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신은 제 살 길 알아서 찾는 자가 승리하는 야생이다. 기꺼이 베어 그릴스가 되기로 한 요즘 젊은 작가들이 궁리 끝에 찾은 방식은 예술 공간 운영이다.
“작가가 되려면 마흔 살까지는 다른 일에 눈 돌리지 말고 작업만 해야 한다.” 스물한 살. 미대 재학 시절, 교수에게 들은 조언이다. 돈 생각 말고 꾸준히 그리다 보면 누군가 알아준단다. 의아했다. 마흔 살까지 땅 파서 작업하나? 물감이랑 붓은 무슨 돈으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면 외제차 탄 컬렉터라도 나타나나? 젊은 패기로 겁도 없이 교수에게 되물었다. “그래도 생계는 스스로 챙겨야 하지 않나요?” 교수는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띠며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면 작가가 되기 어렵다고 딱 잘라 말했다. 순간 결심이 섰다. 아, 나는 안 되겠다.
겨우 말 한마디에 좌절하다니. 개복치 아닌가 싶겠지만 변명을 하자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은 다를지 모르겠다만, 1n 년 전만 해도 미술 대학은 ‘작가 아니면 죽음’을 외쳤다. 대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하는 교수 면담에서 “저 취업하겠습니다”란 문장은 손절 선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로서 살아남기’는 알려주지 않는다. 세상이 자기 PR 시대로 변해도 미술 대학은 묵묵히 작업만 하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작가와 창작자는 동의어가 아니다. 작가란 기획, 생산, 홍보, 영업, 재경, 구매 등 모든 부서 업무를 하는 1인 기업 운영자기도 하다. 이 기업의 주 수입원은 작품. 수요가 있어야 판매가 따르듯, 작품을 팔려면 어딘가에 이름을 알려야 한다. 갓 졸업한 신진 작가에게 미술관과 갤러리는 진입 장벽이 높다.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 전시 공모 당선과 레지던스 입주다. 이 타이틀을 얻으려면 기업 취업처럼 서류,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까지 달성해야 하는데 여기서 대학 차원의 지원은 없다. 결국 알아서 찾아서, 알아서 쓰고, 알아서 면접 봐야 한다. 어찌어찌 판매 문의가 들어와도 곤란하다. 생애 첫 작품 판매가는 어떻게 매겨야 할까? 작품 가격은 음식점 메뉴판처럼 검색하면 나오지 않아 시장 조사가 어렵다. 이 또한 알음알음 수소문해가며 적정가를 찾아야 한다. 이건 뭐, 베어 그릴스가 따로 없다.
전쟁 통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 동기 몇 명은 작가가 됐다. 집이 대단히 잘살아서 마흔 살까지 먹고살 걱정 없는 친구들이 아니다. 목말라서 직접 우물을 판 경우다. 작가로 생존하려는 나 자신과 같은 고민을 나누는 또래 예술가를 위해 공간을 마련했다. 일명 ‘신생 공간’의 등장 배경은 이러하다.
신생 공간이란 작가, 기획자, 평론가 등이 내 살 길 내가 찾겠다는 심정으로 만든 장소다. 이곳에선 자신과 동료의 지속 가능한 미술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전시, 아티스트 토크, 콘퍼런스, 이벤트 등 방식은 자유롭다. 대체로 5평 남짓의 작은 크기로,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위치한다. 운영자의 대다수가 겸업하는 터라 운영 시간도 들쑥날쑥하다. 공간마다 콘셉트는 상이하다. 편의상 신생 공간으로 묶어 부르는 거지, 이들을 하나로 규정지을 특징은 딱히 없다. 앞서 ‘신생 공간’이라 소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각 공간의 특징은 어디서 드러날까? 전시다. 예술 하고 싶다는 갈망 끝에 탄생한 공간이라 운영자들이 한풀이하듯 전시를 기획한다. 주연 아닌 조연인 도록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귀가 터질 듯 사운드를 크게 틀고 신기술을 접목한 특이한 기획. 개성 있는 전시를 통해 신생 공간은 각자의 캐릭터를 굳혔고, 미술계 내외로 소소한 팬층까지 확보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존 방식으로 등극했다. 절대적 개수가 점점 늘었고, 서로 간의 교류도 활발해져 물리적 공간을 넘어 예술가 커뮤니티까지 그 역할이 확장됐다.
이런 신생 공간이 2010년 중순에 부쩍 생겼으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세월의 흐름 속 크고 작은 일이 여럿 일어났다. 구찌가 개최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은 신생 공간을 주제로 삼았고, 아트페어 ‘더 프리뷰 한남’은 이들을 참여 공간으로 초대했다. 어떤 곳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잠정 휴업,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반대로 운영에 탄력을 받아 프로젝트를 확장한 곳도 있다. 새로 문을 연 공간도 있다. 시작은 지속 가능한 예술 활동으로 비슷했으나 지금 모습은 사뭇 달라 보인다.신생 공간은 변곡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몇 공간에 물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신들은 여전한지 아니면 달라졌는지.
을지로 3가의 ‘중간지점’은 작가 이은지, 박소현, 김기정, 김옥정이 운영한다. 작가들의 현 위치와 관계성을 찾고자 개최한 <잠과 요동>전을 계기로, 이은지의 작업실을 중간지점으로 정비했다. 태생이 이렇기에 작가 간의 관계를 중시한다. 운영 5년 차의 중간지점은 처음 모습 그대로다.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4명이 함께하는 유닛 만들기. 작가가 같이한다는 기본 프레임을 유지하기에 프로젝트를 확장해도 본 성격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작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다. 협업을 유지할 시스템을 끝없이 고민 중이다.” 이은지의 말이다.
작가 남윤아와 손지훈이 운영하는 ‘쇼앤텔’은 2017년에 오픈했다. 자신들처럼 업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다짐하에 직접 판을 만들었다. 지금 쇼앤텔은 지속 가능한 예술에 더 힘을 싣고자 작가뿐 아니라 공간 운영자, 독립 기획자, 아트 라이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세대 대안 공간, 2세대 신생 공간, 3세대 또는 포스트 공간이 공존하는 요즘. 쇼앤텔은 명칭을 넘어 성장과 지속을 향해 나아가고자 자문자답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실험과 실패, 용기와 부활의 플랫폼을 유지 중이다.
신생 공간은 지금도 생기고 있다. 작가 노두용은 2020년에 ‘실린더’의 문을 열었다. 실린더도 원래 노두용의 작업실이었다. 노두용이 영국 유학 중 잠깐 한국에 돌아왔을 때 공교롭게 코로나19가 터졌다. 작업 계획이 모두 틀어져버린 상황에서, 넋 놓고 있는 대신 작업실 하나를 얻었다. 공간을 보고 있자니 더 많은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열과 성을 다해 실린더를 만들었다. 앞선 두 공간보다 조금 늦게 오픈했음에도 시작 의도는 비슷하다. 제 살 길 제가 찾아 나선 신진 작가의 작고도 확실한 몸부림. 그리고 또래 예술가 교류의 장 개척하기다.
“언제부터인가 미술을 하더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술을 위해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여러 청년의 고민이 반영된 산물이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다.” 쇼앤텔 운영자이자 작가 손지훈의 말이 그때 가슴에 콕 박혔다. 다른 운영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혼자만의 작업에 지쳤다”, “교류하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과정을 응원하며 동반 성장하고 싶다” 등.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기득권으로 전락해 신세대의 도전과 비판 대상이 되는 게 미술계다. 신생 공간은 서로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모인 결과물이다. 이타적 마음이 모인 공간에는 강한 생명력이 있다. 신생 공간이 기성화되지 않는 건, 너-나-우리의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신입에게 열려 있고, 그들의 작품을 응원하는 신생 공간은 정형화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전히 각자 자신의 공간에 맞는 전시를 열고 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신생 공간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나열할 리스트를 참고하길. (가나다순.) 공간 형, 디스이즈낫어처치, 산수문화, 소쇼룸, 쇼앤텔, 실린더, 웨스, 중간지점, d/p, www스페이스. 이 외에도 여럿 있다. 지도 앱에 검색해보고 ‘여기 맞나?’ 의아해하지 말길. 구불구불한 골목길 중턱에 있는 그곳 맞다. 글 / 이효정(아트 라이터)
- 피처 에디터
- 전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