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불러온 신드롬은 달라지는 한국 클래식 시장 온도의 방증이다. 과연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질적, 양적으로, 한 단계 올라설 것인가?
작년 봄으로 기억한다. 임윤찬이라는 이름이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폭발적’인 현상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평소 까다롭게 굴기로 소문난 평론가, 어지간한 전문가 뺨치는 애호가 무리가 경쟁적으로 한 마디씩 얹는 지점이었다. 괴물, 천재 같은 표현이 오갔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를 몽땅 귀신같이 친다”는 상식 밖의 신화적인 무용담마저 나돌았다.
당시 그는 만 17세. 2019년에 역대 최연소인 만 15세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바로 스타덤에 오른 건 아니다. 클래식 음악계는 비정할 정도로 무심해서 국내 최고 권위의 콩쿠르 우승 정도엔 열광하지 않는다. 취재차 경연장을 몇 번 찾은 적 있는데 가족 정도를 제외하면 청중도 없었다. 애호가들의 시선은 명확하다. 외국의 주요 콩쿠르 몇몇만 메이저리그, 나머지는 몽땅 마이너리그.
그런 현황에서 우승 1년을 좀 넘겨 갑자기 반응이 나타났다. 그사이 외국 콩쿠르에 나가 성적을 낸 것도 아니다. 알음알음으로 알려지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고 보는 게 합당해 보인다. 매우 이례적이라고 느꼈다. 기껏 외국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돌아와도 잠깐 박수와 찬사를 보내다가 이내 관심을 거두는 일이 흔한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결국 나도 리사이틀을 찾았다. 프로그램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과 ‘순례의 해’ 일부. 참고로 ‘초절기교’라는 제목은 오역에 가깝다. 저렇게 부르니 테크닉 과시에 집중하는 곡으로 들리지만 실제 의미는 ‘초월적인 연주’에 가깝다. 예술성, 기교, 의미 등을 망라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초월적인 세계를 담았다는 뜻. ‘순례의 해’ 역시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 오래도록 조탁한 리스트의 대표작이다.
명불허전. 난곡으로 소문난 곡들임에도 여유롭게 연주했고, 심지어 자신의 주관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가기까지 했다. 무대에서 위축되거나 흥분하는 기색은 딱히 없었다. ‘쟤가 만 17세라고?’ 오래도록 그 곡을 연구하고 다져온 베테랑 같은 오리지널리티는 부족했을지 모르나, 그 나이와 시점에서 선보일 수 있는 재능의 극한값은 충분히 증명했다. 아주 가끔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재능. 한데 이렇게 리스트를 치다가도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으로 선희하면 기어가 착착 바뀐다고? 덜컥 믿기도 그렇고 마냥 의심하기도 그렇고···.
몇달이 지난 현재 그는 스타덤을 넘어 신드롬 수준에 다다랐다. 올해 6월 19일 대망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사실 결과는 일찌감치 확신했다. 적지 않는 애호가가 유튜브로 경연을 챙겨 보며 중계했는데, 약속이나 한 듯 “워낙 압도적이어서 경쟁자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은 누구누구가 주목된다 정도로 말하는데 이번은 달랐다. 그냥 임윤찬밖에 안 보인다며 흥분했다. 만약 다른 결과가 발표됐다면 이들이 심사위원 소셜 미디어에 우르르 몰려가 폭격했으리라고 장담한다.
이후 전개는 다들 아는 그대로다. 한마디로 록 스타. 2015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때 분위기가 재연되고 있다. 무대 위 자신감 넘치는 몸짓에 야성을 운운하고, 17세 소년답지 않은 도인이나 구도자 같은 태도에 열광한다. 임윤찬은 클래식 음악게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떠올랐다. 이제 그의 공연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선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나서야 할 것이다. 나는 임윤찬의 이 신드롬이 여러 측면에서 흥미롭다. 표면은 조성진 때와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이면은 제법 다를 수도 있다고 느껴서다. 내 궁금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정말 질적, 양적으로 한 단게 올라선 것인가?
“이제 더 이상 콩쿠르 안 나가도 된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밝힌 소감이다. 여기엔 한국의 많은 현실이 응측되어 있다. 1) 한국은 클래식 음악의 변방이고 시장 규모도 협소하다. 2) 일단 외국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거기서 인정받아야 한다. 3) 그래야 한국에서도 관심을 끈다. 4)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계속 나가서 타이틀을 따와야 관심이 이어진다. 5) 관심이 시들해지면 결국 교수로 전향해 연주 활동보다 후학 양성에 주력한다.
천하의 조성진도 줄기차게 콩쿠르에 나갔다. 주니어 경연을 제외하고 시니어 경연만 따져도 무려 넷이다. 2009 하마마쓰 콩쿠르 1위, 2011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2014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 2015 쇼팽 콩쿠르 1위. 모두 세계적인 명망의 메이저리그이고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계속 나갔다. 포장하자면 ‘스스로를 조탁하며 성장하기 위한 끝없는 도전’ 같은 표현도 가능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안 나가면 안 되니까’에 가깝다. 이를 두고 “프로페셔널 파이널리스트”라며 비아냥대는 이도 많다. ‘왜 프로가 계속 콩쿠르에 나오느냐?’ 같은 시선이다.
물론 외국에도 이런 사례는 많다. 그러나 우리만큼 절박하고 집요하진 않다. 세계적인 콩쿠르의 결선 진출자 명단을 보면 대체로 한국인 비중이 가장 높다. 한국은 음악 강국이다, 엘리트 교육 수준이 높다 같은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콩쿠르가 유일한 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겐 이번 임윤찬 신드롬이 꽤 이채롭게 다가온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때문에 신드롬이 촉발된 게 아니라 이미 발생한 신드롬이 콩쿠르를 계기로 가속화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이전에 있었던가? 클래식 음악회장을 열심히 다니며 여기저기 글을 쓴 지 10년 조금 넘었는데 적어도 이 기간엔 없었다. 나는 궁금하다. 이 현상을 온전히 임윤찬 개인의 탁월함 때문으로 볼 수 있을 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의 온도가 몇 년 전과는 확실히 다름을 피부로 느낀다. 그땐 한국에서 스타 소리를 듣는 20~30대 젊은 연주자들의 공연도 표를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들조차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기 벅찼기에 공연 직전에도 표가 제법 남았고, 중고시장에 풀린 초대권을 헐값에 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일찌감치 매진되며 중고 시장에선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
외국 아티스트의 내한공연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예전엔 일본이나 중국 투어를 돌던 와중 잠시 들러 서울만 콕 찍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근래엔 유명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투어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변방에서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거듭난 느낌이랄까? 일각에선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손흥민 등 세계를 석권한 대중 예술, 스포츠와 엮어서 설명하던데 과장된 측면은 있을 지라도 아주 틀린 접근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한국은 문화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특히 서울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찾고 싶은 도시, 공연하고 싶은 도시 반열에 올랐다. 더 이상 ‘깍두기’ 신세가 아니다.
최근 중국인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한국에서 투어를 가졌다. 서울, 인천, 대전, 대구, 고양 5개 도시에서 리사이틀을 치러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탁월한 기교, 과감한 해석, 파격적 패션 등으로 세계 음악계의 젊은 아이콘으로 맹활약 중인데, 놀랍게도 시니어가 된 이후 메이저 콩쿠르에 출전한 이력이 전혀 없다. 10대 후반에 바로 연주 활동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를 두고 중국 인구, 섹스 어필 등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실력과 카리스마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음해다. 중국인 혐오, 여성 혐오 성격도 없잖아 있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연주자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콩쿠르가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당연히 거기에도 순기능이 있고 음악에 기여하는 바 역시 크다. 내가 말하는 건 굳이 거기에 목매지 않아도 될 만큼, 다시 말해 실력을 인정받으면 다른 경로로도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는 성숙한 시장이다. 임윤찬이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역시 계속해서 여러 콩쿠르를 섭렵하며 타이틀을 쌓아나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에겐 어떤 변화의 기점이 될 만한 특별한 힘이 있다는 기대를 살짝 피력해본다. 그게 가능한 건 특출한 개인 한 명의 등장을 넘어 시대 자체가 한 장을 넘기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레발이 아니면 좋겠다. 글 / 홍형진(소설가, 콘텐츠 기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