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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생생하게 들려주는 마세라티 야간 드라이브 후기

2022.06.22신기호

혼자인 밤이 좋아.

BMW i4 M50
밤이 깊어질수록 먹먹하게 내려앉아 있던 커튼이 걷히고 어둠의 먼 곳에서부터 다시 푸른빛이 소생한다. 달은 기울었지만 아침은 멀리 있고, 별들은 흩어졌지만 동해의 빛들은 기척이 없다. 텅 비어버린 시간. 전진하고 있지만 그래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주를 가로지른다면 꼭 이렇겠지, 강원도로 향하는 2시간 동안 별들은 한 뼘만큼 기울었다.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는 넉넉히 남아 있음에도 휴게소를 찾은 건 어쩌면, 주인 없이 비어 있는 투명한 하늘을 좀 더 바라보고 싶어서. 서서히 번지는 푸른 기운이 차 위로 스민다. 어둠과 헤어지는 푸른빛이다. 동쪽에서 밀어 올리는 붉은 기운이 닿기 전에 서둘러 차에 오른다.
최고 출력ㅣ 5백44마력 주행 거리ㅣ3백78킬로미터 최고 속도ㅣ시속 2백25킬로미터 구동 방식ㅣ 풀타임 사륜구동

 

GENESIS GV60
잠든 휴게소를 깨우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소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배터리였다. 우웅 우웅,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며 ‘배터리가 잘 충전되고 있음’을 슬쩍 티 내는 발전기가 괜히 귀엽다. 충전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충전이 완료되는 15분 정도는 차도, 운전자도 숨을 고를 수 있다. 고요 속에 떠 있는 우주 정거장처럼, 그리고 거기에 도킹되어 있는 날렵한 우주선처럼, 한밤의 휴게소엔 이들뿐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휴게소는 어둡고 축축하다. 거기에 찬바람이 드나들면서 젖은 흙냄새가 난다. 들숨을 몇 번 마시면 찬물에 세수를 한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고, 그 기운이 나쁘지 않다. 충전은 일찍이 됐지만 급할 건 없다.
최고 출력ㅣ4백90마력 주행 거리ㅣ3백68킬로미터 최고 속도ㅣ시속 2백35킬로미터 구동 방식ㅣ풀타임 사륜구동

 

AUDI S8 L
한밤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유 중에는 아무도 없는 주유소를 찾는 재미도 들어 있다. 주유기 레버를 고정한 채 주유구에 툭 걸어두고, 게이지가 차오를 동안 천천히 차를 빙 둘러본다. 말끔하고 세련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검은 세단이지만, 무심한 오너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만 머물렀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듯이 가까이서, 또 느리게 차를 살피며 그간의 미안함을 전한다. 오너는 주유가 끝나면 우아하던 세단의 모습은 잠시 벗겨내고, S8 L 엔진이 가진 야성적인 힘을 꺼내볼 참이다.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짜릿한 일탈처럼, 위험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늘 끌리니까. 그래서 시원하게 내달려볼 수 있는 건 오늘 밤뿐이다.
최고 출력ㅣ5백71마력 제로백ㅣ3.9초 최고 속도ㅣ시속 2백50킬로미터 구동 방식ㅣ8단 팁트로닉 자동변속기

 

MASERATI GHIBLI MODENA S Q4
파란색 기블리가 새벽 사이를 흐르듯 지난다. 어둠이 스민 새벽은 푸른빛을 내는데, 기블리가 지날 때면 새벽은 그 빛을 잃는다. 컴컴한 우주 속에 저 혼자 푸르게 떠 있는 지구처럼, 기블리의 존재감도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피어 있다. 기블리는 레이싱카의 힘과 스포츠카의 예리함을 모두 가졌지만,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엔진을 들썩거리는 부류와는 다르니까. 고속도로를 벗어난 기블리는 점잖게 걷는 법도 잘 알고 있다는 듯 네 바퀴를 천천히 움직인다. 말 붙일 수 없는 적막 속에도 틈은 있다고 했나. 살금살금 적막을 걷어내며 통과하는 기블리를 보니,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최고 출력ㅣ4백30마력 제로백ㅣ4.7초 최고 속도ㅣ시속 2백86킬로미터 구동 방식ㅣ풀타임 사륜구동

피처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