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듯하고 시절은 남루했으며 체력은 비실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라운딩과 레슨, 연습까지 멀리했다. 골프로 새로 알게 되고 한결 더 친해진 골프 버디들 또한 바다 위 작은 섬에 반짝이는 비늘만 남기고 사라진 인어처럼 유유히 멀어졌다.
A양 — 가장 많은 라운딩을 함께한 후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연습과 레슨을 꼬박꼬박 챙기고, 각종 월례회로 아젠다에 빈틈이 없다. 비슷한 구력이지만 타고난 파워와 성실한 연습량으로 실력은 한 수 위. 특히 쇼핑에 관심이 많은데 골프 쇼핑을 위해서라면 번역기를 돌려 슬로바키아 사이트에서 볼마커를 구입할 정도. 오호츠크해를 지나는 선박에 A양이 주문한 골프 백이 세 개는 실려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골프장의 풀과 꽃과 나무 냄새를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여름 그늘집의 수박.
B양 — 작년에 부쩍 가까워진 선배. 구력은 오래됐지만 레슨과 연습이 전무한 이유로 딱히 스코어를 논할 수 없다. 하지만 뛰어난 운동 신경과 부러운 피지컬 덕에 여자 골프 버디 중 가장 장타자. 브라이언 디섐보처럼 드라이버 헤드가 부러져 날아간 순간을 아찔하게 기록해두었다. 성격이 급해 그린에 가장 먼저 도착하지만, 그 때문에 짧은 퍼팅을 자주 놓치기도 한다. 공에 대한 애착이 강해 틈만 나면 볼 라이너로 표식을 하고 부족하면 별 다섯 개를 더 그린다. 그것도 아주 아티스틱하게.
C군 — 필드 위에서 가장 웃긴 남자 사람 친구. 신개념 유머 코드의 소유자로 일행은 물론 캐디 선생님들에게도 인기 만점. 감정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단점이 있어, 드라이버가 잘 맞으면 어깨가 귀에 닿을 듯 올라가고 미스 샷을 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카트를 타지 않고 터덜터덜 걷는다. 멘털이 약해 그와는 어떤 내기를 해도 단박에 이길 수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건 그의 경쟁 상대는 왜인지 늘 여자라는 점.
D군 — 실력 차가 상당히 많이 나는 고수이자 지큐 골프 콘텐츠 기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 이미 야구와 테니스까지 모두 섭렵한 운동 마니아로, 골프의 구력과 실력도 상당하다. 필드에서 등산화나 러닝화를 신고도 어렵지 않게 원 온(파 4홀에서)이나 버디 하는 걸 보면 실력자인 건 확실하다. 나의 취약점인 벙커 샷을 될 때까지 알려줄 땐 다정한 오빠 같지만, 다소 수다스러운 편이라 솔직히 내겐 없는 친언니처럼 여긴다.
E양 — 골프 입문 때부터 나를 어미새처럼 챙겨주는 큰언니. 특별히 연습이나 레슨을 받지 않아도 늘 80점대 초반를 유지하는 동부이촌동의 숨은 실력자다. 가장 좋아하는 건 골프와 술, 가장 무서워하는 건 한창 예민한 시기의 딸. 딸의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여서 늘 안개와 함께 새벽 라운딩을 해야 하는 불만이 있지만, 오전 9시도 되기 전 전반 9홀을 마치고 소주 한 병을 후딱 해치우는 장군적인 기개와 포스에 군말 없이 따라나선다.
F군 — 똑딱이부터 함께한 대치동 골프 선생님. 나의 작은 장점과 큰 단점을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스승이 아니라 다 내 탓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한 선생님만 고집하는 이유도 있다. 처참한 운동 신경, 타고난 게으름, 조류와 견줄 만한 기억력을 모두 다 이해하고 딱 맞는 눈높이 교육을 실천한다. 괜한 말로 헛된 기대를 불어넣거나 자신감을 심어주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과도한 업무량에 전화기를 자주 보고 스케줄 잡기가 쉽지 않은 게 작은 불만이지만.
<지큐 골프> 2호에는 골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골퍼가 많이 등장한다. 스치듯 본 사람, 무척 궁금했던 사람, 이미 아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골프 버디들이다. 계절이 바뀌면 연어가 돌아오듯 인어도 돌아온다. 이제 다시 만날 때가 되었다.
- 편집장
- 강지영
- 패션 에디터
- 박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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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기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