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의 상시적 만화 오디션은, 기존 출판만화에서 편집부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였던 좋은 신인 작품을 골라내는 감별작업을 대체하고 있다.
만화는 동인지를 중심으로 감상과 창작을 동시에 추구하는 독자 문화가 오래전부터 발달했고, 80~90년대까지 이런 활동들이 만화잡지의 독자투고란과 지역 만화행사에서 펼쳐진 전통이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흐릿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 개인 홈페이지에 일기체로 작품을 연재하다 히트를 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빠르게 활력을 얻은 건 게시판 커뮤니티였다. 디씨인사이드의 ‘카툰 연재 갤러리’, 루리웹의 ‘만화가 지망생 소모임’ 등등.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한 작품 발표의 장점은, 빠르고 활발한 반응과 추천이었다. 게시판 사용자층이 바라는 뭔가를 충족시키면 확실하게 칭송 받으며 유명세를 얻었다. 혹은 엄청난 욕설 댓글에 시달리며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 받거나. 점점 게시판은 창작자뿐만 아니라 만화로 사업을 하는 매체도 주목하는 공간이 되었다. 취향이 변화무쌍해서 가늠하기 어려운 오늘날, 독자에게 확실하게 인기를 끈, 검증된 작품과 작가를 골라낼 수 있었다. 실없는 개그의 메가쇼킹 만화가든, 인문교양의 김태권이든, 시사 패러디의 굽시니스트든, 기존 출판만화계의 좁고 고정된 히트 공식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기에, 여타 매체들의 선택 또한 받았다.
하지만 재능을 보여주다 보면 운 좋게 발탁된다는 희망을 심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식 서비스 안에서 도전과 데뷔와 성공의 길을 일직선으로 놓자 한층 막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그 역할을 해내며 신인들을 발탁해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디어다음의 ‘나도만화가’(현 ‘웹툰 리그’), 네이버의 ‘도전만화’다. 아마추어 게시판에서 인기를 얻으면 원고료를 지급받는 정식 연재물로 승격시켜주는 방식의 서비스.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형 포털사이트들이 온라인 만화 연재를 대거 확충하면서 병행하기 시작한 이 방식이 수많은 지망생을 끌어들인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공정한 느낌, 도달 가능해 보이는 성공, 그리고 성공의 크기다.
첫째, 공정한 느낌은, 공모전같이 뭔가 다른 요인들이 작용할 듯한 불안을 주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작품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실력을 정직하게 인정받아 성공을 얻는다는 명쾌함에서 온다. 관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심판은 대중 독자 전원이다. 성황을 이루면서 운영방식 역시 점차 개선되어, 도전만화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호응을 얻은 것을 다시 모아서 본격적인 연재 형식으로 경쟁시키는 베스트 도전 게시판도 탄생했다. 포털사이트의 상시적 만화 오디션은, 기존 출판만화에서 편집부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였던 좋은 신인 작품을 골라내는 감별작업을 대체하고 있다. 그것도 일반 대중 독자에게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무리 우수해도 편집자의 취향에서 벗어나면 탈락하던 옛날처럼, 대중의 취향에서 벗어난 우수한 작품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명백한 한계다. 또한 최종 발탁은 담당 편집자들이 결정하고,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사실상 무임노동을 하는 격이라는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후보작 중에서 상당히 괜찮은 작품을 압축해내는 나름대로 정당한 규칙이 보이기에, 지망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선순환이 있다.
둘째, 도달 가능해 보이는 성공은, 그간 쌓여온 만화 분야에서의 두터운 중간지대의 전통, 그리고 특히 온라인에서 이미 수십 년간 진행된 스타 신인, 새로운 유행 발굴의 역사 덕분이다. 특히 그림의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독특한 이야기나 기발한 연출로 성공한 사례들이, 제2의 조석을 꿈꾸는 작가들을 끌어들인다. 하나의 서비스 안에서 진행하는 것인 만큼,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인기를 얻으면 네이버웹툰으로 데뷔하는 흐름도 보인다.
셋째, 성공의 크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양대 포털이 한국 인터넷 업계에서 지니는 과점적 지위에서 나온다. 정식으로 연재 지면을 얻으면, 하루 수백만 독자가 작품을 읽을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원고료를 얼마만큼 받는지에 대한 공개 정보가 적음에도, 조회수가 주는 희망이 상당하다.
오디션이 대중문화 전반을 휩쓴 지 오래다. 대형 기획사 오디션 접수창구는 여전히 붐빈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이 선순환을 담보하진 않는다. 지난해 원조 격인 슈퍼스타 K5에서 드러났듯이, 공정하고 흥미로운 경쟁의 장을 지속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대중문화 분야에서 지망생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도 세 개 항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에디터
- 글/ 김낙호(만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