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제 4할을 이야기하련다

2009.07.10GQ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두 선수가 4할을 기록하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건 4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안됐다. 계산기를 분해하기 전 까지, 대단하다는 찬사는 참았다.

타율은 타자의 능력치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격언은 든든한 배경이 된다. 하지만 이 말은 다큐멘터리가 객관적이라는 주장과 비슷한 수준에 머문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숫자를 거머쥐고 있는 사람들도 선택적이다. 보여주고 싶은 숫자가 있고 보여주기 싫은 숫자가 있다. 그러나 보이는 숫자보다 보이지 않는 숫자를 보는 게 더 정확한 지평인 경우도 많다. 때로는 불완전한 격언 뒤에 덧붙이는 농담이 더 온전한 진실을 말한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말쟁이가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전설적인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지적했다.“어떤 내용을 기록의 대상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이미 통계로 나타내고자 하는 방향이 결정돼 있다.”거짓말쟁이가 숫자를 남용하는 비결이다. 타율은 안타수를 희생타, 희생번트, 몸에 맞는 볼, 볼넷을 제외한 타수로 나누어 구한다. 타율은 연봉과 밀접하다. 3할 타자는 비싸다. 지난해 타율 1위 김현수는 연봉이 200% 상승했다. 투수 김광현을 제외한,2009년 최고 인상률이다. 4할은 연봉보다는 명예 쪽이다. 김현수와 페타지니가 개막 후부터 지금까지 기록하고 있는 4할은‘꿈의 숫자’로 불린다. 시즌 타율 3할의 수위 타자도안타 하나 못 치는 경기가 빈번한 게 야구니까 말이다. 4할은 백인천 이후 한국 프로야구에서 28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백인천의 경우도 250타수만 기록했기에 달성 가능했다는 견해도 있다.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거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41년의 테드 윌리암스 이후 없었다. 당시의 메이저리그 또한 희생타를 타율에 포함시켰다는 특이사항이 있다. 일본 리그에서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이치로가 2000년에 기록한 0.387이 최고다.

하지만 4할대 타율을 점하며 타율 1위와 2위를 앞 다툼하는 김현수와 페타니지를 최고의 타자로 부르기 위해, 득점권 타율로는 그 둘을 앞서는 박용택이 세 번째라고 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그들이 OPS(출루율+장타율)와 타점, 안타에서 모두 박용택을 앞서 있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의 타수가 더 적다는 사실도 언급되어야 한다. <베이스볼+>의 김형준은 말한다.“ 타율이 높다고 훌륭한 타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가장 먼저고, 대표적인 지표이긴 하지만,OPS나 RC(득점 생산 능력)가 떨어진다면 기여도는 또 다른문제거든요. 타율이 높아도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이 시원찮으면 그것도 좋은 타자라고 할 수 없고요.”아직 전반기도 끝나지 않은 시점이다. 통계는 충분히 누적되었을 때만 유효하다는 전제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이 복잡한 양상이 말해주는 건 결국 타율 하나가 ‘최고’라는 가치 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최고’는 언론이 좋아하는 단어다. 언론은 명예와 공생한다.명예 앞에 최상급의 숫자까지 붙으면 언론은 급격히 수월하게 일을 한다. ‘페타지니, 4할 타격 비결은?’‘가능, 불가능, 꿈의 4할 타자에 대한 시선’‘김현수, 4할 타자야!’‘꿈의 4할, 여름이 고비’‘4할 타자 페타지니-김현수위기 탈출에도 선봉’…. 4할 타자에 대한 기사 제목들이다. 숫자에 기대면 최고는 쉽게 만들어진다. 쉬우니까 계속해서 만든다. 최고란 4할을 넘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선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계량 경제학을 연구하는 배기준 연구원의 말이다.“역으로 얘기하면, 사람들은 한 타자가 지난 다섯타석에서 못 쳤기 때문에 다음 타석에서도 못 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확률은 변할 거라는 기대 심리를 갖고 있죠.” 스포츠에서 사람들의 심리는 이렇게 작동한다. 언론이 부채질하고 있는 건 이런 긍정이다. 간단한 숫자 하나가 개인 앞에 놓여 최고로 칭송되는 사회도 불행하지만, 그 숫자를 선전 도구로 사용하는 언론으로 인해 의심의 여지가 차단되는 사회도 불행하다.

1998년, 인천 방송은 위닝 일레븐으로 프랑스 월드컵결과를 예측하는 취지의 중계방송을 했다. 선수들의 면면과능력치를 최대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맞췄다고 했다.하지만 통계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통해 나와도 부족한 게 확률론적 예측이다. 그것을 오락의 차원에서 다룬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사람들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제작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지금 언론이 기록을 대하는 태도가 10년 전의 위닝 일레븐 중계와 얼마나 다르다 할 수 있을까. 기록은 과거에 대한 정보로서 유용하다. 미래를 예측한다면 확신보다는 의심이 되어야 정답에 가까운 법이다. 가능성은 얼마나 큰 확률을 지녔던 간에 불확실함을 내포한다. 통계에 대한 확신은 아마추어 도박사들이 확률을 대하는 방식이다. 메이저 리그에는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극단적인 확률 중독자들이 있다. 세이버 매트리션이라 불린다. 과학적인 통계로 야구를 이해하는 이들이다.

널리 알려진 빌 제임스 같은 세이버 매트리션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대입해 ‘피타고라스의 승률’이라는 기상천외한 승률 계산법도 만들었다. 4할 타율을 예측할 만한 지표는 어디 없을까? 그 지표를 김형준은 ‘BABIP’에서 본다.“파울 볼이 아닌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을 나타내는 지표예요. 홈런을 제외하고요. 타구는 불운과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도 감안한 겁니다. 수치가 낮을수록 운에 따른 기록이 아니라는 거죠. 4할이 넘는 타자가BABIP가 낮다면 기록 달성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겠죠.” 국내에서 BABIP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그러나BABIP의 부재가 한국 야구의 기록 저변이 미비한 것으로 수렴되진 않는다. 예측은 여전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풀 하우스>에서“4할 타자는 더 이상 없다”고 썼다. 그는 선수들의 타율이 평균타율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를 구해, 1880년부터 1980년까지100 년 동안의 연평균 타율을 표준편차 그래프로 나타냈다.이 그래프에서 평균타율의 변이 정도는 감소 경향을 보였다. 선수들의 타격 기술 향상 덕분에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뛰어난 타자는 옛날보다 많아도4할 타자는 없다는, 그의 결론에 대한 근거는 그랬다.

전문가들은 4할 타율의 관건이 체력이라고 말한다. 4할이 가장 유력했던 1994년의 이종범을 보라는 것이다. 이종범은 22경기를 앞둔 104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다가 체력 조절에 실패해 3할 9푼 1리로 시즌을 마쳤다. 대기록 달성은 구단에도 영광이기에관리해주었을 법도 하다. 실제로 타율은, 쳐야 숫자가 올라가는 홈런이나 안타에 비해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해태는 그해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하면서 이종범의 타율을 관리할 정신이 없었다. 소속 팀이 압도적으로 잘하는 팀이거나 아예 포스트 시즌에 조기 탈락한 팀이 타율 관리에 더 유리하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김현수와 페타지니는 느린 발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경문 감독조차도 “이종범을 보라. 그렇게 잘 치고 발이 빠른 선수였는데도 결국 안 됐다. 김현수와 페타지니는 내야안타가 별로 없다. 순수하게 타격만으로 4할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4할은 쉽지 않다. 김현수와 페타지니가 시시한 선수라서가 아니라 4할이라는 기록이 그렇다. 언론은 김현수와 페타지니의 타율이 떨어지고, 박용택의 타율이 4할로 부상한다면 박용택의 손을 들어줄 거다. 하지만 김현수와 페타지니가 싸우고 있는 건 4할이 아니다. 한 경기에 다섯 타석을맞는다고 했을 때 두 번 이상의 안타를 쳐가면서 133경기를 치러야 하는 시간이다. 전체 5~7% 사이를 기록해야 하는 삼진이다. 4할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4할은 대단하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글/ 김우영(스포츠 칼럼니스트)

    에디터
    글/ 김우영(스포츠 칼럼니스트)
    아트 디자이너
    박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