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가 라 리가에서의 기세를 챔피언스리그에 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 누가 저 날쌘 녀석들의 질주를 막을까?
올시즌 바르셀로나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경험 부족이란 꼬리표를 달고 불안하게 데뷔 시즌을 출발했던 ‘펩’과르디올라 감독이 라 리가 신인 감독 중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을 뿐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전반기 성적과 관련된 여러 기록들을 그야말로 한꺼번에 갈아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리그에서의 그칠 줄 모르는 상승세는 챔피언스리그까지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바르셀로나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지만, 스타 선수들이 부지기수로 모여 있는 유럽축구에 ‘절대강자’란 존재하지 않는 법. 빈틈은 존재하기 마련이며, 경기 스타일적인 면에서 그 틈을 파고들기에 적합해 보이는 몇몇‘천적’유형의 팀들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르셀로나와 호각으로 다투며 그들을 끈질기게 괴롭힐 수 있는 팀은 과연 어디일까?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깊은 슬럼프의 수렁에서 건져냈을 뿐 아니라, 팀을 전반기 쾌속행진으로 이끌며 크게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이를 위해 무언가 극적인 변화나 혁명을시도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과르디올라 감독 스스로가 부임과 동시에“내게 주어진 임무는바르셀로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것”이라 언급했던 것처럼,지금 현재의 바르셀로나는 이른바‘크라이프 정신’으로 대변되는 그들의 전통적인 경기스타일을 고스란히 고수하고 있는 팀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물론,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임 감독 레이카르트에 비해 규율 및 조직력을 중요시한다. 또한좀 더 ‘뛰는 축구’를 표방함으로써 볼을 소유하며, 상대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는 것에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높은 볼 점유율의 유지, 원터치•투터치 패스에 의한 빠른공격전개, 상대 진영에서부터의 적극적인 압박 등으로 대변되는 바르셀로나 축구의 기본적인 콘셉트에는 루이스 피구와 히바우두가 활약하던 시절부터 리오넬 메시가 팀을 이끄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커다란 변화가 없다.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소위 말하는‘선택받은 자들의 축구’다.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 않고서는 바르셀로나와 같이 극단적으로 높은 볼 점유율을 유지하며 화려한 공격 축구를 펼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바르셀로나는 선수 개개인의 훌륭한 기술에 과르디올라감독의 엄격한 규율 및 전술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단단한 조직체를 이루고 있는 팀이다. 메시의 부상과 같은 갑작스런 사건만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이 팀을 무너뜨리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물론, 해법은 있다. 우선 바르셀로나와 같이 뛰어난 테크닉을바탕으로 짧은 패스를 연결하며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는 팀과의경기를 준비할 때, 상대 팀 감독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의 전술 및 전략을 놓고고민을 거듭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감하게 최후방 라인을 끌어올려 미드필드 지역에서부터 적극적인 압박을 시도함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허리 라인에서부터 봉쇄할것인가, 아니면 공격적인 자세와 적극성을 조금 늦추더라도 골문 근처에 밀집대형을 구축함으로써 실점 가능성을 줄인 채 역습 위주로 상대방을 공략할 것인가.유명한 스페인 축구 칼럼니스트 필 볼은 위와 같은 바르셀로나 공략법과 관련,“현대축구에서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펼치기 위해서는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적극적으로 올라오며 상대를 압박하는 빈도를 높여야 하지만, 대부분의 팀들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는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그만큼 바르셀로나는 특별한 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샤비를 비롯한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이 상대의 강한 압박에도좀처럼 당황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볼 소유권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하는데, 만약 전진수비를 펼치며 압박을 시도한 팀이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해내는 데 실패할 경우 그 팀은 에토, 앙리,메시와 같은 전방 공격수들에게 뒷공간을 허용하며 치명적인 실점 위기를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전체적인 대형을 뒤로 물려 박스 지역에밀집수비를 구축할 경우에는 미드필드 싸움에서 손쉽게 주도권을 내주게되더라도, 바르셀로나 공격수들이 스피드와 개인기를 활용할 만한 공간을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차단할 수 있어 전자의 방법에 비해 실점 확률을 크게낮추는 것이 가능해진다. 흔히 말하는 선수비 – 후역습이다. 이는 바르셀로나 못지않은 강팀들 입장에서는 일종의‘자존심’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다.전통과 역사를 갖춘 명문팀들의 감독들은 그 어떤 팀과 상대하더라도 뒤로물러서지 않고 자신들 고유의 축구로써 승리하길 원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는 그러한 방법이 매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시즌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조차 전자의 방법보다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했다. 당시 퍼거슨 감독은 종합 스코어 1-0(1차전 0-0, 2차전1-0)으로 승리하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음에도 불구, “호날두와루니까지 몸을 던져 수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승리를 위해자신들의 축구를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축구역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만을 기억할 뿐, 이러한 뒷 이야기들까지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전자의 방법을 고수하며 용기 있게 자신들의 스타일을 관철시킨 팀들도적지 않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현 레알 마드리드)이 이끌던세비야가 강력한 압박에 이은 측면공격을 앞세워 2006년 UEFA 슈퍼컵에서바르셀로나를 침몰시킨 바 있다. 이것은 조제 무리뉴 감독 시절의 첼시가 활용해온 고유의 바르셀로나 상대법이기도 하다. 무리뉴 감독은 말한다.“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여러 명의 공격숫자를 가동시키며 적극적으로공격 위주의 경기를 펼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공격의지마저 버린다면 무승부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최소한의 공격의지란 지나치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최대한바르셀로나 진영과 가까운 지역에서 상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는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올 시즌 바르셀로나에게 가장 위협이 될 만한 팀의 이름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조제 무리뉴 감독이이끄는 또 하나의 팀, 이탈리아 챔피언 인터 밀란이다.인터 밀란은 08/09 시즌 전반기를 리그 선두로 마감하며 쾌속행진을거듭하고 있지만, 무리뉴 감독과 선수들을 둘러싼 언론의 평가는 호의적이지않다. 그 이유는 경기 내용 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빈도가 기대만큼 높지않기 때문인데, 그 외에도 콰레스마와 만시니 양날개를 앞세운 무리뉴감독의 4-3-3 전술이 좀처럼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어 여름 영입또한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인 것도 원인 중 하나다.이처럼 자국리그에서 중하위권 팀들의 밀집수비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하며 조금은 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뉴감독의 인터 밀란은 자국리그보다 다가오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챔피언스리그의 강팀들은 세리에A 중하위권 팀들과 다르게 인터 밀란을 상대로도수비 일변도로 움츠러들지 않고 보다 넓은 공간을 열어두고 공격적인경기를 펼친다. 이는 강력한 압박에 이은 역습을 주무기로 하는 무리뉴감독의 축구가 보다 위력을 뿜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로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매니저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프랑코 발디니는 현재의 인터 밀란을 가리켜“피지컬적인 측면에서 마치 탱크와도 같은 팀”이라 표현했다.
캄비아소, 비에이라, 사네티, 문타리, 스탄코비치 등이 포진하고있는 인터 밀란의 미드필드진은 기술적 정교함 면에서는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 비해 떨어질지언정, 상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능력만큼은 보다우위에 놓여 있다. 만약 인터 밀란이 유럽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르셀로나와 충돌하게 된다면, 무리뉴 감독은‘압박’으로 승부수를 던질게 분명하다. 실제로 무리뉴 감독은 첼시 시절 마켈렐레와 에시앙등을 앞세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그것을 해낸 바 있다.미드필드진의 압박이란 측면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베니테스 감독의 리버풀 역시 바르셀로나를 크게 괴롭힐 수 있는 상대로 손꼽힐 만하다. 또한 베니테스 감독의 리버풀은 무리뉴 감독 시절의 첼시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를 챔피언스리그 탈락으로 몰아넣었던 ‘전과’를 갖고있는 팀이기도 하다. 리버풀은 흔히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축구를 펼치는 팀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실제로 리버풀 축구의 밑바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수비축구가 아닌‘그라운드 전 지역에 걸친 압박’이다. 마스체라노,제라드, 알론소와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은 물론, 리버풀 선수들은 모두가 90분 내내 쉬지 않고 그라운드 위를 폭넓게 움직이며 상대를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압박한다. 아무리 상대의 압박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리버풀과 같은 팀을 상대로는 특유의 테크닉을 100%에 가깝게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바르셀로나 킬러’페르난도토레스의 존재다. 토레스는 고향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던 시절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통산 7골을 성공시켰고, 특히 누 캄프 원정에서만 4골을 기록해‘바르샤 킬러’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본인 스스로도“누캄프에서 경기할 때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고 자신감을 나타낼정도로 바르셀로나만 만나면 펄펄 날아다니는 토레스가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폭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비록 2~3년정도의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토레스는 여전히 바르셀로나에게있어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그 밖에 유벤투스와 첼시 역시 압박이란 측면에서 강점을 나타내는팀들로 꼽힐 수 있으나, 유벤투스의 경우 중앙 미드필더들의 볼소유권을 유지하는 능력이 인터 밀란, 리버풀 등에 비해 눈에 띄게부족해 바르셀로나를 상대할 경우 주도권 다툼에서 열세에 놓일 가능성이크다. 첼시는 스콜라리 감독의 색깔이 아직 100%에 가깝게 녹아들지 못하고있어 과도기적인 시기에 놓여 있다는 평이 대세다. 이를 감안했을 때 인터 밀란,리버풀만큼 바르셀로나와 호승부를 연출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국내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우승팀이자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이기도 한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바르셀로나와 다시 한 번 정면충돌할 경우승부의 향방이 어떻게 판가름 날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특히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와 맨유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정상 컨디션으로 맞대결을 벌이게 된다면, 이 역시 세계 축구계를뜨겁게 달굴 만한 화젯거리다. 다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지난 시즌에 비해 전반적인 팀 컨디션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데다긱스와 스콜스가 부상 및 체력저하 등의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또한나니와 안데르손은 여전히 덜 여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하그리브스는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통보 받았고 테베스, 호날두, 베르바토프의 컨디션 역시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절정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와 맞붙을 경우 두 팀 간의 경기는 지난 시즌과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최근의 컨디션만을 기준으로 놓고 본예상으로서 2~3달쯤 뒤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평가 및전망이 눈에 띄게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올 시즌의 바르셀로나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리오넬 메시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의 모든 팀들의 수비를상대로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을 만한 막강 화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외에도 폭넓은 로테이션 시스템의 가동과 함께 여러 주축 선수들이체력을 비축하며 시즌을 운용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과르디올라감독은 매 경기 다른 라인업을 가동시키며 5~6명의 선발 멤버를 교체시키고있고,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그 조직적 완성도는스타 선수들의 개인기만큼이나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이러한 로테이션시스템 운용의 성공은 선수들의 체력안배 여부에 따라 그 행보가달라지는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도드라질 것이다. 물론, 챔피언스리그우승은 전력의 완성도나 선수층의 두터움, 혹은 좋은 컨디션의 유지만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운’과 같은 경기 외적인 요인도 뒤따라줘야 할 필요가 있다. 올시즌의 바르셀로나가 현재까지 유럽 최강의 면모를 보여주고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바르셀로나가 올 시즌챔피언스리그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사실에는 쉽게 이견을 달기어려울 듯 보인다. 글/ 이형석 <사커라인>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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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형석(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