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연기하고 가수는 노래하고 연예인은 이미지를 가꾼다. 때로 겹치고 때로 동떨어진다. 소위 파격 화보라 불리는 것들은 그 사이에서 생겨난 해프닝이다.
또 시작이다. 매달 포털 사이트 뉴스 판에 뜨는 문구들. ‘아무개 이런 모습 처음이야’ , ‘아무개 맞아?’ , ‘아무개 팔색조 매력 뽐내’ , ‘아무개의 변신은 무죄’…. 연예인 사진이 주는 즉각적인 호기심, 처음 보는 것에 대한 기대, 노출과 관계된 섹슈얼 코드까지 뒤섞인 채 ‘클릭’ 을 종용한다. 클릭 후 마주치는 건 당황스런 ‘비주얼’ 이기 십상이다. 딱히 뉴스 코멘트가 틀린 건 없다. 이런 건 처음 보고, 변신은 변신이며, 누구도 죄를 지진 않았으니까(클릭한 죄를 스스로 묻는다면 모를까). 마법에 걸린 공주, 마차 탄 신데렐라, 비운의 황태자, 귀여운 반항아, 나쁜 남자, 심오한 예언가, 눈물 흘리는 파우스트, 미래에서 온 여전사, 물동이 진 인디언 처녀, 술 취한 록스타, 램프의 요정,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희한한 뭔가로 변신한 연예인들이 여러 가지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 속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헛웃음이 난다. 이미지 변신이라기보다는 둔갑술 시연이거나 코스프레 쇼로밖엔 보이지 않아서다.
이런 ‘비주얼’ 생산지의 팔 할은 각종 잡지다. 그중에서도 연예인 ‘모시는’ 걸로 유명한 몇몇 잡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고전 읽기나 역사 탐구보다는 연예인 얘기와 맛집 순례에 열광하는 시대의 당연한 수순일는지도 모른다. 팔리는 것만 콕콕 찍어서 유리하게 진행하면 끝이니까. 그런데 변신은 연예인만 하는 게 아니다. ‘모시느라’ 하녀로 변신한 잡지를 잊으면 안 된다. 나와만 준다면 요구사항은 무조건 접수, 하다못해 케이터링에 애프터 파티에, 선물까지 준비하며 변죽을 울린다. 연예인 섭외와 진행에서 에디터가 신경 써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그 연예인이 좋아할 선물 고르기라니, 막장이 갱도나 드라마에만 있는 건 아니다.
소위 ‘파격 화보’ 가 난립하는 이유엔 여러 맥락이 작용한다. 일단 장소의 제약이 있다. “찍을 곳이 없어요.” 연예인 화보라면 진력이 난다는 익명의 에디터다. “연예인들은 외부 촬영을 극단적으로 싫어해요. 뭔가 새로운 느낌을 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장소인데, 스튜디오나 호텔이 아니면 촬영하지 않는다고 말하죠. 그런 장소에서 뭘 하는 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연예인의 느낌으로만 뭔가를 만드는 건 역부족이거든요.” 하얀 바탕에 얼굴 표정만 있어도 힘차고 멋진 사진이 나온다면 뭐가 문제일까? 그런 역량은 안 되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걸 만들려니 소품이며 세트며 점점 규모가 커지고, 동화니 뮤지컬이니 하는 식으로 콘셉트가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추세는 일반인들의 웨딩 사진만 봐도 비슷하다. 턱시도에 웨딩드레스 입고는 괜히 실내에서 자전거 타는 사진 찍고, 영하 10도 겨울에 길바닥에서 어깨 내놓고 키스 신을 연출하는 지금이 아닌가?
고유한 사진 세계가 없는 사진가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잡지판에서 뜨는 사진가 대부분은 에디터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사진가일 거예요.” H 스튜디오 어시스턴트의 말이다. “톤을 이렇게 해주세요 하면 이렇게 해주고 저렇게 해주세요 하면 저렇게 찍는 사진가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예를 들어 테리 리처드슨과의 촬영이라면 대충 어떤 사진이 나올지 감이 잡히잖아요. 그런데 국내 유수의 사진가 이름을 거기에 대입하면 글쎄요.”연예인이랑 친한 사진가, 연예인 비위를 잘 맞추는 사진가 정도가 있다면 모를까, 어떤 고유한 사진 세계를 선보이는 사진가는 확실히 드물다. 연예인은 자기가 왕이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사진가의 세계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관심이 있는 부류다. 마치 테리 리처드슨과 촬영해놓고 피부톤을 깨끗하게 밀어달라는 식이고 그게 통하는 게 지금 상황이다. 누구의 의견이 더 중요할까? 당연히 연예인이다. “사진 보세요. 다 똑같잖아요. ‘뽀샵’ 은 이제 아무도 문제삼지 않죠. 성형보다 더한대도.”
패션을 이해하는 수준 문제는 어떨까? 화려한 것, 비싼 것, 어딘지 속물적이기도 하지만 예술로 우기면 인정되는 것, 그래서 명품인 것…. 작금의 패션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패션에 대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이해는 지극히 허상이라는 측면에 국한되어 있다. ‘같은 옷 다른 느낌’ 이라든가, ‘레드 카펫 베스트와 워스트’ 정도가 패션을 얘기하는 주된 소재라는 점은 그런 수준을 고스란히 반증한다. 패션이야말로 연예인을 매체로 끌어들이는 좋은 수단이다. 잡지를 이미지 변신의 장쯤으로 취급하는 그들에게 옷이 아니라 ‘패션’ 을 입자는 제안은 매력적이다.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스타일리스트 K의 말이다. “은근히 패션이라는 분야가 전문성을 무시당하기 쉬운 분야예요. 옷이라면 나도 잘 안다는 식이죠. 파격화보를 찍는다고 했을 때, 그 콘셉트는 사실 두 번째 문제일 거예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는다는 건, 자신을 브랜드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죠. 경험이 없는 신인들의 경우엔 더하지만, 패션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어울리는 뭔가를 취함으로써 얻는 매력이기보다는 브랜드에 기대서 자신을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전문가의 조언보다는 브랜드 라벨을 훨씬 신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더구나 촬영 후 그 옷을 준다는 전제까지 있다면, 팔색조가 아니라 팔십색조인들 못 되겠어요. 행사장에서 거지처럼 구는 연예인이 한둘인가요?”
일견 연예인 파격 화보에 대한 긍정도 있지만 온전하긴 어렵다. “한국에만 있는 유니크한 상황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진가 L 이 말한다. “할리우드의 어떤 스타도 이런 식으로 화보를 찍진 않아요. 여배우라면 남성 잡지에서 섹시하고, 여성 잡지에서 우아하게 찍는다는 정도의 맥락이 있죠. 대체 아이돌 가수가 마법사로 변신해 열 페이지 화보 찍는 나라가 한국 말고 있을까요? 그런 부분이 재미있다면 재미있다고 볼 수도 있죠.”
얼마 전 배우 L이 <GQ>에 화보를 제안했다. 전속 스타일리스트가 말한다. “어린 시절의 L, 지금의 L, 나이가 든 미래의 L을 화보로 표현하고 싶어요.” 에디터가 일단 답한다. “미래의 L은 노인 분장을 한다 치고, 그럼 어린 시절의 L은 어떤 방법을 생각하시는 거죠?” 스타일리스트의 답. “L이 조금만 스타일을 바꾸면 아주 어려 보여요.” 거절해야 했다. 그렇게 촬영한다면 캡션에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L의 어린 시절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언제나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어쩌고 저쩌고….”
파격 화보는 제대로 된 인터뷰가 존재하기 힘든 세상을 관통하는 트렌드다. “외국에서 이런 화보는 패션모델들의 몫이에요.” 스타일리스트 K의 말이다. “누구보다 그 자신이 돋보이고 싶은 스타들이 메이크업으로 자기 얼굴을 지우고 뭔가로 변신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그냥 우스꽝스런 일이니까요.” 아주 단순한 논리가 선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을 보여주길 원한다면, 지금 한국의 뭇 연예인은 자신이 아닌 것을 보여줌으로써 판타지를 만들어내려 한다. 실제로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인터뷰나 화보진행이 스타의 집에서 장시간 체류하며 진행된다면, 앞서 말했듯이 한국 연예인의 화보는 스튜디오에서 햄버거 먹듯이 해치운다. 그러는 채, 그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감을 얻으려 별의별 소품이 다 동원되고 해괴한 세트가 생겼다 부서졌다 반복된다. 작금의 파격 화보가 결국 파격이 아니라 푸닥거리에 그치는 이유다.
“그 얘긴 안 하고 싶어요.”이번 사안과 관련해 사진가나 스타일리스트 에디터들에게 코멘트를 요청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이다. 업계의 민감한 사정을 얘기하곤 했다. 여보란 듯 파격 운운하며 펼쳐놓았으나 진짜냐고 묻는 데에는 난색을 표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은 사실의 간극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아닐까? 그러는 동안 파격 화보라 불리는 ‘얼간이 코스프레 대잔치’ 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