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에서 사흘 지내며 ‘사이판 마라톤’ 대회를 관전했다.
사이판으로 출발하기 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사이판이 미국이에요?” 사이판은 흔한 관광지 같았지만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이 맑겠지, 하늘은 푸르겠지, 덥고 습하겠지…. 막연한 예상만 있는 곳. 사이판은 남쪽으론 호주, 북쪽으론 일본, 동쪽으론 (아주 멀지만) 하와이, 서쪽으론 필리핀을 둔, 마리아나 제도의 가장 큰 섬이다. 하지만 사이판 공항은 참 작았다. 사이판도 우리나라의 섬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거제도의 3분의 1 정도, 제주도에 비하면 9분의 1 정도로 작은 섬. 인구는 약 5만 명. 우리나라로 따지면 군 정도의 규모. 왠지 사이판은 관광객도 많고 혼잡할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사이판에선 속 모를 것이 없었다. 바다와 하늘, 사람 모두 투명했다. 숙소인 하야트 리젠시는 마이크로 비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작고 아담하지만 한 번 누우면 일어나고 싶지 않은 해변. 모래사장에서 꽤 멀리까지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수심이 이어져 있다. 덕분에 바다 쪽으로 아주 멀찍이 걸어갈 수 있었다. 파도는 바다의 일이라지만 그곳에선 모든 것이 쉬고 있었다. 아니, 멈춰 있었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아이가 뛰어노는 걸, 윈드서핑하는 걸 파도는 방해할 기색이 없었다. 저 멀리로는 마나가하 섬이 보였다. 관광객은 너도 나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뛰어가면 금세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진행한 마리아나 관광청 이정선 대리가 말을 가로챘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이 헤엄쳐서 가려고 해요. 그 탓에 인명사고가 많이 나요. 잠잠해 보이지만 조금만 나가도 엄청난 해류가 있어요. 허튼 생각 마세요.” 그 잔인한 말이 왜 그리도 거짓말 같은지. 휴양지, 즉 쉬고 치료하는 곳. 사이판은 휴양지라는 단어가 적확했다. 말하자면 이름은 익숙하지만 모습은 생소한 휴양지. 낮은 수심, 작은 쓰레기도 찾기 힘든 깨끗한 해변,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르고 마셔도 될 것 같은 바다(지만 입에 닿는 순간 국간장 맛이 난다). 마이크로 비치에서 가까운 마나가하 섬까지는 배로 15분. 그 뱃길에서 마주하는 깊은 바다의 ‘파아아란’색은 마티스가 ‘푸른 누드’ 시리즈에서 선택한 단 하나의 파랑색과 맞닿아 있었다. 마티스가 파란색 구아슈 물감을 종이에 칠하고 이 조각들을 붙여 단 하나의 색으로 움직임을 표현했다면, 사이판의 바다도 바로 그 색으로 꿈틀대는 것 같았다. 마티스의 말. “색이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단순해서 가장 감동적인 바다를 사이판에서 봤다.
그리고 마라톤 대회도 봤다. 사이판에서는 매년 10킬로미터(이하 10K), 하프 마라톤, 풀코스 마라톤, 50킬로미터 이렇게 네 종류의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대회 전날 오후 다섯 시. 이름표와 행사 진행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 참가자들이 모였다. 아이들과 사이판 주민들, 가까운 일본에서 온 참가자와 이역만리에서 온 것 같은 다양한 외국인이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분명 다양한 색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모습이 꼭 구민회관 행사 같았다. “금천구 마라톤 대회 같아요.” 10K 참가자 이충희 씨의 한마디로 환기되었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회에 주로 나갔어요. 근데 점점 그런 대회보다는 구청장배 대회 같은 작은 대회를 자주 신청해요. 끝나면 수육에 막걸리 마시고. 하하.” 그의 말처럼 사이판 마라톤 대회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쉽게 친해졌다.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고, 그런 얼굴을 서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10K에 참가한 우리나라 아마추어 러너 열 명의 표정도 마찬가지. 모두가 내일을 기다리며 얼굴을 붉혔다. 10K 대회는 오전 여섯 시에 출발했다. 사람들이 처음 모였을 땐 완벽한 어둠이었지만 출발 신호를 기다릴 땐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듯이 금세 밝아졌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바닥은 젖어 있었다. 걸어 다녀도 슥슥 미끄러질 정도. 다들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자 러너가 총알처럼 튀어나가고 어린아이들이 뒤를 따랐다. 얼마 안 돼 금방 대낮처럼 환해졌다. 해가 뜨자 서늘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습기에 햇볕이 더해져 푹푹 쪘다. 편하게 서 있는 사람도 이런데 뛰는 사람은 오죽할까? 표정을 찌푸릴 만도 한데, 응원 소리 때문인지 다들 웃고 있었다. 반면 선두 그룹은 기록 때문인지 진지하면서 굳은 표정이었다. “바닥이 미끄럽고 너무 습해서 좋은 기록이 쉽지 않겠는데요. 그보다 다들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요.” 한국 참가자들을 후원한 아식스의 김정 과장이 걱정하듯이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강풍이 나무를 심하게 흔들었다.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악조건은 없어 보였다.
출발 때 가장 먼저 뛰어나간 일본인 참가자가 1등으로 골인했다. 그가 골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다. 부상이 염려되는 악조건이 전부 갖춰졌다. 몇 분 후 이충희 씨가 남자 6등, 임보미 씨가 여자 6등으로 골인했다. 젖은 바닥, 습한 공기, 높은 기온, 강풍과 소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참가자 기록이 좋지 않았지만 다들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들어올 때 기분이 좋아서일까? 사이판 마라톤 대회는 참가자들이 골인할 때마다 테이프를 끊을 수 있게 해줬다. 러너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골인 테이프를 들고 있는 건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은 물을 나르고 행사 진행을 도왔다.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마라톤 대회에도 세계 각국 아이들이 많이 참가했다. 사이판 아이들은 변덕스러운 기후가 낯설지 않은지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경쟁하며 전력으로 질주했다. 골인 후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계속 뛰어다녔다. 뛰는 게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아직 더 뛸 수 있다고 자랑하듯이. “처음 뛴 풀코스 마라톤에서 어떤 어르신이 말씀하셨어요. ‘지금 편하게 뛰는 것 같은데, 뛸 수 있을 때 전력으로 뛰지 않으면 후회해요.’ 그때 생각했어요. 혹시 나는 ‘달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닐까? 그 이후 달리는 태도와 자세를 바꿨어요. 신발도 디자인이 아니라 발에 가장 편하고 기록을 낼 수 있는 걸로, 옷도 제일 가벼운 걸로요. 다른 사람 의식 안 하고요.” 이충희 씨는 사이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가 러닝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한때 매일 3~5킬로미터씩 뛴 적이 있다. 내가 달린 목적은 오직 다이어트. 그러다 깨달았다. 뛰는 건 헬스클럽보다는 운동장이, 운동장보단 한강 옆에서, 다이어트보단 그냥 뛰고 싶을 때, 즐겁다는걸. 요 몇 년 사이 달리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지고, 그 모습은 SNS에 가득했다. 간단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인류 최초의 운동은 어쩌다 유행이 되었을까? 고백하자면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사이판에서 봤다. 뛰다가 미끌어져도 웃는 아이들, 제자리 뛰듯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지만 절대 걷지는 않는 할아버지, 주근깨 위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 누구보다 빨리 달리던 여자 러너. 사람들은 왜 달릴까? 단순해서 가장 감동적인 운동을 사이판에서 봤다. 돌아온 날, 서울엔 비가 내렸다. 괜히 야속했다. 내가 갑자기 변한 걸까? ‘1등을 한 일본인이 신었던 신발이 가볍고 단단한 마라톤화였나?’ 시작을 항상 장비에서 찾는 한국 남자는 한강을 다시 뛰고 싶다.
- 에디터
- 양승철
- 사진
- POMME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