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할 수 있다. 여기는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야 하는 나라니까. 그래도 뭐가 안 보이는 나라니까. 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 “떠나라”고, 머리는 말하지만 “꼭 그래야겠냐”고, 갑자기 다른 말이 들리기도 한다.
갑자기 버려진 것 같았다. 지금 살고 있는 방식으로 꾸준히, 심지어 열심히 산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은 순간이 자주 왔다. 10년, 20년 이후를 생각하려는 순간마다 그랬다. 요는 이거다. “더 잘살고 싶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돈을 더 벌고 싶다.” 금융 컨설턴트인 누가 얼마를 받는데, 회사원인 누구는 얼마를 받아서 허무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래봐야 별 차이가 없다는 거다. 좋은 물건을 갖게 되면, 1년에 두 번 정도 해외로 휴가를 가면 불안이 사라지나?
회사원이 돈을 더 불리는 방법은 저축 혹은 투자일 것이다. 주식은 자본주의가 허용한 도박이니까, 벌거나 잃을 수 있다. 혼자 하면 대개 잃는다. 혹은 잃을 때까지 한다. 벌 때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업료’라 여긴다. 간접 투자를 결심했을 때 벌어지는 일도 예측 가능하다. “한 달에 2백만원을 버는 20대라면 1백만원은 투자하시고 50만원은 장기저축하시고 나머지 50만원을 생활비로 쓰라”는 조언. “장기 투자는 오래 할수록 이익이니까 적어도 10년 이상 버티면 돈을 버시는 거”라는 얘기. 그렇게 순진하게, 성실하게, 꾸준히 하면, 진짜 돈은 은행이나 투자 자문 회사가 번다.
은행에서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요즘 돈 모으지 말라고 해. 버는 대로 쓰라고. 대신 행복하게 잘 쓰라고. 저축? 해봐야 남는 게 없어.” 1년 전에 결혼한 친구였다. 아내는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서 일한다. 둘 다 꽤 많은 돈을 번다. 그래도 여유는 없다. “우리가 둘이 같이 한 달에 5백만원을 저축해. 굉장히 큰돈이야. 그럼 1년에 6천만원, 5년에 3억이지? 5년 후면 내가 마흔이야. 마흔에 현금 3억이 있는 거지.”
이 계산에 출산은 없다. 아파도 안 된다. 친구의 부모님이 편찮으셔도 안 된다. 집안에 큰 일이 생겨도 곤란하다. 좋은 차를 사면, 또 계산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3억으로는 직장에서 가까운 아파트 한 채도 못 산다. 친구는 도곡동, 아내는 삼성동에 회사가 있다. 2013년 봄 즈음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서울의 PIR, 즉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9.0에서 17.6에 달한다.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9년에서 17.6년을 모아야 집값이 나온다는 뜻이다. 지금 네이버 부동산 검색에 걸리는 20평형대, 약 79제곱미터 정도의 아파트는 싼 것이 1억 5천, 비싼 것은 12억이다. 전자는 양천구 신월동, 후자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다.
노정태의 책 <논객시대> 우석훈 편엔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중산층이 처음 형성되던 시절, ‘스탤라 인생관’”에 대한 언급이 있다. 20대는 20평 아파트에 엑셀, 30대는 30평 아파트에 프레스토, 40대는 40평 아파트에 스텔라를 가진 다는 것이 하나의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엑셀은 현대가 만들어 판 소형차였다. 프레스토는 좀 더 컸다. 스텔라는 중형차였다. 지금의 쏘나타정도 다.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의 크기를 늘려가는 것 이 그 시절 부의 공식이었다. 그때의 20대는 지금의 50대다. 그 세대가 지금도 가장 많은 돈을 갖고 있다. 그 공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의 20, 30대에게는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같은 공식을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취직 이후, 번듯한 직장에서 3천만원 중반 정도의 연봉을 받는 정규직 직장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주거 형태는 서울 어딘가의 원룸이다. 네이버에 있는 부동산 개인 거래 사이트, 몇 군데의 부동산을 돌아다니는 매 순간 환상은 깨진다. 더불어 보증금과 월세 사이의 첨예함, 전세와 전세 대출 이자 사이에서 다시 고민하는 시간…. 집 앞에서, 돈의 가치는 솔직하다. 비쌀수록 좋은 집에 살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타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월세는 허공에 흩어지는 돈이다. 내가 벌어서 집주인이 생활비로 쓴다. 비싼 땅에 건물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기반 삼아 더 번다. 한남동에서 전세를 살던 친구는 계약이 끝나자 ‘1천만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직면했다. 속이 쓰렸지만 ‘그러마’ 했다. 그런데 2주 후, ‘아니다, 2천만원을 올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친구는 타협을 시도했다. 통하지 않았다. 지금은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매물을 검색 중이다. 그래도 맘에 드는 원룸을 구할 수만 있다면….
다시 솔직해지자. 지금 30대의 목표는 혹시 ‘불로소득’ 혹은 ‘건물주’ 아닐까?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 한국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다니엘 튜더가 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 이런 내용이 있다. “2011년 고등학생들 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 중 87.9퍼센트가 ‘지난주’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으며, 그중 70퍼센트는 학교가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일본, 미국, 중국의 학생들이 그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한 비율은 5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는 2011년 한국의 10대 청소년들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행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취직과 결혼, 출산은 대학 이후에 뚫어야 하는 관문이 되었다. 심지어 여행과 연애조차 스펙이 되었다. 모든 건 시장이 결정하니까, 스펙이라는 말은 공공연히 쓰인다. 스펙은 자동차 제원 같은 걸 설명할 때 쓰는 말, 기계의 설명서 혹은 사양이라는 뜻이다. 최고출력이나 공인연비를 비교할 때 쓰는 말이다. 지금은 같은 방식으로 경험을 잰다. 그래야 비교우위를 측량할 수 있으니까. 측량이야말로 경쟁의 시작이고, 끝나지 않는 게임이기 때문에.
OECD 국가의 2012년 연간 근로시간 평균은 1,709시간, 한국은 2,092시간이다.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한다. 1위는 2,317시간의 멕시코, 3위는 2,012시간 일하는 칠레다. 불행한 고등학교 시절을 통과해, 가까스로 취직하면 이런 근로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불안. 출산? 그럼 한 달에 5백만원 저축한다던 은행원 친구가 자녀를 갖는다면, 앞으로 5년간 모을 돈을 전부 아이의 양육비 및 교육비로 써야 한다. 2013년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한 명의 자녀를 대학 졸업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3억 8백96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수, 휴학, 어학연수는 제외한 (여러모로 비현실적인) 통계다. 재수나 휴학 같은 건 계획한다고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단계가 아니다. 게다가 그 자녀가 대학생이 될 즈음, 친구가 50대 중반이 되면 회사에서도 나갈 때가 되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노후가 가장 불안한 나라다. 가계 저축률은 1990년 이후 꾸준히 떨어졌다. 어른들은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말하면서 허허허 웃는다.
그러니 기꺼이 떠나는 사람이 있다. <한국경제>의 2013년 보도에 외국계 부품회사에서 7년간 일한 37세 김씨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호주 이민 전문 용접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의 연봉은 5천만원 정도였다. 일산에 30평형대 아파트도 사뒀다. 그래도 불안했다. 호주는 취업비자만 있어도 대학까지 공짜로 다닐 수 있는 나라. 기술을 배워 살길을 도모하고, 아이의 교육 환경을 위한 탈출이었던 셈이다.
근원적인 공포는, 그렇게 취직해 결혼하고 살다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도 거의 비슷한 인생을 살게 돼 있다는 데 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가 부모만큼 살자면 또 다른 관문을 뚫어야 한다. 아이에게 최대치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아예 낳지 않는 게 방법일 수 있다는 얘기다. 출산율이 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겁이 나서,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다. 어느 정도의 돈은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 행복은 더 이상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신혼부부에게 아이는 현실적인 공포이자 스트레스의 시작일 수 있다. 심령물보다 슬래셔에 가까운 얘기. 거대한 악보의 끝에,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있다.
“더 잘살고 싶다”는 건 매우 원초적인 바람일 것이다. 더 좋은 차를 갖거나,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욕망과는 다르다. 이런 사회에서, 진짜 비싼 건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을 시간, 아이와 놀아줄 수 있는 시간, 부모님과 산책할 수 있는 시간.
기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쳐 있지 않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학생들에게는 없다. 고등학생 아들딸이 아빠만큼 바쁜 한국은 가족을 그렇게 해체시킨다. 학생은 학생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허덕일 수밖에 없는 시대. 어떤 날 새벽엔 벼랑 끝에 서 있는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다. “다 리셋하고 싶어.” 한 명이 말했고, “이렇게 살아서 뭐 해” 또 한 명이 말했다. 둘 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30대였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얘기다. 한국의 정치, 언론, 경제 상황의 이런저런 논란에 대한 세세한 대답이나 의혹 혹은 허무도 아니다. 화려하면서 (비교적) 안전하기까지 한 서울의 밤, 아직 가보지도 못한 다른 도시, 그렇게 살아낸 모두의 가족, 지금도 어딘가 앉아서 웃고 있을 친구들…. 이 모든 걸 끌어안고 인정한 후, ‘그래서 우리가 지금보다 잘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여기, 같이 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매우 자조적으로, 그래서 오히려 희망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나라로 가고 싶어.” 최인훈이 쓴 소설 <광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중립국.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광장>이 발표된 건 1960년, 불과 54년 전이다.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같은가. 어떤 선배는 한국에서 하던 일을 모두 접고 하와이로 떠났다. 그들에겐 아무 계획이 없었다. 여기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만 있었다. 시대는 달라졌다. 하지만 선택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인 혁명이라는, 적극적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