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보다 처절한 운동선수들의 군대 이야기
“야구계에 그런 말이 있다. ‘입대는 인생의 병살타’라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졸 신인으로 삼성에 입단하고, 병역 혜택까지 받았다면 3천 안타, 500홈런을 기록했을지 모른다. 훨씬 많은 부도 누렸을지 모를 일이고.” 현역 시절‘ 양신’으로 불렸던 양준혁 SBS 해설위원은 5년의 공백이 없었다면 더 많은 대기록을 세웠을 것이라 예상한다. 양준혁이 그랬듯 대부분의 야구선수가 입대를‘ 인생의 병살타’쯤으로 생각한다. 입대로 2년이라는 시간이 늦춰지는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 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다. 프로야구는 월요일을 빼고 매일같이 경기를 한다. 축구, 농구, 배구처럼 일주일에 2, 3경기를 치르는 종목과는 차이가 크다. 따라서 컨디션과 실전 경기 감각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일주일만 쉬어도 타자들이 ‘변화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투수들은‘ 어깨가 뭉쳤다’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도 무뎌진 실전 감각이 곧바로 몸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경기 경험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야구의 특징이다. 축구, 농구는 20대에 절정의 실력을 과시하지만, 야구는 몇몇 투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30대에 전성기가 찾아온다. 전 삼성 김응룡 감독이“ 최소한 500경기는 뛰어야 선수다운 선수가 된다”고 주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되면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병역 기피 현상은 더 심해졌다. 9년이면 충분한‘ 대박의 꿈’이 군에 다녀오면 11년으로 늦춰지기 때문에 선수들은 어떻게 해서든 병역 면제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과거엔 선수가 아니라 구단이 병역 비리에 앞장서기도 했다. 구단 관계자가 병역 브로커와 접촉하고, 구단이 먼저 선수에게 병역 비리의 길을 제시한 적도 많았다. 팀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구단을‘ 어둠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그러나 2004년 현역 선수 56명이 병역 브로커를 통해 불법적인 방법으로병역 면제를 받으려다 발각된 이른바‘ 병풍’사건이 터지면서 야구계의 병역 비리는 수그러들었다. 사건 이후, 병무청에서도 프로야구 선수들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감시의 눈을 부릅뜨면서 웬만한 부상으론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선수들이 주목한 게 바로 국제대회다.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올림픽 동메달 이상이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선수들은 앞다퉈 국가대표가 되려고 애썼다. 그래서 생겨난 신조어가 ‘병역로이드’다.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쓰면 성적이 부쩍 좋아지듯 국제대회가 있는 시즌이면 선수들이 서로 대표팀에 뽑히려고 최상의 성적을 낸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하지만, ‘병역로이드’는 스테로이드처럼 후유증이 컸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으면 다음 해엔 꼭 부진했던 까닭이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병역 혜택을 받은 양현종(KIA), 송은범김강민(SK), 임태훈(두산)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올 시즌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마저도 기회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국제대회라곤 아시아경기대회뿐이다. 그래서일까. 젊은 선수들은 국제대회를 통한 병역 혜택을 더는 바라지 않는 눈치다. 되레 입대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으려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권오준(삼성), 양의지(두산), 박정권(SK)처럼 제대 후 더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가 많은데다, 채병룡(SK)처럼 부상 선수의 경우 군 복무 기간을 재활 시간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홀드왕’ 정우람(SK)이 대표적이다. 병역 미필자인 정우람은 “요즘 야구선수들은 30대 후반까지 현역에서 뛸 수 있다. 군 복무를 휴식 시간으로 삼아 재충전한다면 더 오래 그라운드에 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군에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 양준혁은 입대 예찬론자다. 그는“ 상무에서의 2년이 없었다면 난 3천 안타는 고사하고, 300안타도 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냐? 군에서 야구와 인생에 눈을 떴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프로농구 선수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과제가 바로 병역 문제다.
야구, 축구에 비해서 무게감이 훨씬 크다. 가장 큰 이유는 형편없는 농구의 국제 경쟁력 때문이다. 야구, 축구와 달리 농구는 세계대회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이후, 한국 남자 농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홈코트 이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국제대회 입상으로 군 면제 혜택을 받은 프로농구 선수는 12명에 불과하다. 물론, 상무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상무 농구단 입단은 프로 진출만큼이나 어렵다.
2011년 상무 합격률을 살펴보자. 지난 4월 18일, 상무는 강병현(KCC), 정영삼(전자랜드) 등 모두 8명의 합격자를 발표했다. 반면, 탈락자는 합격자의 2배인 16명이었다. 경쟁률은 3대 1. 만만치 않은 수치다. 상무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선수들은 프로에서 1~2년을 더 보낸다. 하지만 이것도 일부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탈락자들은 방출되거나 현역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역 입대는 사실상 선수 생활 은퇴를 뜻한다. 물론, 김성철처럼 공익근무요원을 거쳐 프로 무대에 복귀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극소수다. “프로보다 상무 유니폼 입는 게 더 힘들다” 는 지적이 따르는 이유다. 상무에 입단하기까지는 여러 관문이 있다. 우선 현역 판정을 받아야 한다. 현역이 아닌 4급이나 면제 판정을 받으면 상무 입대 자체가 안 된다. 또한, 군 입대 시점과 상무의 로스터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지난 2009년, 주전 가드로 활약했던 이현민(당시 창원 LG)이 상무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현민은 신인왕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유망주였다. 하지만 당시 상무에는 가드 자원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 바람에 단신인 이현민은 2년 연속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반면, 현역 입대로 눈을 돌린 선수들도 있다. 2010~11시즌 정규 리그 MVP에 빛나는 박상오(부산 KT), 김동욱(서울 삼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박상오는 지난 2002년, 선수 생활을 접고 현역으로 군에 입대해 보급병으로 만기 전역했다. 훗날“ 군에서도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고 말했지만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농구에 필요한 근육의 움직임을 만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구단 트레이너는 “일반병으로 입대했다가 제대한 선수들은 실전 감각을 되찾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근육량이 크게 줄어들고 몸도 둔해진다” 고 전했다. 사실, 현 시스템에서 농구선수들이 병역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키가 특출하게 크거나 압도적인 실력을 지니는 것 외에는 말이다.
한 상무 관계자는“ 국가대표로 뛴 경험이 있거나 주축으로 활약하며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 선수에게 가산점을 준다” 고 말했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아직 많은 것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는 어린 선수들이 코트 밖으로 내몰리는 이유다. 해마다 약 30명의 신인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하는데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어린 나이에 쓸쓸히 코트를 떠나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찰청 창단이다. 상무 농구단 엔트리가 18명이나 되는 만큼, 더 이상 로스터를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2~3년 전, 상무 농구단 해체설이 나돌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상무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야구처럼 경찰청 농구단을 창단한다면 농구선수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갈증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KBL과 KBA의 꾸준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경찰청 야구단이 어떻게 창단했는지, 한국프로연맹과 대한야구협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농구선수들의 병역 이슈에 대한 가장 가까운 정답은 상무나 경찰청 같은 아마추어 농구단의 활성화다. 2년 동안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거치고 실전 감각까지 유지할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입영 통지서를 기다리는 농구 청년들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부디, 그들의 꿈이 20대 초중반에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현일(“루키” 편집장)
축구선수들의 병역에 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는 세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지동원의 선덜랜드 입성이요, 다른 하나는 K리그를 강타한 승부조작 사건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앞의 두 가지에 비해서는 그리 입소문 나지 않은 일이다. 지동원의 선덜랜드행을 두고 병역을 필하지 않은 그가 해외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어떤 이는“ 군대부터 다녀온 후에 진출을 모색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동원 연령의 선수가 눈앞에 찾아온 큰 무대 진출의 기회를 날려버릴 이유는 없다. 그가 아주 젊기 때문이다. 91년생 지동원은 이제 만 20세가 됐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상무는 만 27세, 경찰청은 만 30세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적어도 7년이라는 시간이 있고, 사실상 이 기간은 지동원이 유럽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다. 한창 뛸 수 있는 27세에 돌아와야 한다는 걱정거리가 남기는 하겠지만, 지금의 기회를 자진 반납했을 때 당장 2, 3년 후 비슷한 기회가 찾아올 수 있을 거라 그 누가 보장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지동원 수준의 유망주라면 지금쯤 커다란 도전에 나서는 것이 최근 세계 축구의 추세를 고려할 적에도 괜찮은 선택이다. 메시, 호날두, 루니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 선수들의 절정기가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는 양상이고, 어쩌면 지동원에게도 바로 지금이‘ 선수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따라서 약관의 지동원에게“ 군대 안 갔으니 나가지 마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유럽에서 원 없이 뛰어보고서 박수를 받으며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최상의 결과가 될 수 있다. 승부조작은 유감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에 전, 현 상무 선수들 다수가 연루됐을 뿐 아니라 지도자까지 치졸한 행위를 했다는 소식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군 팀인 상무가 이 정도로 관리가 안 된데는 여러 가지 관행과 시스템 상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선수들의 상무에 대한 기본 인식 문제다. 상무를‘ 대충 시간 때우며 부업이나 하는 곳’처럼 생각해온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태의 출발점일 수 있다. 사실 상무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은 축복받은 이들이다. 상무가 축구선수라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 주전 내지 적어도 1.5군 이상에 드는 선수들이 상무 유니폼을 입는다. 어려서 축구를 시작한 이들 가운데 여기까지 도달한 선수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축구계의 1퍼센트’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상무의 선수들은 자신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무수히 많은 다른 축구선수들 때문에라도 이 기간을 잘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운동선수가 승부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다. 상무 사건과는 판이하게, 축구선수의 병역에 관해 새로운 길을 제시한 사례도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내셔널리그 선수권에서 경찰청 소속으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인 김두현이 그 주인공이다‘. 경찰청 역대 최고의 선수’ 김두현은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입지의 선수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여러 가지 배움을 얻고 있는 중이다. 박사학위 소지자 김두현은 지금의 경험이 향후의 지도자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또한 그는 임기를 마친 이후 다시금 최고 레벨의 축구를 선보이리라 다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전성기를 누리는 운동선수들의 입장에서 병역은 틀림없이 커다란 고민을 안겨주는 문제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에 관해 가장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바람직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태도가 절실한 요즈음이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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