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현장을 공개하는 건 서로를 위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영화는 만들 때도 영화 같다. 그 영화도 보고 싶다.
영화 담당 기자에게 촬영 현장은 취재할 거리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황금 광산이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나 스태프에게 하는 감독의 주문만큼 그의 연출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도 없다. 배우의 사소한 말과 행동은 그의 연기 철학이나 기질을 가늠하는 작은 단서들이다. 그뿐이랴. 운이 좋으면 촬영이 끝난 뒤 감독, 배우와 함께 술을 마시며 촬영 중인 영화에 대한 속사정도 들을 수 있다. 촬영 현장은 영화 담당 기자에게 중요한 취재 장소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촬영 현장 취재가 흔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촬영 현장을 공개하는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더 이상 촬영 현장에 기자를 부르지 않는 이유는 투자배급사, 제작사, 홍보대행사마다 제각기 다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는 기자들에게 촬영 현장을 공개하는 게 “일단 귀찮다”는 반응이다.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제작팀의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무슨 장면을 공개할지 찾는 게 일이다. 이왕이면 화려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단, 스포일러가 될 만한 장면은 피해야 한다. 일정과 장면 선택이 완료되면 배우 매니지먼트사에 기자가 현장에 온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기자는 현장에 하루 가서 취재하면 되지만 현장을 공개 준비에 많은 손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제작사는 “보다 수월하고 신속한 촬영 진행을 위해” 기자가 현장을 찾는 걸 꺼린다. 과거에 비해 촬영 스케줄이 훨씬 빡빡해졌다. 그러다 보니 감독과 제작자는 투자배급사와 약속한 일정 안에 촬영을 완료하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자가 현장에 가면 이래저래 편의를 챙겨야 하고, 촬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제작사의 입장이다. 얼마 전 크랭크업한 <소수의견>(배급 CJ엔터테인먼트)은 “감독이 신인이라 기자가 현장을 찾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며 현장 공개를 극구 사양하다 뒤늦게 공개하기도 했다. 원신연 감독과 공유의 신작 <용의자>(배급 쇼박스)는 서해안 선박 액션 신을 공개하려다 “위험한 현장 상황 때문에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 결국 현장 공개를 하지 않았다. 영화의 소재를 이유로 촬영 현장을 열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소원>(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아동 성폭행이 소재이기 때문에 현장 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촬영 전부터 강조했다. 이준익 감독은 “소재가 심각하기 때문에 현장을 공개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감정 신이 많은 까닭에 외부인(기자)이 현장에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쉽다”고 <소원>의 촬영 현장을 공개하지 못하는 사정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홍보대행사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현장 공개를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얼마 전 출범한 영화마케팅사협회 회장이자 홍보대행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는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갈수록 현장 공개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 한 군데를 열면 우르르 오겠다고 하는데, 많은 수의 기자들을 일일이 통제하기 힘들고, 기사 내보내는 문제로도 매체 측에서 수많은 대응을 요구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열지 않기로 한 거다”라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의 한 관계자 역시 “제작 전부터 개봉일이 정해졌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촬영이 끝난 뒤 개봉일이 정해진다. 그러다 보니 촬영과 개봉 사이 기간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인데 이 사이에 현장 기사가 나가도 마케팅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며, 현장 공개 기사의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 홍보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개봉일 전에 여러 이유로 영화 제목과 개봉일이 바뀌기도 하는데, 그럴 때 이미 노출된 촬영 현장 기사와 내용이 달라 혼란을 줄 바에야 차라리 공개하지 않는 게 마케팅하는 데 마음이 편하다”고 전했다.
여러 입장에서 갈수록 촬영 현장 공개를 꺼리는 것이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체의 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환경이 바뀌면서 일일이 대응하려면 과거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 환경이 바뀌어 촬영 진행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수시로 바뀌는 개봉일과 제목 때문에 미리 공개해서 생기는 혼란을 막으려는 의도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개봉한 뒤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감독, 배우 인터뷰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썩 좋은 마케팅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민얼굴을 보여주는 것만큼 역동적이고, 생생하고, 매력적인 마케팅이 없다. 그리고 생생한 촬영 현장을 기록하는 것만큼 역동적인 기사가 없다. 촬영 현장을 공개하는 건 서로를 위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영화는 만들 때도 영화 같다. 그 영화도 보고 싶다.
- 아트 디자이너
- ILLUSTRATION / LEE EUN HO
- 기타
- 글 / 김성훈(<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