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색깔 있는 명장은 어떻게 야구를 하는가

2009.01.19GQ

SK에 김성근이 왔고 LG로 김재박이 갔다. 김인식은 믿음의 야구로 2년 연속 한화의 약진을 이끌었고, 선동열은 지키는 야구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뤘다. 이들이 리드하는 한국야구에 대해 야구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까. 색깔 있는 감독 4인에 대한 <GQ>식 품평이다.

GQ 철저한 관리 야구로 전력이 약한 LG를 준우승까지 올려놓았던 김성근 감독이‘팀 컬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질된 것이 불과 4년 전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퇴임 이후의 한국 프로야구는 오히려 관리 야구의 전성기를 맞은 듯하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최민규(<스포츠 2.0> 야구 담당 기자)
글쎄.‘관리 야구’라는 개념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관리 야구의 전형은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식 관리 야구의 대명사가 세이부 라이온스의 9대 감독을 역임하고 현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초빙 코치로 있는 히로오카 다쓰로다. 히로오카는 스파르타식 훈련, 감독의 권위, 매뉴얼에 입각한 야구를 특징으로 한다. 올해 한국에 히로오카식 관리 야구를 했던 감독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광환 전 LG 감독 스타일의 자율 야구의 퇴조, 스타 플레이어 출신 젊은 감독들의 잇따른 실패가 올해 프로야구를 정리하는 객관적인 현상이 아닐까.
허구연(MBC 야구 해설위원) 관리 야구의 득세는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에서 가늠해야 한다. 국내 야구는 그룹 차원에서 운영된다. 야구단을 거느린 그룹은 수익, 적자 폭과 관계없이 그룹 홍보에 도움이 되는 이기는 경기, 우승하는 감독에 주목한다. 승리 지상주의가 팽배해 있고 이기기 위해 많은 작전이 동원된다. 메이저리그나 일본에 비해 선수들의 해결 능력도 부족하다. 루키, 싱글 A, 더블 A, 트리플 A를 거쳐야 1군에 올라오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2군 리그도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결국 감독은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관리 야구를 펼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태일(전 <중앙일보> 야구 전문 기자) 세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우선, 한때 대세라고 여겨졌던 40대 감독들(이순철, 김성한, 조범현, 양상문)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속 팀에서 물러났다. 반대로 경험과 연륜을 함께 갖춘 노 감독들은 괜찮은 성적(한화 김인식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강병철은 롯데를 꼴찌의 늪에서 건져냈다)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관리 야구에 가까운 운영을 하는 선동열과 김재박 감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GQ 김성근, 김재박, 선동열 감독은 하나같이‘관리 야구’혹은‘스몰볼’을 펼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의 스몰볼은 어떻게 다른가?

최민규 세 감독의 차이점은 분명 있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 91년 삼성 감독으로 부임해 “이렇게 훌륭한 팀을 맡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재박, 선동열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그룹 산하에서 뛰었다. 김성근 감독은 약팀을 기초 전력 이상으로 끌어올렸다(쌍방울, LG의 예를 봐라.)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누가 봐도 최강인 팀을 맡았다. 김재박 감독의 현대도 전성기인 2004년까지는 전력이 대단했다. 두 젊은 감독은 강팀이라는 조건 속에서 우승이라는 화룡점정의 임무를 해냈다. 전력의 우위를 떠나서 한국시리즈 우승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엄살이 심하다. 특히 선동열 감독. 투수 선동열이라면‘삼성 선수 실력 없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감독 선동열이‘삼성 선수 형편없다’고 하는 말에 공감할 감독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허구연 김성근 감독은 데이터 의존도가 높고 김재박 감독은 작전이 섬세하다. 허를 찌르는 전술에 능하고 작전의 다양성도 갖췄다. 선동열 감독은‘지키는 야구’라는 표현이 꼭 맞다. 투수 운영 능력이 뛰어나고, 이기고 지는 경기에 대한 판단도 빠르다. 대 투수 출신이라 선수를 다루는 방법이 아주 좋다. 강약 조절을 잘 하는 거다. 다른 팀에 가면 에이스 대접 받으며 떵떵거릴 배영수를 두고 버릇처럼“영수는 아직 멀었어”같은 말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조건 억누르고 무시하는 게 아니다. 선수들과의 충분한 교감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반발이 없다.
이태일 김성근은 데이터 야구를 기본으로 한다. 김재박의 특징은 임기응변에 능한 작전이다. 그리고 선동열은 탄탄한 불펜을 중심으로 지키는 야구를 한다.

GQ 선 감독은 올해 지나치게‘시스템 야구’‘작은 야구’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투수교체가 잦고, 희생번트가 많고, 팀 홈런이 사라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대구팬들은 선 감독 부임 이후‘큰 것’하나로 경기를 뒤집던 삼성의 화끈한 팀 컬러가 사라졌다고도 한다. 그의 야구를 작은 야구, 이기기 위한 지키는 야구라고 봐도 좋은가?
최민규
작은 야구든, 큰 야구든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의 목적은 승리다. 선 감독은 2년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냈고 그에 대한 존중과 평가는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의 희생번트는, 구단 통산 기록으로 보면 많지만 8개 구단 평균과 비교하면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올해의 삼성은 썩 균형 잡힌 전력이 아니었다. 주포인 심정수의 부상, 주전들의 고령화로 타선에 힘이 빠진 반면 마운드는 탄탄했다. 불펜의 우위라는 전력적 특성까지 고려해 선 감독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본다. 특히 삼성의 전통적 약점이던 투수진을 훌륭하게 조련시킨 건 오로지 선 감독의 공으로 돌려도 무리는 아니다. 삼성의 연고지는 우수한 투수 자원이 적은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허구연 스몰볼이면 스몰볼이지‘작은 야구’라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작은 야구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지키는 야구를 하는 건 맞다. 어떤 감독이든 화끈한 경기를 하고 싶은 욕망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야구 현실이 따라주질 못한다. 그리고 선 감독이 있는 팀이 어딘가? 막대한 지원이 있고 우수한 선수도 많은 삼성이다. 우승하지 않으면 안될 위치에 있다. 게다가 선 감독은 대구 팬이 앙숙처럼 여기는 광주 연고의 해태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경기에서 졌을 때, 우승하지 못했을 때 선 감독은 대구 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을 들을 거다.
이태일
감독은 팀 사정을 고려해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삼성은 불펜이 강하다. 불펜이 강한 팀은 당연히 선취점에 집착한다. 선 감독은 부임 이후 삼성의 체질을 그렇게 (불펜 위주로) 바꿨다. 그리고 그 야구가 한국시리즈 2연패라는 결실을 맺었다. 화끈한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던 예전의 삼성은, 골프에서 미스 샷이 많은 장타자였을 뿐이다.

GQ
탄탄한 마운드를 바탕으로 하는 선 감독의‘지키는 야구’가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가?

최민규
아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 감독이 한국에서 현역 시절을 보낸 해태도 ‘지키는 야구’를 했다. 해태에는 호쾌한 강타자들이 많았지만 김응용 감독의 야구는 소심해 보였다. 그런데, 경기를 이기려면 리드를 지키는 야구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리드를 지키기 위해 권오준과 오승환을 앞세운 건 맞지만, 선 감독이 타자들에게 점수를 내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허구연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일본 야구는 연습을 참 많이 한다. 수비, 베이스러닝 실수나 본헤드 플레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타자들은 팀 배팅을 못하면 코칭 스태프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도태된다. 선 감독이 일본에서 경험한 또 한 가지는, 스타도 예외는 없다는 분위기였다. 마운드에서 난타도 당하고,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하면서 일본의 치밀한 야구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을 것이다.
이태일
선 감독이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던 시절, 그 불펜에는 오치아이, 이상훈, 이와세 같은 듬직한 셋업맨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아는 것처럼 선 감독이 뒷마무리를 했다. 호시노 감독은 그 불펜으로 주니치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몸소 경험한 선 감독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닐까?

GQ
선 감독의 야구는 내년에도 어김없이‘스몰볼’일까? 현역시절처럼 영리하고 시원시원한, 이른바‘빅볼’을 펼칠 가능성은 없는 건가?
최민규 마운드에 선동열만 있다면 삼성 타자들도 맘 놓고 배트를 휘두르지 않을까? 선 감독은‘3점 홈런으로 이기는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3점 홈런의 야구’를 믿는 감독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소수 중의 소수파다.
허구연 글쎄, 별로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내년에는 대구 구장의 펜스도 올해보다 멀어진다. 홈런 승부보단 마운드에 더 많이 의존하는 환경이 조성되는 거다. (올해의 삼성은 주축 타자가 부상으로 이탈해 전력이 완전치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모든 감독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메이저리그식의 야구를 하려면 한 해에 1백 타점, 30홈런 이상씩 해줄 타자를 못해도 세 명은 거느리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삼성 타선은 그 정도 파괴력이 없다. 양준혁, 김한수는 배팅 스피드가 많이 떨어졌고, 심정수도 이승엽과 홈런 경쟁을 벌일 때만큼의 기량이 아니다.
이태일 삼성의 내년은 타자들의 세대교체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투수 쪽에서는 오승환이 2년 연속 무리했고,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을 배영수는 1년 가까이 활용할 수 없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권혁과 임창용이 제 컨디션을 찾는다면 좀 다른 양상이 될 수 있지만, 분명 올해보다는 타선에 힘이 실릴 거다. 조동찬의 스텝업, 조용훈의 중용이 눈에 띌 것으로 본다.

GQ 올해 한국 프로야구의 최고 스타는 김인식 감독 아닌가? WBC 4강, 그리고 연장전을 3번이나 치를 정도로 피 말리는 명승부를 펼친 한국시리즈까지 말이다. 김인식 감독의 야구가 1~2년 새에 완성된 것도 아닌데, 유독 올해 그가 돋보였던 이유는 어디에 있나?

최민규 다른 이유 없이 WBC 4강. 하지만 감독이 최대 스타가 되는 현상은 비정상적이다.
허구연 WBC 4강이 가장 크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훈련을 강요하지 않는다. WBC 개막에 앞서 대표팀과 피닉스에 도착했을 때, 김 감독은 선수들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이틀을 통째로 쉬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선수들을 그렇게 맘놓고 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김 감독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당시 선수들은 박찬호를 중심으로 알아서 훈련하러 나갔다. 김인식 감독의 스타일은 일정 수준 이상의 야구 기량을 가지고 있고, 올바른 양식과 자기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는 선수 집단에서 유독 빛난다. 국내외 리그의 내로라하는 선수가 한데 모인 WBC 팀 구성이 꼭 그랬다. 지금의 한화도 마찬가지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 야구 경험이 많고 스스로 알아서 관리할 줄 아는 선수들이 팀의 중심이다. 김 감독의 맡기는 야구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태일 김 감독의 성공은 사실 한화를 플레이오프까지 이끈 지난해 이미 이뤄졌다고 본다. 그 전력에 올해는 구대성, 조원우, 김민재가 가세했다. 아, 류현진까지. 올해 한화의 한국시리즈 진출 열쇠는 구대성과 김민재를 축으로 한 수비(또는 지키기)였다. 게임으로 보면 플레이오프 2차전에 류현진이 아니라 정민철을 선발로 기용한 승부수가 김 감독의 야구를 대변한다고 본다. WBC에서의 성공 열쇠는 박찬호를 마무리로 쓴 카드였다. 투수진을 운용할 때 불펜과 마무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김 감독도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선발로만 뛰었던 박찬호를 마무리로 발탁한 건,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그런데 그걸 생각해내고 실천한 게 바로 김인식 감독이니까 할 수 있는 용병술이자 결단력이다.

GQ
김인식 감독이 펼치는 선 굵은 ‘믿음의 야구’는 이광환 전 LG 감독의 ‘자율 야구’와도 흡사한 면이 있어 보인다. 두 감독의 야구는 어떻게 다른가?
최민규 선수들이 감독을 두려워하기보다 신뢰한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한화 선수들은“우리 감독 쓰러지겠다. 미안해서라도 이겨보자”라며 자발적으로 분발했다.
허구연 조금 다르다. 김인식 감독의 믿음 뒤에는 계산이 있다. 김 감독이 탁월하다는 건 포용력, 집중력, 통찰력 때문이다. 그는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에게 불호령을 내리진 않는다. 그 대신 경기 중간중간,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순간을 집중력 있게 지켜보다가 잘못된 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지적한다. 텔레비전 중계할 때 보면, 경기 중에 말이 가장 많은 사람이 김인식 감독이다. 이광환 감독은 선수들에게 시스템 야구의 큰 틀을 알려주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시스템을 도입해 선수들에게 이해시키고 그 안에서 너희들이 알아서 맞춰서 훈련하라고 한다. 이광환 감독은 경기장에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이태일 김인식 감독이 믿음의 야구를 한다기보다는 다른 감독들이 선수들을 못 믿는 것 같다. 신인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고, 베테랑의 경험을 높이 산다는 점에서는 이광환 감독의 야구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GQ
김인식 감독의 야구를 스몰볼과 반대되는 빅볼이라고 지칭해도 좋은 건가?
최민규
아마도. 김 감독은“번트는 상황에 따라 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8개 구단 중 번트가 가장 적은 감독이긴 하다. 오해해선 안될 것이, 구원투수 등판이 잦은 건 스몰볼, 빅볼과 큰 관계 없다. 스몰볼을 하지 않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도 구원투수 비중이 높다. 김 감독도 두산 감독 시절엔 차명주, 이혜천을 하루가 멀다 하고 기용했다.
허구연 그건 아니다. 반복되는 얘기 같지만, 한국 야구 실정에서 빅볼로 승부를 보긴 힘들다. 한화에서 홈런 칠 수 있는 타자라면 김태균, 데이비스, 이범호 정도다. 이들만 믿고 한 방 승부를 하긴 어렵다. 김인식 감독이 다른 세 감독과 달라 보이는 건, 희생번트를 많이 안 하는 것 정도다.
이태일 그렇진 않다고 본다. 야구 흐름상, 한화의 팀 사정이 그런 이상을 주는 게 아닐까? 한화(타선)는 김태균, 이범호, 이도형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야구다. 반면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고작 1안타뿐이던 김태균을 붙박이 4번에 두고, 그 김태균이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펄펄 나는 걸 보곤 김 감독의‘인간적인 빅볼’을 보았다.

GQ 김재박 감독의 작전 야구, 번트 야구가 프로야구를 재미없게 한다고들 한다.

최민규 현대의 우승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이 번트 지시를 적게 낸다고 수원 구장에 관중이 많아질 것 같나?
허구연 안타깝지만 국내 프로야구는 팬이 아니라 구단이 만족하면 그만이다. 김재박감독은 영리하다. 팀 성적이 나쁘면 감독 목이 날아간다는 것도 잘 안다. 재미없는 야구를 하더라도 지지 않는 야구,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태일 난 자세히 보면 재미있던데…. 김재박 야구가 재미없다기보다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아닐까?
GQ
현대는 올해 한 시즌 최다 희생번트 기록(153개)을 세웠다. 김재박 감독의 번트 야구가 선수들의 의지를 떨어뜨리진 않을까?
최민규 올해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때 이숭용은 벤치 지시 없이도 번트를 댔다.
허구연 번트 지시와 관련한 문제는, 선수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 있다. 번트를 자주 하는 것도 감독의 카리스마가 있어야 통할 수 있다. 예전에는 무사 1루에서 번트 사인이 나면 일부러 실수해서 투 스트라이크 상황을 만드는 선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스리 번트 실수로 아웃될 순 없으니까 벤치는 강공 사인을 낼 수밖에 없다. 이런 행동은 감독에 대한 반항이나 마찬가지인데, 현대에는 그렇게 반항하는 선수가 없다. 김재박 감독과 선수들이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태일 선수들의 첫 번째 목표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안타를 때리는 것이 먼저인가, 팀이 이기는 것이 중요한가? 그걸 알면 의지가 떨어질 리도, 떨어질 수도 없다.

GQ
김재박 감독이 LG의 새 사령탑이 됐다. 2003년 이후 신바람 야구는 사라지고 내리막길만 걸었던 LG가 김재박 감독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LG가 주창하는 신바람 야구가 김재박 감독의‘관리 야구’와 어울릴 수 있을까?

최민규 김재박 감독은 탁월한 관리자이지만‘관리 야구 신봉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번트를 많이 댄다고 해서 관리 야구는 아니다. LG의 몰락은 신바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좋은 선수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은 많지만 크게 튀는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실패, 실패, 또 실패였던 외국인 선수 영입이 가장 큰 이유였다.
허구연 LG의 신바람 야구는 그룹 홍보 차원에서 만들어진 허상이나 다름없다. 신바람 야구는 일과성으로 끝나야 한다. LG트윈스가 진짜 명문 구단이 되려면 신바람 야구라는 말, 그만해야 한다. 1년 내내 신바람 나기도 힘들고, 신바람이 떨어지면 그땐 야구 어떻게 하라는 건가. 말로 현혹하기에 앞서 전력을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LG는 내년에 분명 좋아질 거다. 여지가 많다. 특히 봉중근이 합류하고 김상현, 이동현 등이 복귀하면서 마운드가 한층 높아진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신중할 필요는 있다. LG의 최근 부진은 용병 영입 실패에서 기인했다. LG 전력이 올해보다 탄탄해지면 김재박 감독도 약간은 달라지지 않겠나. 감독의 운영 스타일은 팀 전력, 선수단 구성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이태일 신바람 야구와 관리 야구가 어울릴 수 있겠냐고? 이기면 어울리는 거고, 성공도 한다. 김 감독은 이기는 방법을 만들어갈 것이다. LG는 그 정도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다.

GQ 김성근 감독이 4년 만에 SK 사령탑으로 현역에 복귀했다. 데이터 야구, 관리 야구의 초석을 놓았던 그가 던진 취임일성은 팬들이 즐거워하는 경기 즉‘스포테인먼트’였다. 김성근식 스포테인먼트를 상상하기가 어려운데….
최민규
스포테인먼트는 김성근 감독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허구연 김성근 감독의 SK는 분명 내년에 가장 주목되는 팀이다. 스포테인먼트는 SK 구단이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는 건데, 김 감독은 이걸 어떻게든 실현시켜야 한다. 김 감독처럼 어렵게 야구해온 사람도 없다. 국내 야구계에는 아직도 지연, 학연이 지배한다. 김 감독은 재일교포라 지연도 없고 학연도 없다. 김성근 감독은 그래서 더욱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김성근 야구가 하루아침에 바뀌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발렌타인 감독을 2년 동안 보면서 느낀 게 많지 않겠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스포테인먼트의 진수를 체험한 이만수 코치가 함께 한다. 이런저런 상황을 조합해 보면 김성근의 야구도 확실히 달라질 거라고 기대한다.
이태일 이제까지의 기억으로는 나도 상상이 잘 안 된다. 모자를 눌러쓰고 입술을 꾹 다문 모습이 김 감독의 상징이다. 그런데 김 감독이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걸 SK 취임식 자리에서 처음 봤다. 스스로도“이제까지는 야구장에서 웃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년부터는 많이 웃겠다”고 했다. 롯데 지바마린스의 바비 발렌타인 감독은 타고난 엔터테이너다. 그와 함께했던 2년이 김 감독을 달라지게 했을 거다.

GQ 좋은 성적을 내려면 선수단과 프런트 장악, 선수 관리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김성근, 김인식, 김재박, 선동열 4명 감독의 프런트 장악 및 선수 관리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민규
요즘 감독들은 프런트를 장악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야구를 모르는 사장들이 구단을 쥐고 흔든다’는 것이 감독들의 영원한 불만이다. 삼성은 신필렬 전 사장 때부터 사장이 현장 감독에게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김성근 감독은 누구보다도 야구를 잘 알고 그 점 때문에 프런트의 존경을 받는다. 김재박 감독은 고참 코치들과 권한을 나눈 뒤 이들을 적절히 관리했다. 김인식 감독도 김성근 감독처럼 존경을 받는 사람이지만, 선수들에게 훈련을 적게 시킨다는 점에서는 그와 반대다.
허구연 프런트 장악이라는 말은 이미 사라졌다. 오히려 프런트의 힘이 예전보다 강해졌다. 요즘 감독들에겐 프런트 장악 대신 프런트가 감독의 의지를 수용해주는 비율이 더 중요하다. 프런트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려면, 감독은 일단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선수단 장악 능력은 네 명 감독 모두 뛰어나다. 하나같이 카리스마가 있다.
이태일 우선, 프런트는 장악하는 게 아니다. 그건, 이전 해태에서의 김응용 감독이나 가능했던 일이다. 프런트와 감독은 듀엣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친화력은 선동열 감독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선수 관리? 이 단어도 적절치 못하다. 프로야구 선수는 관리대상일 만큼 철부지들이어서는 안 된다. 김성근 감독은‘졸업하고 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무서운 선생님’스타일이다. 그래서 두루 존경 받는다.

GQ
스몰볼, 빅볼, 데이터 야구, 관리 야구, 믿음의 야구, 자율 야구 등 요식행위 같은 표현은 모두 버리고 생각하자. 김성근, 김인식, 김재박, 선동열 감독의 스타일을 함축적으로 정리한다면?
최민규 김성근, 야구에 미친 사람이다. 김인식,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을 확립했다. 김재박, 조직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한다. 스마트하다. 선동열, 감독의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가장 어려운 구단에서 카리스마를 세웠다.
허구연 김성근, 섬세한 야구를 한다. 또 궁지에 몰리거나 퇴물 취급 받는 노장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리고 근성 야구를 한다. 완전 오뚝이 체질이다. 김인식, 덕장, 지장이고 적이 없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비전을 제시할 줄 안다는 사실이다. 김인식 감독은 올해 포스트시즌 때 5회말이 끝나고 난 뒤의 장내 정리 시간에 중계석으로 직접 올라와서 인터뷰를 했다. 메이저리그 스타일인데, 다른 어떤 젊은 감독도 그런 걸 하지 않는다. 감독이 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팬을 위한 야구의 비전을 몸소 제시했다. 김재박, 타고난 승부사다. 감각 있는 야구를 하고 작전 성공률도 높다. 그리고 국내 야구 현실에서의 생존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왜소한 체격으로 야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듯하다. 그리고 김재박 감독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중 하나는, 바로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태평양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11년 동안 한 팀에서 감독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과의 갈등이나 잡음 같은 게 없었다. 선동열, 역시 카리스마다. 주변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도 뛰어난 영리한 감독이다. 투수 운영 능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선수 보는 능력, 특히 투수의 가능성을 캐치하고 길러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지금의 삼성 불펜이야말로 선 감독의 최고 작품이다.
이태일
김성근, 데이터. 선수들에게 야구에 대한 진실한 노동관을 심어준다. 김인식, 영화 <타짜>에 나오는 이른바‘설계의 고수’. 그리고 설계에 항상 인간미가 따른다. 김재박, 기민한 상황 파악, 김시진, 정진호, 김용달로 대표되는 우수한 참모 중심의 시스템 야구. 선동열, 탄탄한 불펜 구성과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 승리를 물면 놓지 않는 불독.

GQ
어찌 보면, 이것이 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다. 팬을 위한 호쾌한 야구와 승리를 위한 작전의 야구는, 물과 기름처럼 공존할 수 없는 건가?
최민규 과장된 표현이다. 어쨌든 롯데 같은 팀은 스몰볼을 하든, 빅볼을 하든 이기면 관중이 들어온다. 그런데 왜 저 모양인지 참.
허구연 스포츠는 극적인 반전의 여백을 남겨두어야 하는데, 우리는 극적인 요소가 줄어들 때까지 위험요소를 없애는 야구를 한다. 5회말에 5: 0으로 앞서고 있으면 충분히 공격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감독들은 번트를 대고 희생타를 날려서 6: 0, 7: 0까지 가야 겨우 안심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경기하면 빈 볼이 날아온다. 프런트의 입김이 센 것도 한 요인이다. 4: 0으로 이기고 있다가 4: 5로 역전패하면 프런트에서는 당장 감독, 코치의 책임론부터 들고 나온다. 감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길 수 있다는 1백 퍼센트의 확신이 들 때까지 작전 야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팬들이 좋아하는 호쾌한 야구가 등장하겠나.
이태일 물과 기름이 아니라 불과 기름이 될 수 있다. 어떤 성질의 야구든, 그 야구를 즐기면 멋있어 보인다. 이기기 위해서는 팀 사정에 맞는 야구를 해야 한다. 그걸 이해하면 삼성, 현대의 야구도, 환화 야구도 모두 같아 보일 수 있다. 팬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다. 스포츠 팀, 그리고 감독,선수라면 팬에게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미덕이다. 이기기 위해서 작전을 많이 한다는 건, 작전을 많이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과 같을텐데, 가정부터가 성립하지 않는다.

    에디터
    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