 원죄는 오히려 남자의 것일 수 있다. 그녀는 보시기에 참 좋지 않았다. 나는 하느님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남자였다. 그런저런 얘기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녀는 예쁘지 않았다.
“그래요? 남자 볼 때 손을 먼저 보시나 봐요?” “네. 손이 예쁜 남자를 좋아해요.” 나는 발도 예쁘다. 그러나 그녀가 내 발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그녀는 친구의 친구로 만났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였다. 바에서 음악을 트는 저 술집 사장도 어쩌면 내 친구의 친구일지 모른다. 케빈 베이컨의 육 단계 법칙을 생각하면, 사촌과 친구를 구분하는 건 모를 일이다. 여기에 술이 더해지면 육 단계를 뛰어넘어 갑자기 연인도 된다.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술자리에는 그녀와 나 단둘만 남았다. 나야 술을 좋아하고 자주 오는 술집이니 그렇다 치자. 이 여자는 뭐였을까. 범상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내가 진흥대제가 아닌 터라, ‘시녀 5’조차 기꺼워하는 남자란 걸 밝히면 그녀의얼굴 윤곽이 잡힐 거다. 눈이 실금처럼 ‘터진’것도 꺼려지는데, 눈초리가 위로 바싹 치켜 올라가 있다. 평소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화났지?, 가 분명하다. 코는 <미래소년 코난>의 포비와 자웅을 겨루는 듯했다. 입만이 소담스럽게 생겼고, 예의 바른 말을 내뱉는 출구 역할을했다. 꽤나 취한 상태였는데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술 광고는 헛되었다. 지금 되뇌는 건 한 마디였다. ‘아가씨, 우리는 지금 마지막 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어디를 먼저 보시는데요?” 그녀가 물었다. 낭만적인 답이든 육욕적인 답이든, 지금 가장 중요한 단어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보다 낮은 데를 가리켰다. 수위를 낮추려는 뜻이었다. 결국은 높인 꼴이 되었지만. “가슴요.” 그녀는 적당한 때를 기다려, 어깨를 펴는 척했다. 목적은 등을 앞으로 미는 데 있었을 것이다. 브이넥 사이로 적당히 파인 가슴골이 보였다. 그녀는 키도 컸다. 그녀의 다리를 누군가는 목으로 쓰고 싶을거다. 가늘고 예쁜 다리가 돋보이는 건 또 하얀 피부 때문이었다. 남자들은 큰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도 좋아하고, 매끈하고 긴 다리를 쓰다듬는 것도 좋아한다. 하얀 피부를 보면서는 오로지 더럽힐 생각만한다. 여자들은 얼마든지 가슴과 다리 그리고 피부로‘히트’할 수 있다. 얼굴이 봐줄 만하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여자의 ‘원 히트 원더’에는 지울 수 없는 흉터 같은 낙인이 있다.
“역시 가슴이군요. 남자들은 다 비슷한 거 같아요.”알 고 저러는 걸까, 모르고 저러는 걸까. 내게 큰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해서, 그 집이 원룸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남자들 대부분이 가슴에서 가장 원만한 합의를 이루고 있기는하죠.”“시부이란 일본어가 있어요. 떫다는 뜻이죠. 한국에서는 잘 쓰지않지만, 일본에서는 사람에게 많이 붙이는 형용사거든요. 남자들이아무리 그렇고 그런한 종류의 인간들이라도, 그 가운데에 분명히 떫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이 매력적이에요.”
하루쯤은 큰 창문이 있는 원룸에서 자는 것도 괜찮겠다고 여긴건, 나도 떫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말을할 줄 아는 여자란 걸 알게 되자 그녀의 나신도 궁금해졌다. 그러나다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면, 대출 받아서 집을 사고 말지, 하는 생각이 훌쩍 일어서기도 했다. 어쩌지. 일단 하루만 살아볼까. 다 떨어진담배도 사올 겸, 술집 밖으로 나가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 가을이라서 하는 말인데, 너는 추녀와 잘 수 있니?” “모든 건 ‘발기’의 문제가 아니겠니. 발기할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못생긴 얼굴이라도 얼굴이 작고 신체 균형이 잘맞는 여자라면 흥분되는 수도 있고.” “얼굴도 작고 균형도 괜찮긴 해. 그런데 어쨌든 얼굴 보면서 애무하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걸 시도하면서 발기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삽입하고 마주 보면 어쩔 건데? 정 그렇다면 얼굴을 베개로 가려보는 건 어떻겠니. 눈치 채지 못하게. 낄낄.”
의외로 발기는 쉽게 됐다. 침대 위의 다른 여자들이 그런 것처럼, 낭장 결의 직전과 같은 긴장감을 안고 있거나 예쁘장한 표정을 만들려는 수작을 부리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그저 웃었다. 그 웃음이 나를 준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애무하는 동안에는 스프링을 눌렀다 뗄 때만큼이나 즉각적인 탄성을 질러댔다.애무를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발기가 되었다. 등이 부러질 듯이 휘어서는, 매트리스 커버를 부여잡고 나지막이, 좋아요, 라는 말도 했다.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 뉘앙스가 있었다. 기뻤다.그녀의 얼굴을 마주 본 채 삽입했다. 그때 알았다. 못생긴 사람은 얼굴을 찡그릴 때 더 못생겨 보인다는 사실을. 그때, 그녀의 얼굴은 못생겼다는 말보다 변태하다, 변신하다, 하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신경이 쓰였다. 충분히 좋았으므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친구의 말이 떠올랐을 뿐이다. 베개를 이용했다. 마치 폭군이라도 되는 양 베개를 밀어붙이고, 장난처럼 베개를 탁탁 쳤다.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그렇게 베개로 얼굴을 누르면서 바둥대는 그녀의 모습을 본 다음,우리의 땀과 애액이 만나는 하구를 내려다보았다. 바다나 강 같은 광경은 거기에 없었다. 문득 맥이 풀렸다. 베개는 3분 카레가 다될 시간만큼도 써먹지 못했다. 길어졌다면, 그녀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그 모습이 끔찍했고, 그렇게 한 내가 끔찍했다. 그녀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모욕적인 일을 한 기분이들었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남자는 그런 기분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 기분을 떨친 게 아니다. 일단 꽂고 나면, 어떤 잘못이 있든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 무력하다. 여자의 얼굴이 못난 게 아니라 남자가 못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남자의 성기 때문이라고 하는 건 적당치 않다. 남자의 ‘본능’이란 변명은 배달 음식점의 ‘출발’이란 말만큼 뻔하다. 케밀 파야는 <성의 페르소나>에 썼다.“육체를 정신보다 중시하는 오락적 섹스는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모욕이다.”그녀는 정신이 우월하다는 뜻으로 그렇게 쓴 게 아니다.오락은 본능이나 자연에 밀접한 부분도 있으나, 모든 인간의 욕구에 공통되지는 않는다. 2차적이다. 오히려 오락은 정신적이다. 그녀의얼굴을 베개로 덮은 건, 인간의 정신을 덮는 일이자, 인간을 유희나 오락의 수단으로 대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예의 바르고 예쁜 말을 하는여자를. 그랬던 머리로 또, 하나마나한 말을 한다.
“좋나요?” “네.” 머릿속에서 잠깐, 정전이 났다. “그러고 보니 우리 존댓말하고 있네요?” “그렇네요.” “저 존댓말하면서 하는 섹스는 처음이에요.” “우리 계속 존댓말해요.”
존댓말이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게 할 리는 없다. 하지만 존댓말이, 우리 사이에서 무너져 내리려고 했던 무언가를 간신히 떠받치고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생긴 얼굴을 못생긴 얼굴로 바라보는 현상에는 아무런 착오가 없다. 남자들의 병적인 모습을 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데도 사회가 어떻고 본능이 어떻고 하는 탄식이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이해할 생각이 없으면 이해받지 않으려는 선에서 진실하면 된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다. 그것이 언어의 차원이든,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이든.
그녀의 신음 소리는 계속됐다. 흥분이란 목적에 충실하면서도,다른 경험들에 대입할 수 없는 소리. ‘으흥’하는 느긋한 관능과 ‘꺅’하는 말초적인 감탄사 사이 어디쯤인가에 있는 소리였다. 눈을 감으면 더 집중하면서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더 이상 내 눈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갑작스럽게 툭하고 손을 올려놓은 탓인지 그녀가 조금 놀라서 물었다.“왜 그러세요?” “뒤돌아보세요, 뒤로 하려고요.”
- 에디터
- 정우영
- 아트 디자이너
- Illustration/ Kim Eun 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