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유튜브와 많이 닮은 NFT 아트

2022.02.18전희란

옥션, 페어, 갤러리에 이어 NFT 시장이 열렸다. 신흥 강자 NFT 아트는 기존 아트 신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가상화폐로 재미 좀 본 사람을 알고 있다. 구 남친 이야기다. 당시 대학원생 신분으로 이렇다 할 사회생활이 전무했던 그는 당연히 수입도 없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부모님께 받아 쓰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공장에서 갓 출고된 새 차 한 대를 끌고 나왔다. 속사정을 뻔히 아는 사이라 무슨 돈으로 차를 샀냐는 빈축 어린 말이 축하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잔소리의 시동을 멈춘 단어는 코인이었다. 신차 한 대 뽑고, 대학원 등록금 내고, 백화점 투어하고도 돈이 남았다 하니 투자금 대비 대단한 수익을 낸 건 분명했다.
실체가 있는 무엇을 선호하기에 구 남친이 가상화폐로 쓸쓸한 수익을 냈음에도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이 가짜 같았다. NFT 아트도 비슷했다. 1년 남짓된 NFT 아트 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는 게 수상했고, NFT 아트계의 스타 작가 ‘비플’은 더더욱 미심쩍었다. 왜냐, 미술계는 보수적이니까. 이곳에서 유명 작가가 되려면 순수 미술을 해야 하고 명망 있는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 이력, 소장 이력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비플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애니메이터로 눈에 띄는 전시 경력도 없다. 데이터 베이스도 없어 추정가가 아닌 시작가 1백 달러로 스타트를 끊은 그의 작품이 한화 약 7백85억원에 최종 낙찰됐다. 심지어 낙찰자는 NFT 펀드를 창립한 메타코반. 보수적인 미술계에서 디자이너 작품이 그것도 첫 옥션에서 7백억대를 찍었다. 구매자는 NFT 펀드 창립자다. 이 정도면 NFT 아트를 향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개인적 기호와는 달리 작년 미술계는 NFT 아트로 뜨거웠다. 세계 3대 미술품 경매사인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가 앞다투어 NFT 옥션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심드렁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나의 미적지근한 마음을 들쑤신 건 지인 J였다. J는 앞서나가는 사람이다. 모두가 대림미술관에 갈 때 국제갤러리를 찾았고, 안경은 늘 백산 안경을 고집했다. 우리 사이에는 J의 모든 걸 따라 하게 되는 묘한 분위기마저 형성돼 있었다. 그런 그가 “NFT 아트가 미래다”라며 작품 구매 후기를 SNS에 장황히 남겼다. 그가 컬렉팅 품목으로 NFT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일각에선 NFT 아트를 투자 수단으로 비추지만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작품이 여럿이에요. 지금까지 5점을 샀는데 재판매 생각은 전혀 없어요. 기존 미술 작품에 비해 창작과 구매의 진입 장벽이 낮은 것도 매력적이에요. 투자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지죠. 거품이 낀 건 맞지만 아직까지는 손해 보는 투자처는 아니에요.” J가 한다니 괜스레 흉내 내고 싶었다. 얇은 귀가 팔랑거리던 중 “10만 원이면 괜찮은 국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라는 J의 한 마디가 불씨를 지폈다. NFT 시장 탐색은 그렇게 시작됐다. 탐색 방식은 이러하다. 첫째, 국내 NFT 작품은 주로 오픈씨 OpenSea에서 클레이튼으로 거래된다. 민팅(새로운 NFT 콘텐츠 발행) 방식은 구매자가 정한다. 경매, 추첨, 선착순 등 다양하다. 둘째, 메인 SNS는 트위터다. NFT 작가들은 이벤트, 컬래버레이션, 민팅 관련 소식을 모두 트위터에 업로드한다. 따라서 작품 서치도 트위터에 ‘#NFTART’를 검색하면 수월한 편. 셋째, 대다수 프로젝트는 오픈 카카오톡 방을 운영한다. 작가가 홀더(NFT 작품 구매자) 그리고 예비 홀더와 직접 소통하고자 마련한 수단이다. 넷째, NFT 세계에서 작품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비주얼’과 ‘로드맵’이다. 비주얼은 단어 그대로 ‘얼마나 예쁜가’이다. 로드맵은 NFT 프로젝트의 성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기록한 스토리보드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실제 내가 참여한 어떤 ‘오카방’에서는 로드맵을 바꾼 작가와 수정에 불만을 품은 홀더 간의 험악한 설전이 오갔다. NFT 작가와 홀더는 어떤 사람들일까? 작가는 우선 비플, 라바랩스 등 전업 작가, 개발 업체가 있다. 파인 아티스트가 NFT로 진출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작품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 출시 즉시 완판된 다카시 무라카미와 RTFKT가 함께한 ‘클론 X’가 대표 사례다. 이 외에도 스눕 독(참고로 그의 부캐 ‘코조모 드메디치’는 NFT 큰손 컬렉터다)이나 유튜버 꽈뚜룹 등 셀럽, 마미손 같은 셀럽의 부캐, 미술을 향한 꿈을 뒤늦게 이뤄보려는 회사원으로 출신은 다양하다. 홀더는 아트 컬렉터가 아니라 코인을 하다가 진입한 경우가 다수고, 구매 목적은 투자 그리고 수집. 오카방에서 오가는 말투로 보아 주 연령층은 2030세대로 추정된다. 즉, NFT는 기존 아트 신과는 다른 층으로 구성된 시장이다.

미술계는 NFT 아트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여름, <1999 코디 최+NFT>전을 개최한 PKM 갤러리는 이렇게 말한다. “NFT 아트는 디지털화한 작품, 디지털 프로그램을 활용한 이미지 또는 동영상을 NFT에 등록한 것으로 간주돼요. 자신만의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작품의 원본성을 입증하고자 NFT에 등록한 NFT 디지털 아트와는 확연히 구분되죠. 현재 시장 작동 원리에 따라 실험 기간이 길지 않은 상황에서 디지털화한 NFT 아트가 젊은 작가에 의해 다수 제작되고, 미디어 마케팅을 통해 수요층이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기존 아트 컬렉터가 NFT 아트 또는 디지털 아트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현실이죠. 하지만 넓은 시각에서 볼 때, 상버 세계와 가상화폐 경제는 미래 세상이 나아갈 필연적인 방향이므로, 디지털 세계에서 형성된 디지털 미술 작품의 원본성을 증명하는 NFT는 보편화될 거예요. 그리고 갤러리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디지털 붐 미술 작품의 NFT 시장을 키워가는 것이 중심을 세우는 방법이라 생각하죠.” 작가 중에선 사진, 영상 같은 디지털 매체를 다루는 이들이 긍정적인 입장이다. 복제 가능한 디지털 매체에서 원본성은 풀지 못한 숙제였는데, NFT가 이를 해결해줄 열쇠라는 이유에서다.
NFT 작품을 샀냐 하면, 그렇다. 그것도 아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본 파일을 받자마자 SNS 프로필 사진을 몽땅 바꿀 만큼 만족도도 높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두 번째 구매까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NFT 아트만의 매력은 있다. 한데 시장 검증이 너무 안 됐다. NFT 작가는 회사원 겸 먹방 유튜버처럼 투잡러가 적지 않다. 게다가 활동 기간도 짧아 작업의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수천 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된 미술 시장을 두고 굳이 NFT를 택할 설득력이 부족하다.

NFT 아트를 무어라 정의하기엔 아직 역사가 짧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마디하자면, ‘기존 아트 신-NFT 아트’는 많은 부분 ‘방송-유튜브’와 닮았다. TV 출연은 진입 장벽이 있지만 유튜브는 누구나 개인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유튜브는 방송인에게도 새로운 판로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거나, 독자적인 콘텐츠 확보도 가능하다. TV는 편성표가 있지만 유튜브는 바로 시청 가능하다. TV는 소통 창구가 제한적이지만 댓글이 있는 유튜브는 자유롭다. 시청자의 니즈도 다르다. 방송 콘텐츠는 보다 양질의 것을, 유튜브에서는 캐주얼한 내용을 원한다. 이 모든 문장에서 TV를 기존 아트 신, 유튜브를 NFT 아트, 방송인을 파인 아티스트로 바꾸면 ‘기존 아트 신-NFT 아트’ 이야기가 된다. 지금으로선 딱 이 정도가 아닐까? 적어도 누구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삼키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하다. 유튜브가 방송을 잠식할 거란 우려와 달리, 영리하게 제 갈 길을 찾아갔듯이. 글 / 이효정(아트 라이터)

    피처 에디터
    전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