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박 쇳소리 듣고 놀란 가슴, 한석규 뒷머리 보고 더 놀란다. TV 속엔 놀랄 일이 더 있었다.
버나드 박의 쇳소리 노래가 맛있다. 가창력 같은 말로는 어림없는, 그저 노래라는 말로만 붙들고 싶은 노래. ‘Before the Rain’은 조규찬의 예민한 색깔이 세밀하게도 담겼지만, 버나드 박은 마구 부른다. 엇나가든, 젖어 들든, 쇳소리가 나든, 심지어 <인기가요> 무대는 거의 눈을 뜨지 않고서 노래를 끝냈다. 그놈의 ‘콘셉트’만 판을 치는 마당에 가수가 제멋에 겨워 노래하는 모습이 그렇게 새롭다. ‘너’가 아니라 ‘그대’라 칭하는 가사도 오랜만. 아름답다. 지겨울 리 없다.
한석규의 뒷머리 조선 21대 왕 영조는 뒷머리를 층지게 잘랐다. 아들인 사도세자도 마찬가지, 마침내 한양 남자들이 그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농담이다.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사극엔 버젓이 나온다. <비밀의 문>에서 영조 역을 맡은 한석규를 클로즈업할 때마다 짧은 머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건 고증과 해석 사이의 유연함도 뭣도 아니다. 옥에 티 축에도 못 든다. 해당되는 건 오직 한국 드라마의 초라한 현실뿐. <대장금> 때도, <여인천하>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른 척해 달라는 걸까? 그 머리로 이리 오너라, 주상 전하, 네 이놈,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연출, 배우, 분장 몽땅 우스울 뿐인데, 혹시 그건 이 나라 최고의 감각이라는, 예능감인가?
전현무는 정상인가? 전현무는 지금 종횡무진 예능판을 휩쓰는 첫 번째 MC다. 원하는 게 무엇이든 얼마든지 맞출 수 있다는 듯이 장르며 성격이며 불문하고 힘 좋게 달려든다. 하지만 그는 일가를 이룬 최고라기보다, 다만 만능에 가까워 보인다. 누구보다 잘하지만, 전현무만 할 수 있는 것에는 닿지 못했다. 그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어쨌거나 지금은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전현무 시대인데.
김순옥과 임성한의 배턴 터치 임성한이 쓴 <인어 아가씨>에서 은아리영을 연기하고, 김순옥이 쓴 <아내의 유혹>에서는 구은재/ 민소희를 모두 연기한 ‘여제’ 장서희가 <뻐꾸기 둥지>로 뜻밖의 고군분투를 하는 동안, 김순옥의 <왔다! 장보리>와 임성한의 <압구정 백야>가 물 흐르듯 배턴터치에 성공했다. 오직 그 이름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건설한 두 작가가 스쳐 지나는 지금, 새삼 <노란 복수초>를 쓴 여정미의 침묵에 호기심이 인다.
김옥빈의 주먹에 건배 35회를 전후로 <유나의 거리>는 지쳐 보였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삶이 그러할 터였다. 거칠 것 없던 유나(김옥빈)는 흔들렸고, 슈퍼맨 같던 창만(이희준)은 “질렸다”고 토로했다. 그러던 41회, 유나가 주먹을 뻗었다. 자신을 둘러싼 문제만으로도 숨 막힐 지경인 그녀가 기꺼이 타인을 위해 일자로 쭉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그야말로 ‘생의 고단함’이 농축된 한 방이었다. 진했다. 그리 슬펐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일어나 걸어야만 하는 세상, 그리고 사람들. 2014년 최고의 드라마 <유나의 거리>가 11월에 끝난다.
- 에디터
- 장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