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고독해서, 고뇌해서 왕

2011.11.25정우영

‘왕’을 연기하는 네 명의 배우와 배역을 겹쳐놓고, 섬기기에 앞서 흠을 살폈다.

한석규 세종대왕

아버지에게 짓눌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젊은 시절 자신과 한 약속에 괴로워하는 왕. <뿌리 깊은 나무>는 창의적이고 대담하게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을 재해석했다. 공적으로는 ‘워커홀릭’에 가까운 완벽주의자지만, 사적으로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욕을 내뱉는 세종의 모습은 이 작품을 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왕으로서 세종대왕이 보여준 정책적인 측면을 하나하나 짚어내면서도, 그를 완벽한 품성의 인간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또한 세종의 업적을 단지 한글 창제나 백성 위주의 정책으로부터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정책을 실현시키기까지의 정치적 역량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경우에 따라 신하에게 압박을 주기도 하고, 때론 ‘꼼수’에 가까운 꾀도 부리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다면적이되 어떤 모습이든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중심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야말로 <뿌리 깊은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석규는 세종대왕의 다양한 모습을 캐릭터의 일관성을 담보한 채로 보여준다. 제작진도 배우도,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강명석 (<10아시아> 편집장)

세종대왕이 아니고 이도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대왕은 우리가 알던 그 성군이 아니다. 그는 왕으로서 만백성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다. 하나 하늘의 뜻이기에 따른다거나 아바마마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숙명 따위를 붙잡은 영웅서사 속 임금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개척하기로 결심했지만 자신의 길이 험난할 때면 아버지가 닦아 놓은 쉬운 길로 들어서고픈 유혹에 고뇌하고 갈등하는 한 사람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이도는 그래서 익숙지 않은 왕이다. 고기를 무진장 좋아하고, 우라질, 젠장, 지랄하네. 같은 저잣거리 말을 심심찮게 써서 주변을 당황시킨다. 똥지게를 직접 메는 정도의 전시행정을 해야 관료주의에 매몰된 신하들이 그나마 움직인다고, 퉤퉤거린다. 세종대왕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한석규의 연기 덕분이다. 한석규의 부드러운 음성과 인간미가 스며든 푸근한 눈웃음은 광화문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세종대왕을 유머러스하면서 따뜻한 이도로 탈바꿈시켰다. 각자의 욕망을 가진 인간과 집단이 교차하는 중심에,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임금 이도가 있다. 한석규의 세종은 응원하고 싶은 왕이다. 그라면 믿을 수 있겠다. 우린 아직 이런 왕을 가져보지 못했다. -김교석 (TV 평론가)

이태곤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을 왕이 아니라 영화 에서 “스파르타!”라도 외칠 것 같은 전사로 만들었다. 이태곤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그르렁거리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모든 장면에서 거의 똑같은 톤을 유지하면서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는 그의 연기는 또 다른 의미로 기적의 연기다.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광개토대왕이 “내 땅, 내 백성” 같은 대사만 뱉으면 비장한 음악을 깔고, 이태곤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는 제작진에 있다. 그들은 광개토대왕을 어떤 정치적 판단도 없이 국가와 백성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물처럼 그렸고, 당연히 어떤 책략도 거부한 채 정면 돌파를 하는 광개토대왕의 캐릭터는 지극히 단순해 보인다. 왕의 깊은 고뇌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부하들을 사선으로 끌고 가는 왕이 그들에 대한 고민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 <태조왕건>에서 광기와 카리스마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던 궁예나 통치와 전쟁에는 명분과 책략이 함께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대조영>의 대조영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 감각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과거 대하사극에서 가장 현실적인 정치관을 보여주던 KBS 대하사극이 무슨 상황이든 큰 칼 들고 달려가는, ‘존나세’ 이야기로 바뀐 게 안타까울 뿐이다. -강명석 (<10아시아> 편집장)

<광개토대왕>의 담덕은 날 때부터 모든 것을 타고난,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떠돌며 고생 고생하다가타고난 매력과 능력을 발휘해 극복하는 어린 시절. 엄청난 무공과 리더십에다 운도 더해져 주위에는 절대 배신하지 않을 훌륭한 부하들이 있다. 백성을 이롭게 하고 고구려의 영토를 드넓힐 자신의 숙명과 대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절대악을 처단하고 왕위에 오른다. 백성들은 평온해지고 조정엔 평화가 찾아온다. 그에게 욕망이나 내적 갈등은 없다. 하늘의 뜻과 정의와 대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극 속 영웅 서사의 뿌리는 김용의 무협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에 있다. 우리의 영웅 서사에서 조연 캐릭터는 거의 다 <삼국지>의 촉나라 유비군 부하들인 관우, 장비, 제갈공명에서 따왔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우리의 영웅들은 매력, 도덕, 명분은 물론이요, 무력과 지력 또한 극중 제일인 ‘토털 패키지’다. 심성 또한 곧고 욕심이 없지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덕에 악당들의 덫에 자주 걸리는 게 흠이라면 흠. 이태곤의 사극 연기 ‘흑역사’를 굳이 언급 안 한대도, 그의 대사 절반, 혹은 대사 시작의 전부가 ‘뭣이라!’ 혹은 ‘뭐라!’하고 절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김교석 (TV 평론가)

조재현 의자왕

의자왕에 대해 정교하게 접근한다. 단지 미친 왕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원래 뛰어났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하는 비운의 왕으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계백>에서 왕은 끊임없이 귀족이 주도하는 정치 현실과 부딪쳐야 하는 인물이고, 의자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때로는 비열한 책략도 사용한다. 하지만 의자왕은 사택비나 은고처럼 교활하지 못하고, 계백처럼 모두를 품을 리더십도 없다. 야망과 전망은 있으나 현실을 뚫을 능력은 없고,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를 보면 질투에 사로잡힌다. 의자왕이 서서히 불안과 광기에 휘말리는 과정은 <계백>의 가장 큰 서스펜스 중 하나고, 그 과정을 점진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은 이 작품의 미덕이다. 특히 조재현은 신하들 앞에서 화를 내거나,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울기 직전의 아이 같은 표정을 보여주곤 하는데, 야심만큼 능력과 환경이 따르지 않는 왕의 불안을 표현하기에 적격이다. 다만 의자왕을 떠나 <계백> 자체는 그리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다. 계백을 의연한 영웅으로 그리는 대신 의자왕과 같은 현실성을 좀 더 부여했다면 멋진 앙상블을 이루지 않았을까. -강명석 (<10아시아> 편집장)

간단히 말하면 , <계백>은 해동증자 의자왕이 소인배가 되는 이야기다. 의자왕은 왜 백제가 망하게 됐는지를 넘어 왕이 얼마나 지질해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어린 시절 의자는 사택비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아버지 무왕의 눈치나 보며 살았다. 그렇게 엎드려 사는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며 세를 키웠고, 계백과 같은 충신들을 규합해 왕위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권선징악의 영웅 서사다. 문제는 영웅이 계백이고 의자는 그 영웅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란 점이다. 그것도 자신의 후비인 은고가 계백의 정인이었다는 치정 때문에. 네가 은고를 어찌하지 그랬냐고 따지고, 계백은 벌써 잊었다고 하길 몇 번째다. 군신 간의 대치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의 질투와 피해의식이다. 계백은 밖으론 고구려, 신라와 싸워야 하고 안으로는 질투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왕을 다독여야 하니 영웅 신세가좀 생활적이고 갑갑하다. 폭군이 된 납득할 만한 이유와 함께 폭정이 잔인해져야, 영웅 할거의 밑거름이 된다. 하나 삼각관계 외에는 왕위에 오른 의자왕이 왜 이리 좀스럽게 변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목을 파묻고 45도 각도로 노려보며 짜증만 부리는 망국의 군주 역할에 딱히 연기랄 것도 없다. -김교석 (TV 평론가)

김영철 수양대군

<달콤한 인생> 이후로, 한국에서 ‘고뇌하는 보스’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는 김영철일 것이다. 그저 굳은 얼굴로 얼굴의 굴곡이 그려내는 명암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백발의 배우는 결단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 왕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 또는 세조의 고뇌를 그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도 캐릭터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제거하는데 김종서의 아들을 사랑한 자신의 딸을 이용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 오직 잠시 어둠 속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수양대군의 얼굴만이 그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 거라고 믿게 만들 뿐이다. 대본을 메우는 연기란 이런 것이고, 제작진은 김영철이 벌어준 시간을 젊은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보다 많이 할애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수양대군의 행동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는드라마에서,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최소로 줄이면서도 이야기를 끌고 가려면, 김영철 같은 배우는 필수다. 비판적으로 보면 <달콤한 인생>과 <대왕세종>을 거치며 정형화된 연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중후한 이미지 속에 악함과 연민을 동시에 담고 있는 왕은 김영철이 할 수 밖에 없다. -강명석 (<10아시아> 편집장)

배우 김영철의 변곡점은 <태조왕건>의 궁예다. 민머리에 황금 안대, ‘옴마니 밧메훔’을 외치며 사람을 마음대로 처단하는 광기어린 궁예는 그동안 TV에서 보지 못한 군주이자, 압도적인 카리스마였다. 원초적 공포를 일으키는 눈빛과 목소리, 그가 진짜 관심법으로 말을 건 것도 아닌데 브라운관 밖에 있던 시청자들은 그의 표정 하나하나에 마음을 졸이면서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김영철은 <공주의 남자>의 수양대군으로 분해 또다시 눈빛과 얼굴 주름으로 공간을 압도한다. 첫째 딸 세령과 정적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의 사랑을 가로막는 그 육중한 공포 덕분에 이 멜로물은 몇 배는 더 애절해졌다. 물론, 그전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수양대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영철의 수양은 왕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수양은 자신의 욕망을 쫓으며 뭐든 합리화한다. 이 모습이 사람들의 내면에 봉인된 욕망을 두드리면서 공포를 유발한다. 그는 칼이 아닌 철퇴로 정적을 살해할 만큼잔인하고, 조카를 죽일 만큼 권력욕의 화신이지만 자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눈물 많은 자애로운 보통 아비의 모습으로 선다. 그렇기에 김영철의 표정은 굳어 있지 않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김교석 (TV 평론가)

    에디터
    정우영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이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