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마다 어울리는 곡조와 리듬이 있다. 올해 음원을 발표한 보컬리스트 8인에게 어울리는 작곡가와 어색한 작곡가를 각각 한명씩 골랐다.
아이유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이민수 ‘좋은날’과 ‘잔소리’는 아이유의 대표곡으로 남을 것이다. ‘댄서블’한 비트와 극적인 구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이민수의 장점이 돋보인다.
한상원 응집력이 강한 아이유의 보컬은 잘게 쪼갠 비트나 랩과는 융화되지 못한다. 한상원의 ‘Boo’가 데뷔곡이었던 것은 당시 걸 그룹 붐을 의식했다고밖엔 이해할 수 없다.
현현(대중음악평론가)
이민수 의외로 허스키하고 직선에 가까운 아이유의 목소리가 이민수 특유의 곧게 뻗는 멜로디와 잘 어울린다. 이민수의 스펙트럼의 범위가 아이유의 콘셉트나 음색과도 꽤 겹친다.
윤종신 ‘첫 이별 그날 밤’같은 선명도 떨어지는 멜로디라인과 아이유는 상극이다. 윤종신의 곡과 잘 어울리는 가수가 윤종신 자신을 제외하고 드물긴 하다.
유지성(에디터)
이민수 ‘좋은날’은 상반기에 히트한 노래 중 가장 ‘동시대’와 관련 없는 노래였다. 그러나 밝은 악기 구성과 꾸밈없는 멜로디로 아이유의 상큼한 매력을 살리는 데는 성공했다.
윤상 윤하는 유희열의 노래를 자기 경력 최고의 곡으로 소화했지만, 아이유에게 윤상은 안 맞는 옷이었다. 원숙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평범한 성인가수처럼 들린다.
김범수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박선주 감정이 풍부한 김범수는 ‘남과 여’나 ‘달라’ 같은 듀엣곡에서 특히 돋보인다. 윤일상과도 합이 잘 맞는 편이지만 박선주의 곡에서 특히 안정적이다.
이경섭 이경섭의 드라마 음악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기엔 김범수의 보컬이 힘에 부친다. ‘나 가거든’처럼 비장한 곡은 그의 내지르는 창법으론 소화하기 힘들다.
현현(대중음악평론가)
신인수 ‘가슴에 지는 태양’은 김범수의 목소리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만든 노래다. 신인수와 김범수가 만났을 땐 MBC 로고송마저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이현도 ‘바보같은 내게’에서 이현도의 장점은 김범수의 단점이 되어 기이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이현도의 장르성 뚜렷한 곡은 김범수에게 잘 안 맞는다.
유지성(에디터)
이현도 김범수의 보컬은 본래 단단하지만, 발라드의 감정 처리를 위해 안주한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비트 있는 알앤비나 힙합에서 끝까지 내달린다. ‘바보같은 내게’는 그 절정이었다.
윤일상 김범수는 하광훈의 ‘약속’에 이어 윤일상의 ‘하루’와 ‘보고싶다’를 연달아 불렀다. 인기는 얻었지만,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말았다.
백지영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방시혁 백지영의 보컬은 댄스와 발라드 양쪽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특히 방시혁과의 작업에서 돋보인다. 낭만적이고 또한 비장한 ‘총 맞은 것처럼’은 백지영을 위한 곡이었다.
신인수 초기에는 주로 트로트 댄스곡을 많이 불렀는데, 특히 신인수의 곡에서 그녀는 재능을 낭비한다는 인상을 줬다. ‘Emotion’ 같은 곡 뿐 아니라 ‘버리기 위해서’도.
현현(대중음악평론가)
방시혁 백지영처럼 음색을 주무기로 하는 보컬은 작곡가를 잘 골라야 한다. 통속성의 마법사와 같은 방시혁은 백지영 같은 종류의 보컬리스트를 구원할 수 있는 작곡가란 걸 이미 보여줬다.
전해성 음색을 제외하면 손꼽을 만한 특징이 적기 때문에 특별히 안 맞는 작곡자를 찾는 것이 큰 의미는 없지만, 전해성의 ‘아이캔 ‘T 드링크’는 어색했다.
유지성(에디터)
박근태 가장 중요한 시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썼다. 위아래로 많이 움직이기보다 음과 음 사이에 머무르며 공명을 만드는 보컬인 백지영에겐 박근태의 무리하지 않는 멜로디가 잘 어울린다.
김도훈 김도훈의 곡은 백지영이 부르기엔 덜 슬프다. 백지영의 처절한 목소리가 화려한 곡조를 이기지 못하고 겉돈다. 뛰어난 가사 전달력도 함께 묻히고 만다.
휘성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김도훈 ‘With Me’는 휘성 경력을 통틀어 최고의 곡이라 할 만하다. 휘성의 끈적끈적한 보컬이 초기 김도훈 음악 특유의 흑인음악적인 요소들에 잘 녹아든다.
이현도 ‘우린 미치지 않았다’는 좋았지만 이현도와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다소 불안정해 보인다. ‘Rose’나 ‘사랑 그 몹쓸 병’에서 휘성의 보컬은 절룩거리는 인상을 준다.
현현(대중음악평론가)
전승우 휘성은 초인적인 보컬 능력으로 어떤 악보도 자기화시킨다. 굳이 꼽자면 ‘전할 수 없는 이야기’ 등으로 초기에 함께 활동했던 전승우와 궁합이 좋다.
김도훈 휘성을 지극히 평범한 ‘한국형 알앤비’ 보컬로 변신시킨다. ‘결혼까지 생각했어’와 ‘가슴 시린 이야기’로 이어지는 김도훈의 곡은 휘성의 최근작을 더욱 밋밋하게 만들었다.
유지성(에디터)
휘성 자작곡 ‘주르륵’은 휘성의 행보에 다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곡이 느려도 음을 길게 끌기보다 짧게 끊어 리듬감을 살리는 자신의 장기를 잘 표현했다.
박근태 박근태의 곡은 기술적으로 탁월하지만, 휘성은 기술적으로 훌륭한 보컬이라기보다, 장르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보컬에 가깝다. ‘사랑은 맛있다’는 휘성이 부르기엔 너무 담백했다.
임정희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방시혁 임정희의 장점 중 하나는 강단 있는 바이브레이션인데, 방시혁의 곡에서 그런 특징이 가장 돋보인다. 비욘세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Golden Lady’는 좋은 예다.
박진영 의외로 박진영의 안전한 멜로디는 임정희의 보컬과 조화롭지 않다. ‘Music Is My Life’나 ‘눈물이 안 났어’ 같은 곡을 굳이 임정희가 부를 필요가 있을까.
현현(대중음악평론가)
방시혁 임정희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게 아닐까?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보내는 예측 가능한 노래와 달리 영미권 팝과의 동시대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타블로 장르 아티스트로 규정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트랙 ‘Never Know’는 부질없었다. 좁은 스케일 안에서도 방황하는 멜로디는 목소리도 길을 잃게 만들었다.
유지성(에디터)
방시혁 오랜 동료 방시혁이 모든 곡을 쓴 새 EP는 임정희의 전환점이라 할만하다. 발성의 장점이 잘 드러난 ‘Music is My Life’ 이후엔 작정하고 밀어붙이는 노래가 드물었는데 ‘Golden Lady’로 오랜만에 시원하게 불러젖혔다.
방시혁 한편 방시혁의 발라드는 백지영 같이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보컬에 더 어울린다.
케이윌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황찬희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는 케이윌의 보컬이 가진 극세사 담요 같은 미성과 안락함을 잘 살린 곡이다. 이 곡에서 그의 보컬은 한없이 보드랍게 퍼져나간다.
김도훈 케이윌의 미성은 템포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김도훈의 ‘가슴이 뛴다’는 좋은 구성에도 불구하고 속도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현현(대중음악평론가)
황찬희 황찬희와 여러 곡을 작업하지는 않았지만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는 자칫 감정처리가 촌스럽게 들릴 수 있는 케이윌의 단점을 잘 커버한 곡이었다.
김도훈 반대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어느 작곡가의 곡이 케이윌의 단점을 부각시킬 수 있을까? 김도훈 특유의 꾸밈음은 케이윌의 보컬을 부담스럽게 만든다.
유지성(에디터)
The Name & 김보민 더 네임의 곡은 무겁다. 묵직하게 본성을 드러내는 보컬이 어울린다. ‘분다’는 기교 대신 깨끗하게 뻗어내기만 해도 풍부한 케이윌의 목소리가 잘 드러난 곡이다.
김도훈 케이윌은 장르성과 ‘뽕끼’ 사이에서 꾸준히 갈등해왔지만, 결정적인 히트를 원할 땐 김도훈 카드를 빼들었다. 조영수 사단의 수많은 보컬들과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김연우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유희열 드라마틱한 구성의 ‘거짓말 같은 시간’에서 김연우는 활공과 비상을 반복하는 아름다운 보컬을 선보인다.
권태은/정지찬 <나쁜 남자> OST에서 김연우가 부른 ‘가끔은 혼자 웁니다’와 정지찬의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은 관습적인 멜로디가 김연우의 자유로운 보컬을 어떻게 가두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현현(대중음악평론가)
유희열 유희열은 김연우의 목소리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싱어송라이터가 자기 목소리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들 듯, 김연우에게 맞춤옷 같은 노래를 준다.
루시드폴 반대로 루시드폴 조윤석은 자신의 한계가 뚜렷한 목소리에 어울릴 법한 곡을 슈퍼 히어로급 보컬인 김연우에게 주는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다.
유지성(에디터)
윤종신 김연우는 매우 일상적인 가사를 불러도 우습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윤종신은 그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가사만 붙인 ‘이별택시’가 아쉬웠는지 ‘청소하는 날’에선 곡도 썼다.
조규만 형식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발라드를 장르로 규정하고, 문법을 만든다면 모범사례로 꼽힐 만한 조규만의 곡은, 김연우 보컬을 전형적으로 들리게 한다.
박정현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하림/윤종신 박정현이 가장 반짝이던 순간은 ‘몽중인’이나 ‘나의 하루’를 부를 때였다. 하림과 윤종신의 발라드는 박정현의 감정 과잉을 장점으로 끌어안았다.
MGR 박정현 특유의 발성과 목소리는 빠른 비트를 좇기보다는 곡의 선두에 서는 데 적합하다. MGR의 댄스곡 ‘떨쳐’는 박정현에게 남다른 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곡이었다.
현현(대중음악평론가)
조규만 박정현은 굳이 궁합이 맞는 작곡가를 찾을 필요가 없는 보컬리스트다. 그래도 추천할 만한 작곡가는 있다. 조규만 특유의 ‘캐치’한 멜로디를 박정현이 부른다면 히트는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다.
조영수 박정현은 제 아무리 나쁜 멜로디도 좋게 들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영수의 멜로디는 그녀가 부르기엔 지나치게 통속적이다.
유지성(에디터)
정석원 정석원은 박정현의 보컬을 해방시켰다. 전개와 절정에 이질감이 든다 싶을 정도로 곡 중간에 전환점을 만들어 보컬의 극적 요소를 살렸다. ‘꿈에’와 ‘미장원에서’를 또 누가 부를까?
황성제 황성제의 편곡은 악기 구성이나 연주가 밝고 부드러운 편이라 극적인 노래에도 건강한 기운이 돈다. 박정현의 예민한 보컬을 감당하기엔 흡입력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