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보고 싶은 남자는 음식에서 구원을 찾았다. 애석하게도 음식은 음식일 뿐이었다.
비뇨기과에 전화만 걸어도 친구들은 놀렸다. “그러게 조심하지.” 여자의 권유는 강요에 가까웠다. “주말에 병원 가자.” 남자와 여자는 2년을 만난 사이였다. 남자가 자위를 끊은 지는 1년이 지났다.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고 싶어서. 잘한다는 의미는 다양했다. 빨리 서고, 오래 참고, 딱딱한 채로 많이 싸고 싶었다. 사정량은 일반적으로 훌륭한 섹스의 조건엔 잘 없지만, 여자는 남자의 양이 적으면 남자의 사생활을 의심했다. 크리넥스의 숫자는 여자의 만족도와 비례했다. 두세 장으로 끝나는 날은 “나한테 싫증나서, 혼자 몰래 해소하는 게 아니냐”고 채근했다. 남자는 결백했지만, 비뇨기과는 내키질 않았다.
여자는 아침마다 보냉병에 커피 대신 토마토주스를 챙겼다. “토마토에 철분이랑 비타민이 많대. 마셔.” 먹으면서도 남자는 철분이랑 비타민이 대체 섹스, 아니 정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일 마시는 토마토주스는 당근, 오이, 치커리를 모조리 합쳐 갈아놓은 것보다 맛이 없었다. 그러나 여자의 의지는 확고했다. “17세기 영국에선 토마토에 독이 들었다는 루머가 돌았대.” 토마토를 먹은 남자들의 성욕이 왕성해지는 탓이라고 했다. 참으로 청교도적이군. 차라리 바나나나 복숭아는 모양이라도 야하지. 왜, 한의학적으론 인삼이 사람과 닮아서 몸에 좋다고 말하지 않나. 남자는 토마토주스와 비뇨기과 중 선택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이 “토마토 그런 건 정력에 아무 효력이 없어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고민하다 묘수를 냈다. 따지고 보면 음식에 가까운 약을 먹으며 건강을 북돋우는 건 한의학의 몫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정말 좋은 게 있다면, 먹어볼 의향도 충분했다. “한의원 가볼까?” 여자는 반색했다. 한의사 선생님을 위한 보냉병을 하나 더 챙겼다.
진료실엔 의자가 두 개 있었다. 환자만 들어오고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제지 같은 건 없었다. 진료실에서 궁금한 건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다. “제가 좋다는 거 다 적어왔거든요. 부추, 마늘, 장어, 복분자…. 정말 먹으면 힘이 세지나요?” 남자는 여자가 뱀이나 지네에 대해 묻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곰도 아니고, 마늘을 매일 먹이진 않겠지. 굴이나 복분자가 토마토처럼 흔한 것도 아니고.
“힘이야 삼계탕을 먹어도 세지죠. 보양식 알죠? 정력에 좋은 음식과 보양식은 좀 달라요. 보양식은 더 포괄적인 기능을 하죠. 성기능이 좋으려면 체력부터 좋아야 하니까. 그런데 남자 분 사무직이죠?”
“네. 그래도 운동은 좀 하는 편인데….”
“그럼 체력에 좋다는 건 먹어봐야 별 소용이 없어요.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은 기운이 잘 떨어지니까,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돼요. 평상시에 별로 안 움직이는 사람들은 스태미나식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막혀요 막혀. 순환이 안 돼.”
여자의 눈이 장어 꼬리처럼 처졌다. 남자도 남자다 보니, 소문엔 빠삭했다. 정력에 좋다는 근거가 꽤 확실해 보이는 음식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이왕 온 김에, 뭐든 알아가면 좋을 텐데. 물론 뱀이 40시간 동안 교미하니까 뱀이 정력에 좋다는 소리 같은 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장어 정도라면 기꺼이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베컴의 별미 간식이 장어 젤리란 사실은 유명했다. 그 얘길 듣고 난 후엔, 쩍 갈라진 베컴의 허벅지가 정확한 프리킥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피카소는 90세가 넘도록 장수하며 수많은 여자를 만났다. 그가 ‘뱀장어 스튜’란 그림을 그린 건,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인 재클린이 꼬박꼬박 장어 스튜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여자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남자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정력에만 좋은 음식 같은 건 없나요?”
“있지. 일단 개념부터. 한의학적으로 ‘신장’은 ‘키드니’와 동의어가 아니에요. 생식을 주관하고, 생명력에 관련된 장기를 말하죠. 선천의 기운을 주관한다고 표현하기도 해요. 선천적인 기운이니까, 보양식과 달리 체질이나 생활습관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어요. 신장에 좋은 음식이 바로 정력에 좋은 음식이에요. 부추? 좋죠. 기양초라고 불리는데, 즉 한자 뜻 그대로 잘 세워준다는 말이죠.”
“그럼 어떻게 지지고 볶든 효과는 똑같나요?”
“녹용은 가루를 내서 먹는 게 좋은 것처럼, 약으로 쓰는 거면 조리법이 영향을 미치는데, 음식은 편하게 먹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럼 뭐랑 같이 먹으면 좋아요?”
여자는 벌써 요리사가 된 것 같았다. 남자는 부추로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다. 부추전, 부추김치, 부추…. 부추를 고기랑 같이 먹는 거면 몰라도, 맨날 부추만 따로 먹는 건 썩 달갑진 않았다. 이번엔 남자가 급하게 물었다.
“그럼 장어는요?”
“장어는 스태미나식이에요. 봐봐, 보기만 해도 펄떡펄떡 뛰잖아. 인삼이 사람 몸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몸에 좋은 거랑 같은 이치지. 장어는 신장, 그러니까 정력이랑은 별 상관이 없어요. 물론 체력이 달릴 때는 먹으면 좋아요. 너무 힘이 달리면 신장에까지 손상이 가니까. 그런데 보양식은 아까 말했듯이 소화에 장애가 올 수 있어요. 소화시키려고 피가 그리 몰리거든.”
여자는 한의사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부추가 잘 세워주는 거라면, 이제 딱딱하고 오래 서있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도 궁금했다.
“혹시 주스처럼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건 없나요? 이왕이면 부추랑은 다른 기능을 하는….”
“복분자는 한의학적으로 신장에 좋고, 또 간에도 좋아요. 신장이 발기에 관한 거라면, 간은 강직도에 관한 거죠. 아, 조루도 없애주고.”
어쩐지. 복분자주를 마시면 가장 즉각적으로 효과가 오는 것 같았다. 물론 복분자도 복분자지만 아무래도 알코올 때문일 텐데, 남자의경험상 알코올만큼 확실한 건 없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간혹 과음하면 역효과가 나긴 했지만, 어쨌든 심리적인 욕구만큼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따지고 보면, 하고 싶은 맘이 쉼 없이 드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복분자를 먹으면 딱딱해지고, 조루도 없애주는데, 그게 술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아, 굴이랑 전복도 있다. 자, 부추가 세워주는 거니까 총이라고 쳐요. 그럼 굴이랑 전복은 총알을 만드는 거야. 강정작용이라고 하는데, 정자를 튼튼하게 해줘요. 그럼 보양식은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겠네. 아, 이 비유 좋다. 그런데 음식은 좋아도 음식일 뿐이에요. 자, 그렇게 효과가 뛰어나면 왜 약으로 안 쓰겠어요? 음식은 깨끗하고 안전한 걸 먹는 게 최고예요. 오가피가 왜 그렇게 유행했는지 알아요? 한 도매상이 거의 오가피를 독점했고, 그들의 마케팅이 잘 먹힌 거죠. 그게 그렇게 좋았으면 왜 약으로 안 썼겠어요. 같은 작용을 하면서 더 약효가 센 게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여자는 이미 만족했다. 잘 서고, 오래가는 거면 몰라도 사정량에 관한 음식 같은 건 상상하지 못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얻어간다는 점에 신이 났다. 남자는 누명을 벗었다. 자위는 정말 안 했다. 남자는 옷을 벗은 람보를 상상했다. 람보는 근육질에, 총도 크고, 총알도 X자로 두르고 다닌다. 부추, 굴, 장어를 먹으면 나도 람보가 될 수 있는 걸까? 곧 개봉하는 <익스펜더블 2>에서 실베스타 스텔론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헬기와 싸우는 신을 찍었다.
다음 날, 남자는 비뇨기과에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으로 검색도 많이 했다. 이왕 먹을 거라면, 내가 원하는 식단으로 먹고 싶었다. 더 이상 토마토는 먹지 않아도 됐지만…. 한의원에서 들은 얘기만큼, 증거도 많아 보였다. 따로 검색도 많이 했다. 굴은 아연이 많아서 좋다, 낙지는 100그램당 타우린이 871그램 들어서 더 좋다. 무려 굴의 두배. 에너지 드링크 같은 건 필요도 없겠군. 그러나 대답은 예상과 반대로 돌아왔다. 미리 적어놓은 자료까지 들먹이며 질문했는데, 의사의 대답은 싸늘했다.
“그건 영양학적인 이야기예요. 의학적으론 증명된 게 없죠. 의학적으로 효능이 있다는 말은 음식에 이런 성분이 있으니까 좋을 거다, 라고 얘기하는 것과는 달라요. 사람이 그 음식을 먹고 안 먹고에 따라 차이가 있냐가 기준이에요. 마늘을 먹어서 발기가 잘된다? 마늘 안에 특정 성분이 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에요.”
마늘은 유독 근거가 방대했다. 운동부족으로 신진대사에 이상이 있는 사람의 대사를 촉진하고,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아미노산인 피로신, 페닐알라신 등이 있어서 발기기능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것들이 뭔진 몰라도, 어쨌든 무척 ‘의학적’이라고 여겼는데.
“아 참, 증명된 게 몇 가지 있긴 해요. 일단 토마토는 전립선에 좋아요. 전립선 비대증이나 암을 예방할 수 있죠. 전립선이 정자에 관여하는 건 알죠? 물론 100퍼센트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전화를 끊고, 남자는 종이를 찢었다. 토마토를 많이 먹었으니, 병은 안 걸리겠다는 게 위안이 되었을까? 여자에겐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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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USTRAION/ FINGERPRINTING도움말/ 박정민( 원장), 두진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