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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그 말만은 말아요

2012.03.12유지성

여자의 한마디가, 남자에게 지옥의 종소리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짧은’ 남자라면 더더욱.

남자와 여자는 오래 연애했다. 섹스엔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남자는 걸핏하면 애인 자랑을 했다. “입으로 하는 건 다 잘해.” 친구들은 남자를 부러워했다. 여자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한 편이 다 끝날 때까지 아래에 머무른다며 으스대기도 했다. 친구들은 남자의 애인을 몰래 상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남자는 자기 평판도 궁금했지만, 굳이 여자에게 묻진 않았다. 불만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당당히 말했다. 여자는 불평하는 대신 종종 섹스가 끝나고 “오빠, 결혼하자”같은 찬사를 남겼다.

여자는 섹스할 때 말곤 결혼 생각이 없었다. 특히 남자가 친구들에게 자기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니는 게 싫었다. 여자는 작별인사 대신 복수를 준비했다. “넌 굵기, 딱딱한 정도, 시간 다 좋았는데, 사실 좀 짧아.” 여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떠났다. 남자는 무너졌다. 처음부터 말해줬더라면, 가끔 농담이라도 했다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렇게 오래 담아두고 있었다는 건…. 너는 더 웃기다고 역습을 할까 추접스러운 얘기를 우물거리다 간신히 주워 삼켰다. 늘어진 뱃살과 손으로 몸을 쓸기만 해도 한 움큼씩 빠지는 털을 견뎌준 게 어딘가.

혼자가 된 남자는 몸이 외로웠다. 자위를 끊은 지는 오래됐다. 휴지통을 어디 처박아놨는지도 까먹었다. 주말 밤마다 친구들과 강남과 이태원을 떠돌았다. 헤어지기 전, 여자와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관계였다. 놀러 나가는 차 안에선 여전히 더러운 음담패설을 한 무더기씩 쏟아냈다. 노래도 저질스러운 걸로만 골라 틀었다. 혼자 보내는 주말이 얼마 만인지, 잔뜩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시동이 꺼졌다. 새로운 여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맹렬히 잽을 날렸지만, 결정타를 내지 못했다. 사정없이 목덜미와 쇄골을 핥는 상상을 하다가도, 사나운 길고양이를 만난 것처럼 생각이 멈췄다. 지퍼를 내렸는데 이렇게 예쁜 여자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돌면 어쩌지? 입에 넣기도 싫다고 하면? 남자는 평생 거머리, 자라 같은 소리만 듣고 살았다. 한 번 맘에 둔 여자는 놓지 않아서다. “꽉 차는 느낌이 좋아” “내 몸 뜨거운 거 좀 만져봐” 같은 말만 들으며 연애했다. 그런 남자에게 좀 짧아, 란 선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끝’에 닿는 느낌은 없었지만, 승부는 입구에서 갈린다고 믿었다. 성감대 분포도나 전문의들의 소견을 검색해보면, ‘크기는 상관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특히, 길이는 더욱 그랬다. 굵어서 좋다는 여자, 오래 해서 두 번 하기도 힘들다는 여자, 남자가 잘하는 특정 체위를 요구하던 여자…. 여자들은 다재다능한 이 남자를 꽤 좋아했다. 직접적으로 ‘짧다’는 소리 같은 건 들은 적이 없었다.

남자는 과연 얼마나 작은 건지 궁금해졌다. 극복하기 위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평균은 11 또는 12센티미터. 많이 차이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길이는 대체 어디서부터 재는 걸까? 아랫배를 꾹 눌러 뿌리까지 재야한다는 사람, 얌전히 줄기만 확실히 재면 된다는 사람, 위가 아니라 아래를 재야 한다는 사람…. 휘어 있으면 그 길이까지 감안해야 하는 건가? 줄자를 쓰면 좀 더 정확한가? 앞굽이 들린 운동화처럼 위로 휘어 있는 모양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데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길이에서 손해를 볼 줄은 몰랐다. 당연히, 재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들은 물론이고 크기에 민감한 20대 성인 남자들도 정확한 측정법을 내놓지 못했다.

통계적 수치로 판단하기가 어렵다면, 직접 보고 통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남자들에게 물어보긴 쑥스러웠다. 서로 크다고 자랑할 줄이나 알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너 좀 세워봐”라고 할 순 없는 노릇. 목욕탕에 가보면 어떨까? 반응이 오면 애국가라도 불러서 폭풍을 잠재우는 그곳에서, 특별한 단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엄지손가락만 하던 게, 스크류바만큼 커지는 남자들도 부지기수다. 목욕탕에서의 관찰도 의미가 없었다. 연애하는 동안 잠시 번호를 지웠던 섹스 파트너도 떠올랐다. 대여섯 번 만나긴 했지만, 아직까지 화장실에 들어가면 물부터 트는 사이다. 크니 작니 하다가 “헤어지면 연락하라”던 B컵 가슴의 섹스 파트너를 잃고 싶진 않았다.

가장 확실한 건, 다음 여자친구를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이번엔 자진신고하면된다. “내가 좀 짧지?” 여자의 대답이 술술 나올 것이다. 그런데 대답을 듣는 일이 곤혹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음, 그러니까 내 전 남자친구는”, “내가 외국인을 만나봤는데” 따위의 말을 듣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가짜 가슴을 만졌을 때의 표정관리 만큼 어려운 일이다.

물어볼 데가 없다. 통계도 무의미했다. 남자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오래 할 줄 안다는 이유로, 11분이란 시간적 통계를 깡그리 무시했었다.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짧게 하는 남자가 어디 있냐고, 30분은 해야 여자가 좋아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한심한 과거를 돌려받는 것 같았다. 도움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남자는 스스로 해결해보기로 했다. 간혹 눈썹 다듬을 때 쓰던 가위를 꺼냈다. 그래, 음모를 손질해보자! 자르면 길어 보이고, 덩달아 좀 예뻐 보인다는 얘기도 들은 차였다. 사각사각, 가위가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뺨 맞은 것처럼 수치심이 밀려왔다. 수영장 좀 가보겠다고 ‘왁싱’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작업. 곱슬곱슬하던 음모가 반 토막 나서 뻣뻣이 섰다.

‘이발’을 마친 후, 남자는 간절한 맘으로 야한 생각을 했다. 서서히 커지는 걸 보며, 더욱더 못된 생각을 했다. 셋이 하는 생각, 넷이 하는 생각, 친구의 애인이랑 하는 생각…. 위에서 보니 확실히 길어 보였다. 굵기도 좀 더 굵어진 것 같았다. 만족스럽긴 한데, 보고 있자니 예상치 못한 걱정이 생겼다. 여자들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학생활을 한 여자를 만났을 때, 여자의 밑이 깨끗해 화들짝 놀란 적은 있다. 스스로 자기 음모를 다듬는 남자를 여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가늠이 안 됐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뱃살이나 빼라. 훨씬 커 보인다.” 장골능이 발달해 로라이즈 팬츠가 잘 어울리는 친구는 대뜸 감량을 권했다. 돌이켜보면, 아래를 내려다볼 때마다, 길이를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밥 먹으면 좀 작아진 것 같고, 아침에 발기되어 있을 땐 좀 더 커 보였다. 자기 사이즈를 잘 모르고 살다 보니 길이에 무덤덤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팬티를 내릴 때마다 음모의 모양이 자연스러운지 고민할 바엔 운동을 하는 쪽이 훨씬 나았다.

남자는 라지 사이즈 속옷을 입는다. 스몰과 미디엄의 경계에 걸친 몸뚱이에 비하면,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애인은 속옷을 선물할 때 “라지잖아? 다행이다. 난 내 남자친구가 라지였으면 좋겠어” 란 말도 했다. 그 후론 한 곳에서만 속옷을 산다. ‘라지’는 크기의 단위다. 따지자면, 길이보단 굵기 쪽에 어울린다. ‘쇼트’, ‘롱’으로 속옷이 나오지 않는 걸 감사하며, 남자는 가위를 버렸다.

죽어도 여자한테서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술 마시고 할래?” 제가 오래 하는 편은 아니에요. 한 15분? 그런데 술 마시면 얘기가 달라지죠. 숨차고 힘들긴 해도, 일단 20분은 거뜬히 넘겨요. 일단 여자랑 잘될 것 같으면, 술부터 마시죠. 그런데 여자친구한테까지 그런 얘길 듣는 건 싫어요. 아니, 15분이 그렇게 짧아요? 김종훈(29세, 디자이너)

“(콘돔) 빼고 할까?” 처음엔 그렇게 말해주는 게 좋았어요. 부담도 됐지만, 어쨌든 날 사랑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좀 오래 하거든요. 여자친구가 힘든 내색 같은 거 안 하는 편인데 버거운가 봐요. 사실 콘돔 빼고 하면 너무 금방 사정해서, 느낌이 좋아도 어지간하면 쓰는 편인데…. 유현우(27세, 공무원)

“안고만 있어도 좋아.” 여자친구가 적극적이라 안 씻고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죠. 요즘엔 리모컨부터 찾아요. 기분 나쁜 내색을 하면 이렇게 말해요. 안고 있고 싶다, 배만 만지고 있어도 좋다, 오빠는 이제껏 만났던 남자와 다르다. 저 어디 가서 못한다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 없어요. 장연석(34세, 기자)

“귀여워.” 귀여운 거 좋아요. 그런데 섹스하면서까지 귀엽고 싶진 않은데, 여자들은 끝나고 나서 항상 제 물건을 쪼물딱거리면서 ‘귀엽다’고 해요. 차라리 그냥 작다고 말하면 받아들이기라도 하지, 이게 좋다는 말인지 싫다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강호진(27세, 학생)

“맛없어.” 입에 사정하는 건, 모든 남자의 환상일 거예요. 내 여자 친구가 허락해준다는 게 너무 좋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맛이 이상하대요. 그 이후론 며칠을 당근이랑 양배추만 먹었어요. 채식하면 좀 낫다고 해서…. 이철우(31세, 의류MD)

    에디터
    유지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