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NFT로 영화 제작비를 마련할 예정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은 영화계 자금 조달의 대체 가능한 방법이 될까?
영화 산업이 바뀌고 있다. 그 전방에는 영화제가 있다. ‘칸 넥스트 Cannes NEXT’라 이름 붙은 2021년의 칸 영화제 필름마켓도 마찬가지였다. 경쟁작 선정과 상영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였지만,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바뀐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필름 거래의 디지털화에 해결책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저작권 문제와 배급, 수익 분배에 끼칠 디지털의 영향을 이야기했다. 콘텐츠가 아닌 산업적 접근이었다. 10년 내로 비즈니스 거래의 절반 이상이 블록체인 기술로 전환될 것이라 예측하면서, 그들은 통합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논의의 중심에 NFT(Non Fungible Token)가 있었다.
NFT는 작년에 가장 유행한 용어 중 하나지만 여전히 낯선 용어이기도 하다. 통화는 대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원화는 달러로 교환할 수 있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서로 교환된다. 그렇지만 그림은 다르다. 예술 작품은 유니크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만일 두 작품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하더라도 예술 작품을 일대일로 교환하는 건 불가능하다. NFT도 상황은 같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 불린다. 예술의 관점에서 NFT를 ‘디지털 저작물의 고유한 소유권 증서’로 이해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체감은 가장 먼저 OTT 플랫폼의 유행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NFT 개념이 등장하면서 본론이 달라진다. 일부가 아닌, 산업 전반의 변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말했듯이 NFT는 디지털 오브제에 각인된 토큰이다. 각 토큰은 하나의 소유자를 찾는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마케팅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흥행성과 연관되어 가치가 형성된다. 코인 경제는 ‘돈’ 다음으로 ‘예술’의 디지털화를 예측하고 있다. 그렇지만 완전히 동일한 카테고리에 영화가 속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영화계는 ‘저작권 분배’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미 구성물이 디지털화된 탓도 있겠지만, 공동 저작물로서 영화 저작권이 향후 어떻게 바뀔지가 더 실질적인 문제이다.
최근의 뉴스 몇 가지를 들여다보자. 첫 번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은 개봉 전 이벤트로 온라인 티켓 구매자들에게 ‘노웨이 홈 NFT’를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영화의 파생 이미지를 토큰으로 만든 사례이다. 영화는 흥행했고, NFT 마케팅 역시 입소문을 내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이것이 NFT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백 퍼센트 NFT 영화로의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두 번째, 2021년 11월에 쿠엔틴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1994)의 미공개 7개 장면을 각각 NFT 경매에 넘기겠다고 공언했다. 제작사 미라맥스는 고소를 언급했지만 타란티노는 완강했다. 1월 17일부터 1월 말까지 경매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공개되지 않은 명작의 동영상을 판매한 사례에 속한다. 콘텐츠 구매자는 영상 저작권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 택한 사람들과 영상을 공유해서 관람할 수도 있다. 영화 저작권보다는 수집품에 더 가까운 형태이다.
그리고 세 번째, 나는 이 마지막 사례에 관심이 많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세운 ‘NFT 스튜디오’의 경우다. 작년부터 스코세이지는 프로듀서 닐스 줄과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는데, NFT 자금을 이용해서 장편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총 1백억원 가량의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그들은 1만 개의 NFT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즉, 영화 한 편을 하나의 NFT로 상정하지 않았다. 저작권은 쪼개질 것이고, 이 방식은 일반화될 확률이 높다.
가까운 미래에 좀 더 확실해지겠지만 스코세이지의 계획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프랑스의 경우를 참고해 몇 가지 가정을 하려 한다. 작년에 클로드 틀루슈 감독의 딸인 사라 틀루슈는 자본금 조달을 위해 가상화폐 클랩코인 Klapcoin을 개발했다. 영화 프로듀서인 그녀가 내놓은 새로운 코인은 2022년 1월 말 시중에 유통된다. 코인 구매자들이 영화사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전체 구조가 ‘크라우드 펀딩’과 매우 흡사하다. 새로운 코인의 개발이 아니라, 기존의 가상화폐를 이용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랫동안 크라우드 펀딩은 영화계에서 제작비 조달의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영향을 줄 만한 큰 성과가 없었다. 독립 영화 프로덕션에서 활용된 탓도 있지만, 자금을 모으는 데 시간이 너무 소요되었다. 거대 프로덕션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NFT는 다르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비트코인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열광하는 대중을 지켜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이 실재계를 움직이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NFT와 영화’는 이렇듯 자금 조달 방식을 통해 관계가 설정될 확률이 높다. 만일 스코세이지의 새로운 프로덕션이 성공한다면, 이후 할리우드 시스템은 새로운 유통 경로로 나아갈 길을 얻는다. 소위 말하는 ‘민주적인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다만 현재로서는 얼마나 빨리 제작비가 마련될지를 지켜봐야 하고, 수익 배분의 메커니즘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어쨌건 영화계는 NFT와 연관되어 발전 중이다. 극장이나 TV 중심의 폐쇄적인 거래 방식은 코로나를 거치며 전환되었다. 곧 NFT가 일반화되면, 생산자와 대중의 관계 또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이전에 관객들은 극장이나 TV를 통해 영화를 보았지만, 이제는 단순히 ‘파일’이 아니라 ‘변조 방지된 인증서 형태의 소유권’도 가질 수 있다. 심지어 프로듀서의 개념도 뒤집힐 수 있다. 관객 모두가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홍보에 기여하게 된다.
순수하게 마켓의 측면에서, 가상의 방식은 실질적인 내용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시스템 형성에는 최소 2년은 더 걸릴 것이라 예측된다. 그런 의미에서 칸 영화제 마켓은 ‘공용 저작권의 데이터베이스’ 형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위기감의 발로가 아닌, 미시적인 미래 양식을 영화인들은 고민한다. 나의 경우는 단순하게, 일단 용어가 생겨나면 배제하기는 어려워진다는 어느 현인의 언급을 떠올린다.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상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한 가지다. “콘텐츠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사실을 상기한다.
이제 본심을 이야기할 차례다. NFT의 가장 실제적인 문제는 분열적이란 데 있다. 소수의 사람은 기본 기술의 확실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를 미심쩍게 바라본다. 끊임없이 가치를 인식하려고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믿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계에서 NFT의 기술적 완전함은 보장되는 듯 여겨지지만, 실용적인 기술의 불완전함에 여전히 영향을 받는다. 시장은 간혹 터무니없는 이유로, 순식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확고한 자들도 아직까지 방어적인 입장을 취한다.
언젠가 시스템이 확립될 때까지, 여러 사례를 살피며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아니 마냥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콘텐츠를 만들 것이고,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콘텐츠 제작에 끊임없이 골몰할 것이다. NFT는 확실히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이는 영화 산업의 미래를 바꾼다는 의미이며, 일부 창작의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NFT는 절대로 영화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글 / 이지현(영화평론가)
- 피처 에디터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