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별미같은 세 가지 방법의 시원한 섹스를 탐험했다.
아이스크림을 발랐더니 A는 서른한 가지 맛 중 두 가지를 골랐다. 아이스크림을 푸는 스쿱이 여자의 작은 가슴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사는 데도 종종 모텔에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럽힐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휴지를 아무 데나 버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침대에 눕는 방종은 그곳에서만 허락된다. 베개 밑에 팁을 꽂을 필요도 없다. 실컷 저질러놓고 아침이면 미안해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곤 하지만….
A는 어젯밤 아이스크림을 온몸에 발랐다. 녹차 맛은 발리기 위해, 딸기 맛은 바르기 위해 샀다. 결국 녹차 맛은 반밖에 쓰지 못했다. 아이스크림은 방 안에서 생각보다 빨리 녹는다. 섹스하며 체온이 올라, 침대머리가 금세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영화 <베티 블루 37.2>는,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온도인 37.2도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다.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이 5배 증가하지만, 아이스크림에겐 가혹한 환경이다. 에어컨 바람도 아이스크림을 지키기엔 충분치 않다. A는 지난 밸런타인데이를 위해 초콜릿을 준비했다가, 잘 녹지 않아 되레 분위기를 깨버렸다.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냉방이 뛰어나다는 모텔을 수소문했다. A는 아이스크림을 왁스 뜨듯 손가락에 발라 여자의 가슴, 배꼽에 올려놓았다. 촛농을 떨어뜨릴 때마다 여자가 강시처럼 벌떡벌떡 일어났다. 효과적이군. A는 아이스크림을 좀 더 녹여 여자의 몸에 끼얹었다. 그리고 손으로 여자의 몸에 올린 아이스크림을 제멋대로 비볐다. 록스타가 된 것 같았다.
“이거 맛있어.”
여자는 자기 몸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손가락에 묻혀 맛봤다. 그래, 저 장면이지. A는 더욱 심취했다. 여자의 순수한 말과 행동을 좀 다르게 받아들였다. 끈적해진 여자를 들어 몸 위로 반듯이 올렸다. 착 달라붙은 A와 여자의 몸이 등호 모양으로 평행을 이뤘다. A는 여자의 몸무게를 고스란히 느꼈다. 색다른 쾌락을 탐구하고자 오일이나 로션 얘기를 꺼내면 취향을 의심받기 십상. 하지만 아이스크림엔 꽤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여자가 A의 몸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시트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몸이 뜨거워질수록 아이스크림은 더 흘러내렸다.
A는 여자 밑에서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속도를 조절하기보다 일단 몰아붙이는 쪽이 아이스크림과 더 어울렸다. 녹기 전에 다 끝내야 했다. 뜨거운 국은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남자였다. 맥주는 거품이 사라지면 새걸 시켰다. A는 손과 입을 바삐 움직였다. A는 스스로를 골 결정력은 뛰어나지만 체력이 약한 스트라이커로 정의하곤 했다. 오늘만큼은 애국가를 부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영화 <컬러 오브 나이트>의 수영장 섹스는 <아비정전>의 맘보춤만큼 유명하다. 수입사가 유독 그 장면을 강조하며 영화를 홍보한 덕이다. 수영장 섹스가 공개된 공간 또는 ‘아웃도어 섹스’에 대한 욕망에 가깝다면, 욕조는 그보다 개인적이다. 안타깝게도, 개인용 풀장에 정수기 물을 퍼부을 수 있는 사정이 아니고서야 수영장 섹스는 요원할 뿐이다. 수영장만 갔다 와도 피부병이나 성병으로 고생하는 남녀가 수두룩한데 시퍼런 물 안에서 섹스를 한다고? 수학여행 가서 못된 녀석에게 치약을 바른 건 생각나도, 그런 소독물 안에선 발기조차 겁나는 일이다. B는 월풀 욕조를 샀다. 미국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자쿠지’와 ‘카우치’를 느끼하게 발음하며 여자를 끌어안는 걸 보고, 원룸에 살아도 그 두 가지는 꼭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화장실에 있으면 월풀 욕조고 야외에 있어야 진짜 자쿠지지.”
“너 그거 어차피 추워서 쓰지도 못한다.”
친구들은 회의적이었다. B의 집엔 자쿠지를 위한 특별한 공간은 없었다. 대신 비장의 발코니가 있었다. B는 발 달린 욕조를 그곳에 두고 스스로 자쿠지라 불렀다. 특급호텔처럼 욕조에 누워 텔레비전을 볼 순 없었지만, 팔을 뻗으면 꼬리가 긴 잔을 잡아챌 수 있도록, 높이가 꼭 맞는 선반도 준비했다. B의 쾌락은 여자가 없어도 유효했다. 물론 둘이면 더 완벽했다. 둘이 욕조에 들어갈 땐 물을 좀 덜 채웠다. 치즈 같이 얇다가, 물에 담그면 주먹만큼 커지는 스펀지는 긴장을 풀기에 좋은 소재였다. ‘크기’와 관련된 농담에도 제격이었다.
2인용 욕조는 식탁과 달리, 두 사람이 독립적인 공간을 소유할 순 없었다. 다리를 뻗으면 여자의 겨드랑이에 발끝이 닿았고, 허리를 틀면 발가락으로 가슴을 꼬집을 수 있었다. 대개 화장실 거울 앞의 남자, 머리가 젖은 여자는 자신감이 넘친다. 온몸이 젖은 여자가 평소와 달리 야하고 짓궂은 장난을 쳤다. 물이 닿으면 피부는 예민해진다. 스치기만 해도 모공이 번쩍 수축했다. B는 발가락을 꽉 오무렸다.애무는 좀 더 거칠었다. 물속에 있으니, 상대방이 씻고 왔는지 안 씻고 왔는지, 씻고 나서 침대가 더러워 먼지가 붙지 않았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월풀 물줄기 때문에 몸도 더 개운한 것 같았다. 욕조가 넓진 않아도, 뜨끈한 물에 몸을 푼 남녀에겐 아크로바틱한 체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잠깐만, 너무 뻑뻑해.”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던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자도 아팠다. 여성 상위를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생겼다. 오르가슴의 정도와 애액의 양은 보통 비례하지만, 자세란 변수가 있었다. 이번엔 물이었다. A는 세수하고 나면 얼굴이 뽀득거리는 아리수를 좋아했다. 시골의 수돗물은 미끄러운 탓에 제대로 씻긴 건지 알 수가 없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시 행궜다. 오늘만큼은 미끌미끌한 지하수가 나오는 곳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완전한 쾌락은 결국 침대 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물과 얼음을 머금고
여자에겐 모텔에 있는 물은 마시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걸 어떻게 마셔. 그리고 그게 세 병씩이나 왜 들어 있겠니. 다 섹스 할 때 쓰라고 있는 거야.”
종이컵에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동시에 받아놓고 야바위를 한다는 커플도 있었다. 여자가 친구에게 물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은데?”
“계절마다 다르지. 너 물만 잘 써도 얼마나 달라지는 줄 아니?”
못하는 말이 없는 이성 친구는 때로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여자는 기념일마다 C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교복도 줄여 입고 오고, 밧줄로 스스로를 동여매기도 했다. 아쉽게도, C는 이제 어지간한 이벤트는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여자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여름이니, 이왕이면 얼음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집에서 얼음을 입에 물어봤다. 어버버, 하다 보니 얼음이 다 녹았다. 의사소통 같은 건 불가능했다. 얼음을 입에 문 채 혀를 쓰다간 혀가 얼음의 각도 그대로 잘릴 것 같았다. 물은 그보다 쉬웠다. 다리미처럼 일정한 양을 내뱉는 게 중요했다. 빨대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빨대 사이의 음료수를 흘리지 않는 것과 비슷한 기술이 필요했다.
다음 주말, 여자의 가방은 가벼웠다. C를 만족시키기 위해 바리바리 싸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샀다. 평소와 달리 얼음을 가득 담아달라고 했다. C를 침대에 눕히고, 여자가 수류탄처럼 양옆에 물통을 세웠다. 물을 입에 머금고, 남자도 함께 세웠다.
“이게 그냥 입에 넣고 흔드는 게 아니야. 이빨도 있고, 혀도 있고, 목도 움직여야 하고 얼마나 힘든지 아니?”
C는 여자의 투정이 기특했다. 여자가 얼음을 귀에 놓자, 냉탕에 거꾸로 들어간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얼음은 무릎까지 내려왔다. 여자의 동선은 메시의 드리블을 방불케 했다. C의 몸에 물길이 났다. 이제 C가 보답할 차례. 시원한 섹스라면 듣고 배운 게 좀 있었다. 마른 여자의 쇄골과 허리뼈에 간신히 물이 고일만 한 공간이 있었다. 쇄골 미인, 치골근 미녀 같은 팔푼이 같은 말도 당장은 즐거웠다. 고교 시절 여자아이들이 속눈썹 위에 성냥개비를 올리니, 볼펜을 올리니 하면서 깔깔대던 게 생각났다. 남자 팔뚝만 한 크기의 컵 한 통을 다 비우고 나서야, 남녀는 차가워진 몸을 꼭 껴안고 잠들었다. 여자는 커피 전문점 중 잘게 간 얼음을 꽉 채워 넣어주는 곳을 알고 있었다. 장마가 곧 끝난다는 반가운 아침 뉴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자는 시원한 커피를 한 잔 더 샀다. 빨대는 챙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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