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밤이 좋아.
BMW i4 M50
밤이 깊어질수록 먹먹하게 내려앉아 있던 커튼이 걷히고 어둠의 먼 곳에서부터 다시 푸른빛이 소생한다. 달은 기울었지만 아침은 멀리 있고, 별들은 흩어졌지만 동해의 빛들은 기척이 없다. 텅 비어버린 시간. 전진하고 있지만 그래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주를 가로지른다면 꼭 이렇겠지, 강원도로 향하는 2시간 동안 별들은 한 뼘만큼 기울었다.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는 넉넉히 남아 있음에도 휴게소를 찾은 건 어쩌면, 주인 없이 비어 있는 투명한 하늘을 좀 더 바라보고 싶어서. 서서히 번지는 푸른 기운이 차 위로 스민다. 어둠과 헤어지는 푸른빛이다. 동쪽에서 밀어 올리는 붉은 기운이 닿기 전에 서둘러 차에 오른다.
최고 출력ㅣ 5백44마력 주행 거리ㅣ3백78킬로미터 최고 속도ㅣ시속 2백25킬로미터 구동 방식ㅣ 풀타임 사륜구동
GENESIS GV60
잠든 휴게소를 깨우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소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배터리였다. 우웅 우웅,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며 ‘배터리가 잘 충전되고 있음’을 슬쩍 티 내는 발전기가 괜히 귀엽다. 충전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충전이 완료되는 15분 정도는 차도, 운전자도 숨을 고를 수 있다. 고요 속에 떠 있는 우주 정거장처럼, 그리고 거기에 도킹되어 있는 날렵한 우주선처럼, 한밤의 휴게소엔 이들뿐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휴게소는 어둡고 축축하다. 거기에 찬바람이 드나들면서 젖은 흙냄새가 난다. 들숨을 몇 번 마시면 찬물에 세수를 한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고, 그 기운이 나쁘지 않다. 충전은 일찍이 됐지만 급할 건 없다.
최고 출력ㅣ4백90마력 주행 거리ㅣ3백68킬로미터 최고 속도ㅣ시속 2백35킬로미터 구동 방식ㅣ풀타임 사륜구동
AUDI S8 L
한밤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유 중에는 아무도 없는 주유소를 찾는 재미도 들어 있다. 주유기 레버를 고정한 채 주유구에 툭 걸어두고, 게이지가 차오를 동안 천천히 차를 빙 둘러본다. 말끔하고 세련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검은 세단이지만, 무심한 오너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만 머물렀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듯이 가까이서, 또 느리게 차를 살피며 그간의 미안함을 전한다. 오너는 주유가 끝나면 우아하던 세단의 모습은 잠시 벗겨내고, S8 L 엔진이 가진 야성적인 힘을 꺼내볼 참이다.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짜릿한 일탈처럼, 위험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늘 끌리니까. 그래서 시원하게 내달려볼 수 있는 건 오늘 밤뿐이다.
최고 출력ㅣ5백71마력 제로백ㅣ3.9초 최고 속도ㅣ시속 2백50킬로미터 구동 방식ㅣ8단 팁트로닉 자동변속기
MASERATI GHIBLI MODENA S Q4
파란색 기블리가 새벽 사이를 흐르듯 지난다. 어둠이 스민 새벽은 푸른빛을 내는데, 기블리가 지날 때면 새벽은 그 빛을 잃는다. 컴컴한 우주 속에 저 혼자 푸르게 떠 있는 지구처럼, 기블리의 존재감도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피어 있다. 기블리는 레이싱카의 힘과 스포츠카의 예리함을 모두 가졌지만,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엔진을 들썩거리는 부류와는 다르니까. 고속도로를 벗어난 기블리는 점잖게 걷는 법도 잘 알고 있다는 듯 네 바퀴를 천천히 움직인다. 말 붙일 수 없는 적막 속에도 틈은 있다고 했나. 살금살금 적막을 걷어내며 통과하는 기블리를 보니,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최고 출력ㅣ4백30마력 제로백ㅣ4.7초 최고 속도ㅣ시속 2백86킬로미터 구동 방식ㅣ풀타임 사륜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