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은 과도기에 있다. 마침 세상은,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그를 향한 날 선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이 그의 넥스트를 위한 건강한 과도기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기대가 커서 실망하곤 한다. 백종원 씨가 ‘백술도가’라는 양조장을 차려, ‘백걸리’라는 막걸리를 출시했다. 방송인 백종원의 팬덤도 술렁이고, 한국 술을 빚고 팔고 마시는 한국 술 팬덤도 술렁인다. 일대 사건이다. 방송에서 백종원의 입지는 확고하다. 어느 방송 관계자는 그의 존재감을 ‘언터처블’ 정도로 묘사한다. 그의 기획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인터뷰 내용도 있다. 연예 대상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공로상이라도 안기는 정도다. 시작은 외식 사업가였는데, 이젠 방송인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외식 사업가가 요즘 핫한 한국 술 업계에 뛰어드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 외식 사업가가 방송인 백종원이라서 한국 술 업계가 술렁이는 것이다. 전문가 사이에서 백걸리에 대한 평가는 기대보다 시큰둥하다.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특출하지 않다. 상품으로서는 분명 괜찮다. 대충 돈만 벌자고 만든 상품은 결코 아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삼양주다. 양산하는 막걸리는 보통 한 번에 끝나는 단양주다. 삼양주는 재료를 두 번 더 투입해 알코올 도수와 밀도를 끌어올리는 양조 방식이다. 물을 더하지 않고 삼양주 짙은 강도 그대로 내놨다. 그래서 상품 카피에도 ‘농밀’, ‘원액’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처음 마셔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껍고, 알코올 도수도 묵직하게 느껴진다. 어지간한 소주 못지않은 14도다. ‘얼음을 타 먹는 생막걸리’로 포지셔닝을 잡았다. 요즘 트렌드인 설탕이나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 특유의 쌀 단맛과 발효로 얻은 옅은 산미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쓰거나 앙칼진 잡미 없이 둥글둥글하게 잘 뽑았는데, 얼음에 희석되면서 맛도 질감도 더 부드럽게 풀어진다.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아무도 못 만든다고 할 수준도 아니다. 이 정도 잘 만든 상품은 많고, 더 개성 있거나 더 잘 만든 막걸리도 분명 여럿 있다. 백걸리의 의의는 프리미엄 막걸리를 시장성 있는 대중 영역으로 옮겨놓는 데 있다. 백종원이라는 이름값이 붙어 있으니까. 편의점에서도 파는 대량 생산 막걸리만 마셔본 다수 대중에게는 ‘백종원 막걸리’가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상품성 떨어지는 감자 30톤이나 고구마 450톤을 해결하며 농가의 시름을 해소했던 것처럼, 이제 물 들어와서 노 젓기 시작한 한국 술 업계에 긍정적인 마중물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애매하다. 백종원은 방송 이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걸리를 꽤 진지하게 파고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막걸리를 출시했다고 할 때 좀 더 대단한 것을 기대했다. 부지불식간에 기대가 너무 컸다. 이건 마니아를 위한 ‘니치 막걸리’라기엔 약간 부족하다. 그렇다 해서 편의점에 진열될 만큼 대중적이지도 않다. 그 중간 애매한 위치에서 진한 삼양주를 단양주처럼 마시기 좋게 얼음 타 먹는 유사 경험을 셀링 포인트로 제안하는 상품이다. 비즈니스적으로 반박할 여지는 없다. 그저 기대가 크다 보니 또 잊었던 것이다. 그는 홍익인간 이념을 행하며 완성도를 추구하는 단군 할아버지가 아니라, 건전한 이윤을 통해 외식 기업을 유지하는 사업가다.
백종원이라는 존재를 처음 인식한 것은 <한식대첩>을 통해서였다. 2015년 무렵이다. 백종원은 요리 연구가 심영순, 요리사 최현석과 함께 팔도 요리 고수들의 음식을 심사했다. 외식 사업가로 출연했지만 요리 연구가나 요리사의 영역까지 무리 없이 오가는 전문성의 폭이 눈에 띄었다. ‘오호, 한신포차 사장이 저 사람이라고? 영동시장 그 쌈밥집도 저 사람이 하는 거라고? 장사 참 잘하는 사람이라 대중적인 관점이군! 간만에 틀린 소리 안 하는 캐릭터 하나 나왔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집밥 백선생>도 거의 동시였다. 이 두 프로그램에선 심사 대신 요리를 했다. ‘이야, 칼질 봐! 요리를 직접 해도 공력이 꽤 있네? 말하는 거 들어보니 음식 연구를 엄청 한 티가 나는데? 지식도 경험도 방대하네!’라는 데까지, 나는 백종원이라는 걸출한 방송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 참으로 반갑고 좋았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방송에서 음식에 대해 틀린 소리 하지 않는 출연자가 등장한 일은 세상을 위해 무척 이롭다. 당시 음식과 요리는 꽤 핫한 트렌드여서, 마침 딱 이 지면에서 백종원과 차승원이라는, 동시에 등장한 새로운 요리 아이콘을 비교하며 결론은 꽤나 추앙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백종원이 보여준 요리의 세계관은 초보 홈쿡을 위한 신선한 복지 정책처럼 느껴졌다. 백종원은 가정 요리를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옮겨다 놨다. 이전의 가정 요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게다가 재료도 많은 정석대로의 레시피 위주였다. 그게 레시피적으로 아무리 맞아도, 가정의 단위가 달라지고 가사 노동의 주체가 모호해진 시대에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제육볶음 한 번 해 먹는데 한나절 재워놨다가 구우라면 요즘 세상에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백종원의 레시피는 정석에 얽매이지 않았다. 빠르고 쉬웠다. 재료 계량도 종이컵이나 밥숟가락으로 통일해 어려울 것이 없었다. 많은 시청자가 만족하며 그의 레시피를 따라 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어쩌다 한 번 요리하는 거라면, 실제로 성공이 보장된 레시피였으니까.
백종원의 레시피는 첫 입이 충격적으로 맛있다. 그런데 금방 물리고 질린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어느 한쪽으로 과장된 맛이라서다. 백종원이 방송에서 보여준 요리는 가정식과 영업용 사이, 절묘한 틈새의 맛이었다. 그의 레시피 다수가 식당 영업용 조리법을 가정의 주방으로 변형해서 가져와 ‘황금’, ‘만능’ 라벨을 붙여 소개한 것이었다. 덕분에 더 많은 이가 가정 요리에 입문했다. 그 세계관이 통해 백종원이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갭에 있다. 먹어본 사람은 안다. 백종원의 깊이는 방송용으로만 소모하기엔 훨씬 깊다. 초기의 요리 차력사(<마이 리틀 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해박한 미식 전문가(<한식대첩>, <백종원의 3대 천왕>,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성공한 외식 사업가(<백종원의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 그리고 최근 <백종원 클라쓰>에서 보여준 요리 구루 등 어떤 캐릭터로 말해도 백종원의 말에는 배경 지식과 경험이 빽빽한 논리로 버티고 있다. 그 모습이 백종원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어려운 거 다 알면서 보는 사람에 맞춰 쉬운 것을 쉽게 잘 설명하는 전문가’라는 이미지가 방송에서의 백종원이다. 방송 안과 밖, 백종원 사이의 갭은 더 크다. ‘더본코리아’를 검색해보면 소비자들의 평범한 인상을 파악할 수 있다. ‘가성비 위주의 대중 식당’. 방송에서 보여주는 레시피 세계관과 일치한다. 비즈니스를 위해 최적의 좌표를 설정한 결과가 가성비 위주의 대중 식당일 터다. 분명 필요한 존재이고, 그렇기에 더본코리아는 꾸준히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개발해 내놓으며 잘 유지하고 있다.
‘백종원 게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떤 음식 이름을 검색해서 백종원 레시피가 나오지 않으면 승리, 나오면 패배하는 게임이다. 이기기 참 어려운 놀이다. 그 정도로 백종원의 레시피가 세상을 뒤덮는다. 이제 “-백종원”이라는 마이너스 검색어를 넣어야 그나마 괜찮은 것이 찾아진다. “-황금”, “-만능”까지 더 넣으면 좀 더 나은 검색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솔직히 세상엔 더 맛있는 레시피가 많다. 왜 이렇게 검색어를 오염시킬 것을 알면서도 일회성으로 휘발될 것을 그는 세상에 자꾸만 남기는 걸까?
의문을 품었던 것이, 기대를 했던 것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진지하게 맛의 본질을 추구했던 몇몇 프로그램과 시도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리 잘 풀리지는 않았다. 그 작은 실패들로부터 읽을 수 있듯, 백종원은 과도기에 있다. 마침 세상은,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백종원의 쉬운 입문 콘텐츠들이 수명을 다했다는 날 선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방송과 대중으로부터 새로운 모습을 재촉 받는다는 의미다. 건강한 과도기를 통과한 백종원의 넥스트 스텝을 다시 한번 기대해보게 되는 이유다.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F&B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