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길들여진 시장

2013.07.22GQ

빠르게 부푸는 덩치와 겁없이 늘어가는 옵션엔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소달구지가 따로 없어요. 승차감이 어찌나 엉망인지 차에서 내리니까 뇌가 다 흔들거리더라고요.” 최근 한 독일 브랜드의 SUV를 시승한 지인의 푸념이었다. 그는 막연하게 물침대처럼 말랑거리는 승차감을 좇는 소비자가 아니다. 그 반대다. 하체가 단단한 차가 주류인 유럽에서 청춘을 보냈다. 한 국산차 업체 설립에 실무자로 깊숙이 관여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문제의 차를 타봤더니, 과연 그의 지적엔 과장이 없었다. 충격을 제대로 거르지 못했다. 요철을 지날 땐 진동이 여진처럼 남았다. 뒷좌석 승차감은 절망적이었다. 19인치나 되는 휠이 원인이었다. 장르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웃돈을 얹어야 달 수 있었다. 해당 차종의 최고급 트림에 기본으로 포함된 까닭이다. 돈 들여 불편을 자청하는 셈이다.

특정 차종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위 트림의 차는 으레 더 큰 휠을 끼운다. 흔히 말하는 광폭 타이어인데, 옆에서 보면 타이어가 워낙 얇아 띠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단점이 나뉜다. 보기에 근사하고 접지력이 좋지만 승차감과 연비가 떨어진다. 하지만 ‛고급차=큰 휠’의 빤한 공식엔 변함이 없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한 술 더 뜬다. 세단에 20인치, SUV엔 21인치 휠을 거리낌 없이 끼운다. 대다수 소비자는 상위 차종을 골랐다는 이유로 큰 휠을 강요받는다. 슬며시 끼워 넣은 비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치른다.

불필요하게 커지는 건 차체도 마찬가지다. A씨는 최근 10년 이상 타던 쏘나타를 팔고 아반테를 샀다. 원래 신형 쏘나타를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지레 겁을 먹었다. 확연히 부푼 덩치가 부담스러워서였다. 마침 옆에 전시된 아반테는 구형 쏘나타에 딱히 뒤지지 않는 크기였다. 요즘 차는 신형으로 거듭날 때마다 의무라도 되는 양 몸집을 키운다. 길이와 너비는 늘리되 높이는 낮춘다. 공간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한편 더 나은 비율로 빚기 위해서다. 이 같은 밀리미터 단위의 진화가 몇 세대를 거치면 차급을 넘볼 수준이 된다. 요즘 준중형 차의 체격은 과거의 중형차 뺨친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1970년대 폭스바겐 골프는 지금의 폴로만 했다. 1990년대의 BMW 5시리즈는 딱 지금 3시리즈만 했다. 따라서 아담한 차를 원하는 이의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마지노선인 경차마저 쑥쑥 커지는 중이다.

옵션도 비슷한 경우다. 한땐 전동식 창문, 파워 스티어링, 자동변속기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젠 기본이다. 천연가죽 시트와 파노라마 선루프마저 흔해졌다. 덩치와 옵션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다. 과연 소비자가 원한 결과였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담백하게 기본기만 갖춘 차를 더 이상 만나보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기술의 상향평준화, 플랫폼 및 핵심 부품 공유는 각 차종별 개성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 현대와 기아차의 벤치마킹 대상은 독일차다. 특히 아우디 출신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가 개혁을 이끈 기아차의 진격이 눈부시다. 스포티지 R의 시트, K7의 테일램프는 노골적으로 아우디를 베꼈다. 심지어 K9이 요철을 넘을 때 ‘텅텅’ 내는 소리 또한 영락없는 아우디다. 현대차도 다를 게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기계적 본질은 같다고 보면 된다. 뼈대와 주요 부품, 기술을 나눠 쓰니 당연한 결과다. 기존 독일차 오너가 현대 i40와 i30를 몰아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현대차가 얼마나 집요하게 독일차의 특성을 분석해 담아내려 노력했는지. 하지만 시장 지배적 위치의 업체가 다소 편향된 색깔로 물들어 가는 건 우려스럽다. 현대기아차의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이제 80퍼센트마저 넘어섰다. 게다가 두 브랜드는 현재 18개인 플랫폼을 향후 6개로 확 줄일 계획이다. 그만큼 비슷한 내용, 다른 포장의 차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수입차의 쏠림현상은 한층 심하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등 판매 상위권은 죄다 독일차다. 브랜드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독일차의 부상은 예상된 결과였다. 디자인과 성능, 품질에서 남다른 입지를 다진 탓이다. 기본에 충실했고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전 세계 소비자의 입맛과 눈높이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젠 미국차와 일본차마저 독일차 따라잡기에 여념 없다. 저만의 색깔을 당당히 드러내고 지켜가는 차는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업체 정도다. 하지만 이런 유행이 왜 유독 한국 시장에서 강렬하고 치열한진 여전히 의문이지만.

언젠가부터 프랑스차의 쫄깃한 조향성, 영국차의 꿈결 같은 승차감, 이태리차 특유의 조형감각이 마이너리거의 취향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유격 머금은 운전감각, 낭만 깃든 디자인은 효율의 가치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부푸는 덩치와 겁없이 늘어가는 옵션엔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우리가 보편적이고 이상적이라고 믿는 자동차의 가치가, 일부 업체에 의해 강요된 취향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 볼 때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Lee Jae 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