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여행할까 고심일 땐 영화를 봅시다. 영화 속 여행지 6곳.
튀르키예 페티예 <007 스카이 폴>
그간 어디에 있었느냐는 M의 질문에 제임스 본드가 ‘죽음을 즐기고 있었다 Enjoying Death’라고 답한 곳, 튀르키예의 휴양지 페티예 Fethiye다. 녹색과 푸른색으로 이뤄진 천혜의 페티예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 걱정도 잡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를 빗댄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발 2,000미터의 비바다그 산 Babadağ은 네팔 포카라와 스위스 인터라켄과 함께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성지로 꼽히고, 350미터 높이의 두 절벽 사이에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나비 계곡 Butterfly Valley은 이름 그대로 수천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자연보호구역이다. 특히 7월부터 9월까지가 그 장관의 절정이다.
이탈리아 판텔레리아 <비거 스플래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게 미안하지만 <비거 스플래쉬>가 어떤 전개였는지는 썩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배경지의 작열하는 열감과 그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푸른 수영장과 해변들의 잔상은 선명하다. 배경지는 시칠리아와 튀니지 사이에 자리한 이탈리아의 작은 섬 판텔레리아다. 이곳을 촬영 장소로 택한 연유에 대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판텔레리아 섬은 이질적이고 위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캐릭터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땡볕 아래 화산 섬인 판텔레리아의 자연스럽고 거친 지형을 걷다 보면 여행 동반자와 다툼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그 다툼을 단번에 식혀줄 천혜의 해변들이 섬을 둘러싸고 어디든 있으니 걱정 없다. 판텔레리아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화 속 숙소는 실제 영업 중인 현지 컨트리하우스 ‘Tenuta Borgia’다.
‘찰리의 집’ <탑건>
현재의 <탑건: 매브릭>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매브릭(톰 크루즈)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 본 교관 찰리 덕분이 아닐까. <탑건>에서 매브릭을 훈련시킨 선생이자 후에 사랑하는 연인이 된 찰리, ‘나는 훈련생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던 철칙을 어기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게 된 찰리의 집이 샌디에이고 미션 퍼시픽 호텔을 통해 재탄생했다. <탑건> 촬영 이전에도 1887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주택으로 의미 깊어 집 주인의 이름을 따 그레이브 하우스 The Graves House로 불리던 이곳을 호텔이 원형 그대로 옮겨 디저트 카페로 활용하게 된 것. <탑건>이 개봉했던 1980년대풍으로 꾸민 내부에서는 제철 과일 파이와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
몰타 고조 섬 <바이 더 씨>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지중해 몰타의 고조 섬에서 촬영된 영화 <바이 더 씨>가 그 중 하나다.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 및 주연을 맡은 영화로 ‘결혼 14년차,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부부가 뜨거웠던 사랑의 순간을 되찾기 위해 낯선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무드 로맨스’다. 상대 배우이자 남편 역은 실제로 당시 남편이었던 브래드 피트, 배경지 역시 그들의 실제 신혼여행지였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고조 섬이 형형히 빛난다. 바스러질 듯하나 단단한 위용의 절벽들, 파도에 굴러다니는 자갈, 뜨겁고도 부드러운 태양. <바이 더 씨> 속 고조 섬은 아름답고도 쓸쓸해보인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타일, 장소, 소품, 캐릭터, 음악, 그 어떤 부분의 미장센을 이야기해도 빼놓을 수 없게 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익히 알려진대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일대에서 촬영됐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나고 자란 지역으로,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크레마에 있는 자신의 집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종종 초대해 직접 요리를 해주었다고 한다. 크레마, 베르가모, 모스카치노 등등 영화이 배경이 된 이탈리아 북부 곳곳의 한적하고도 풍요로운 여름 풍경에 여름만 되면 이탈리아행 항공권을 끊고 싶어지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는 듯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화 스크롤 마지막쯤에 삽입해 둔 ‘Filmed On Location In’ – 영화 촬영지 리스트가 무척 반갑다. 스크롤을 끝까지 볼 것.
아이슬란드 마파보트 <인터스텔라>
파고 없는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던 물의 행성이 준 시각적 충격이 생생하다. 망망대해, 그야말로 오직 물로만 채워져있는 듯한 행성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던 광경이라서. 그런데 그 행성이 실제로 이 지구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바로 아이슬란드의 마파보트 Mafabot 삼각주다. 물이 검은 화산암 표면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곳으로, 영화 속 장면 그대로 성인 무릎 높이의 수면이 끝없이 펼쳐진 장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 촬영 당시 방문했던 아이슬란드의 풍광이 불현듯 떠올라 찾게 됐다 한다. 마파보트에서 한 시간 거리에는 얼음 행성으로 나온 스비나펠스요쿨 빙하도 있다. 아이슬란드 관광청의 광고 문구가 과장이 아니다. “스비나펠스요쿨 빙하 하이킹 투어를 통해 외계 행성을 걷는 듯한 기분을 직접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