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고개를 든 장기하의 별 일.
GQ 지금 기분 어떠세요?
KH 지금 기분요? 음, 그냥 편안한 기분? 대단히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뭐 그런 기분 같아요.
GQ 재작년에 쓰신 산문집을 읽다 느낀 건데, 기분이 참 중요한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기분에 좌우된다기보다 기분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 같달까.
KH 맞게 보셨어요. 그렇긴 해요. 근데 알고 보면 다들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기분 좋은 것만큼 중요한 게 딱히 따로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남들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요.
GQ <공중부양> 앨범을 드디어 내놓는 순간은 어떤 기분이 지배적일까요?
KH 좀 떨릴 것 같긴 하네요.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예전부터 늘 그랬거든요. 음반을 낸 순간들은 기대감 반 두려움 반이었죠. 이제 그냥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더 하는 것뿐이다, 이 정도로 생각하려고요.
GQ 먼저 들어보니까 역시는 역시던데요. 음악에서 주춧돌인 베이스를 삭제한다는 게 굉장한 역발상이잖아요.
KH 사실 요약하면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거든요. 우연이긴 우연인데, 절반의 우연인 거죠. 어디까지 뺄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장기하의 노래니까 내 목소리는 무조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반주가 있어야 하는데 웬만하면 진짜 없어도 되는 거는 넣지 말자, 불필요한 장식은 하지 말자는 식으로 다섯 곡을 만들어놓고 보니까 베이스가 없더라고요. 다.
GQ 정말요? 처음부터 의도하신 건 줄 알았어요.
KH 어떻게 보면 장기하와 얼굴들 때랑 제 목소리를 활용하는 방식은 비슷하고, 그 외의 방식은 좀 많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와서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장기하와 얼굴들 음악은 베이스가 되게 중요했거든요. 베이스가 끌고 가는 음악이었어요. 은연중에 반대로 가자는 생각이 작용을 하지 않았나 해요.
GQ 1번 트랙부터 쭉 듣는데, 처음에는 연결 오류인지 재차 확인을 했어요. 혹시 염두에 뒀던 원래의 베이스라인이 존재할까요?
KH 전혀 없어요. 작업을 할 때 키나 템포를 정해놓지 않고 거의 무반주로 녹음을 했어요. 스케치가 아니라 정식 녹음을요. 목소리가 먼저 딱 있고 거기에 슥슥슥 살을 붙인 거죠. 건반 눌러보니까 B키 정도 되는구나 해서 그걸로 반주 만들고, 이게 템포가 130 정도 되는구나 해서 드럼을 찍고. 원래의 베이스는 공정상 있을 수가 없었던 거죠.
GQ 곡 안에서 구성요소를 최소화하니 자연스럽게 노랫말이 더 강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런데 남겨둔 여백을 꿰뚫는 가사는 단 한 문장뿐인 트랙이 많아요.그 주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걸까요, 아니면 말을 아끼는 걸까요?
KH 2절을 위한 2절은 만들기 싫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예전에는 없어도 되는 2절이나 3절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대중가요의 전형적인 형식이 있다보니까 그런 거에 얽매여서요. 굳이 형식미 때문에 내용은 이미 다 나왔는데 허전할까 봐. 이번에는 하여간 쓸데없는 건 뭐라도 좀 걷어냈어요. 할 말이 1절 안에서 다 끝난 것 같으면 더 이상 안 만든 거죠. 그러다 보니 그냥 반주만 나오는 구간도 생각보다 많아졌고. 근데 또 그동안, 곡에 악기가 많지 않으니까 들으시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좀 하시고 뭐 그러셔도 되잖아요. 하하. 제가 말을 걸었으니까요.
GQ 아주 친절한 영화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불친절하게 반전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KH 그럴 수도 있겠네요. 좋은 비유인 것 같은데.
GQ 곡마다 메시지가 뚜렷하잖아요. 어쩌면 우리네를 위한 뾰족한 일침으로도 들려요. 설정해둔 청자가 있을까요?
KH 제가 누구한테 일침을 날리려고 노래를 만드는 일은 사실 잘 없어요. 너무 오지랖 같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두나 싶어서, 그냥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일침을 맞을 순 있겠죠 그 누군가가. 지레 찔려서! 만약 일침을 맞으셨다면 저랑 비슷한 분일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 자신한테 일침을 날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GQ 그럼 ‘부럽지가 않어’가 타이틀이 된 계기는요?
KH 들어본 사람들마다 제일 재밌어들 하더라고요 그 노래를.
GQ 이거 혹시 반어법인가요?
KH 힙합 음악을 몇 곡 듣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야, 자랑을 참 많이 한다. 돈이 많다든지, 실력이 좋다든지, 성공했다든지 하는.
GQ 소위 플렉스라고 하죠.
KH 가타부타하기보다는 ‘아 그럼 자랑의 최고봉은 뭘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랑을 포커 게임으로 치면 다 이기는 패는 뭘까? 내가 부럽지가 않다는 걸 자랑하면 다 이길 것이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의 약간 힙합인데, 남들이랑 비슷한 걸 해보고 싶진 않으니까 그 자랑하는 형식은 빌리되 다 이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한 거예요. 하하하. 제일 이기는 패를 내보이고 싶었어요.
GQ 근데 이런 시선은 어때요? 진짜 안 부러우면 이런 곡을 만들지도 않았다는 거죠.
KH 당연해요. 부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 그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저도 부러운 게 많으니까요. 그냥 가상의 인물이죠. 부러움이라는 기능이 삭제된 어떤 사람을 상상해서, 그 사람은 자랑도 아니고 그냥 자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뿐일 텐데 사람들이 열받는 거죠.
GQ 어떻게 보면 플렉스 문화에 대한 희화화인가요?
KH 에이, 희화화까지 하려는 건 아니고 거기서 재밌는 포인트를 얻은 거라 봐주세요. 평화주의자입니다.
GQ 또 인상적인 건 수록곡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예요. 그 곡에 쓰인 메인 사운드가 타령의 일부분일 거라고는 상상 못 했거든요. 국악을 접목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작용할까요? 원래 이자람 판소리 앨범도 즐겨 듣는다면서요.
KH 그게 바로 자람 누나 목소리거든요. 자람 누나가 고등학교 때 녹음한 심청가를 따서 쓴 거예요. 그러니까 이자람에 대한 오마주이자 판소리에 대한 오마주죠. 음원 사이트에는 없는데, 자람 누나가 저 군대 갔을 때 그 CD를 보내줬거든요. 그걸 닳도록 들었어요. 판소리가 이렇게나 멋있구나, 정말 대단한 음악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우리말 고유의 음악성을 살리겠다는 생각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어요. 그 곡은 결과적으로 약간 자람 누나를 놀린 것처럼 사운드가 나오긴 했는데. 하하하.
GQ 미리 들려주셨겠죠? 뭐라고 하시던가요?
KH 뭐라고 했더라,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너한테? 일단 처음 만들기 전에 허락을 구했어요. 결재를 받은 거죠. 완성된 노래를 들어보니 다행히 싫지는 않았나 봐요. 웃기고 황당하다고는 생각을 하되 자기의 명예가 실추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GQ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오늘 유튜브 채널 정식으로 개설하셨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콘텐츠들을 계획 중이에요?
KH 아직은 일단 아카이빙용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또 유튜브 채널이라는 게 뭐든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GQ 알고리즘만이 알겠지만, 평소 장기하에게 뜨는 추천 동영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져요.
KH 은근히 ‘라스 다시보기’ 이런 거 많이 뜨고요, 한창 요리 많이 할 때는 ‘승우아빠’ 채널. 요새 뭐가 뜨나 한번 볼까요? 지금은 ‘너덜트’ 채널이 떴네요. 그리고 ‘터키즈’.
GQ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는 장기하라는 사람에 대한 힌트가 참 많았어요. 언급이 꽤 잦았던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중엔 뭘 제일 좋아해요?
KH 하루키의 저작 전체로 치면 소설보다는 산문을 더 좋아해요. 많이 와 닿았던 책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어요. 그건 ‘직업으로서의 창작자’로 치환해도 전부 말이 되는 이야기라 느꼈거든요. 소설가라면 응당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이런 유의 시선들 따위 신경 쓰지 마라. 그럴 시간에 내 것을 해라. 통념을 무시하라는 메시지가 좋았어요.
GQ 에필로그에서 여지를 두었죠. 만약 두 번째 산문집이 나온다면, 과연 어떤 문장이 제목으로 낙점될까요?
KH 약간 반대로 가지 않을까요? 뭔가···, ‘이것만은 포기 못 해’ 이런 거? 음, 잘 모르겠는데요. 너무 어려워요.
GQ 이건 쉬운 질문일 거예요. 술과 페어링하기 좋은 채식 레시피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두 분야 모두 일가견 있으시잖아요.
KH 두부 계열이 떠오르네요. 일단 식재료로 두부랑 버섯이 좀 생각이 나는데···. 아니다, 무조림! 무를 간장에 조려가지고 해 먹은 적이 있는데 라거 맥주랑 아주 잘 어울려요. 서양쪽 말고 한중일 아시아 계열 라거로. 별거 아닌 밑반찬일 수 있지만 감탄하실 거예요. 모든 건 맥락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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