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뉴진스부터 환승연애까지 올해 화제의 컨텐츠 15

2022.12.03김은희

뒤돌아봐도 선명한 올해의 이야기들.

올해의 식사 <김밥>
우영우는 아침마다 김밥을 먹는다. 우영우가 이르길, 김밥은 먹음직스럽다.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에 놀랄 일이 없다. 0.9퍼센트 시청률로 출발한 신생 채널, 드라마 데뷔 작가의 작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어떻게 최고 시청률 17.5퍼센트를 기록했나. 수치로 설명할 수 없이 퍼져나간 밈과 펼쳐진 담론의 장은 무엇에서 기인했나. ‘우영우’는 관행은 깨뜨리고 요행은 비켜갔다. 향한 곳은 드라마 본연의 우직한 힘. 젓가락질이 멈출 리 없었다.

올해의 시선 <제임스 웹>
현재 시각 2022년 어느 월요일 오후 8시 51분. 지금 보이는 저 별빛은 최소 2018년, 혹은 뺄셈도 힘든 수억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은 들을 때마다 머리를 백지로 만든다. 어떻게? 왜? 우주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떠할까. 그 답을 인류 최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이 찾아 나섰다. 적외선 관측에 특화된 덕에 이전의 그 어떤 망원경보다 더 멀고 깊은 우주를 응시한다. 목표는 1백38억여 년 전의 미지. 빅뱅, 우주 대폭발의 시작점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webb.nasa.gov

올해의 10대 <뉴진스>
생머리와 함께 “Looking For Attention”을 외는 목소리가 흩날릴 때 헤겔의 변증법이 또렷해졌다. 이들을 발굴하고 데뷔시킨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쉽게 풀어한 설명을 옮겨 적는다. “기존의 정正이 있으면 그에 반하는 반反이 있고, 그 다음 단계에 합合이 있어요. 이전 (아이돌) 그룹의 반反이 무엇일까 생각해요.” 과한 분장, 과잉인 의상, 과열된 무대, 과장된 모습. 이 모든 것의 반대점에 이들이 있다. 지금 가장 자연스러운 10대 그 자체, 이름하여 뉴진스.

 

올해의 반주 <성시경>
내장탕, 뭉티기, 스지, 도가니탕···. 3월부터 현재까지 여덟 달 동안 56곳, 성시경이 유튜브 콘텐츠 ‘먹을텐데’를 위해 누비는 식당과 즐기는 메뉴는 호불호와 선호도가 나뉠 수 있지만, 식사와 함께 술을 곁들일 때의 그의 반주 예법은 누구든 한 번쯤 눈여겨보면 좋겠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음식만큼 술도 천천히 음미할 것. 때로는 맨입에 술만 조금 홀짝이고 향과 맛을 즐겨볼 것. 안주에 기대 주량을 넘길 만큼 과음하지 않을 것. 무엇보다 “아무거나 (가게 냉장고에) 제일 많이 남아있는 브랜드로 주세요”, 다양한 술을 즐겨볼 것.

올해의 일시정지 <카카오>
데이터센터가 정전됐다. 카카오가 멈췄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가지 않고, 카카오 택시가 잡히지 않고, 카카오 내비가 먹통이 되고, 카카오 페이로 결제할 수 없고, 카카오모빌리티 공유 킥보드의 요금이 혼선됐다. 모든 것이 카카오 카카오 카카오. 멈춰 서니 보인다. 시나브로 카카오에 젖은 일상. 한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은 달걀만이 아니었다. 그러니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일상을 방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 당신의 일상을 분산하거나 카카오가 서버를 분산하거나.

올해의 오프닝 <탑건: 매버릭>
<탑건: 매버릭>의 오프닝 신은 <탑건>이 개봉한 그날, 1986년 5월 16일로 데려다놓는다.(심지어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후대의 관객들까지도.) 바다 위 항공모함에서 이함을 준비하는 장면, 그 장면에 흐르는 해롤드 팔터마이어의 ‘Top Gun Anthem’과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 배경도 음악도 모두 그대로다. 타임머신에 앉으면 이런 기분일까. “이 영화가 <탑건>이라는 사실, 우리도 여러분만큼 <탑건>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라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포문이 파라마운트 역대 최고 흥행을 이끌었다.

 

올해의 문학 <허준이>
숫자에 깃든 낭만을 수학자 허준이를 통해 엿본다.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최고 권위의 상인 필즈상 수상 소감으로 표한 그의 여러 마음에 밑줄을 그었다. “시와 수학은 기질적으로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대상을 고도로 함축해 강력한 상징을 만들죠.”, “수학자는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는 최후의 사람들이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올해의 도시 <산포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에 1시간 30분씩. 운 좋으면 1시간.될대로되라는심정으로막차끊긴심야 도로를 택시로 내달리면 40분. 서울과 산포를 오가는 삼남매의 지독하고 고독한 시간이 겹치는 과거 ‘산포시’ 주민으로서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했더랬다, <나의 해방일지>를. 통근·통학을 위해 서울로 이동하는 인구는 2021년 기준 1백43만6천 명.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산포시의 염미정은 서울에 들어가기 전 이 전광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했는데, 1백43만 여 명의 통근자는 무엇을 바라보며 해방을 꿈꿀까.

올해의 헤어스타일 <임윤찬>
컨버스를 신고 페달을 밟는 피아니스트.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다는 기록만 남은 신라시대 가야금 연주자 우륵을 떠올리며 연주하는 음악가. 만 18세에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임윤찬의 이야기다. 특히 6월 17일에 열린 파이널 라운드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무대 영상, 그중에서도 막바지 42분 31초대의 순간을 숨죽여 기다려보길 바란다. 타오르듯 몰입하다 절정을 맞아 뻗쳐나가는 머리칼이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 같다.

 

올해의 한마디 <마침내>
앞서 꼽은 ‘올해의 문학’ 수상자인 수학자 허준이가 미국에 살며 “굉장히”라는 부사를 자주 쓰는 자신의 언어 습관에 대해 평하기를, 어휘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나가야 유지되는데 몸에서 자꾸 한국어가 빠져나간다 했다. 깨진 모래시계의 모래마냥 속절없이 한국어를 흘려보내는 것은 여기 한국에 사는 한국인도 매한가지라서,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헤어질 결심>에서 빚어낸 아름다운 어휘를 마주했을 때, 그만 “나는 붕괴됐어요”, “마침내”.

올해의 엔딩 <다큐멘터리 3일>
설탕물로 배를 채우고 박스 줍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던 카메라 감독에게 할머니가 품고 있던 요구르트를 건네던 그 순간, 눈물이 터진 사람은 카메라 감독만이 아닐 것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같고도 달라서 <다큐멘터리 3일>이 담은 72시간, 3일의 면면은 눈물겹기도, 흐뭇하기도, 애처롭기도, 벅차기도 했다. 716부작, 총 51만 5백52시간의 ‘다큐 3일’이 1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찰나였다.

올해의 그림 <나나의 타투>
2022년 9월 20일 영화 <자백> 제작보고회가 끝나고 남은 흔적은 나나의 왼쪽 어깨에 내려앉은 거미줄, 오른쪽 다리에 새긴 ‘1968’, 왼쪽 발등에 올린 십자가, 등에 핀 꽃, 양팔에 날아다니는 새, 온통 나나의 타투 이야기였다. 지워지는 스티커예요? 헤나예요? 왜 그렸어요? 무슨 심경의 변화예요? 나나에게 자백을 강요한 다수에게 한 가지만 되묻고 싶다. 왜 그렇게들 오지랖이세요? 그런데 나나씨,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어디서 했어요? 추천 좀요.

 

올해의 선발 <김신영>
<전국노래자랑>으로 34년 동안 시민의 무대를 이끈송해선생을이을만한넉살좋고친근하며 입담 좋은 인물이 누가 있나? 대부분의 시선이 중장년의 MC 후보를 훑을 때 김신영이라는 이름이 솟아났다. 맑은 샘물처럼. 세대 교체, 여성 희극인의 무대, 시대 변화처럼 편 나누기 쉬운 관념적 이유는 쓸어내고, 오직 김신영이란 이름을 추천한 KBS 김상미 CP가 전한 연유는 단순명료하다. 무대 경험이 풍부하니까. 딩동댕.

올해의 듀오 <이정재 & 정우성>
누군가 동업의 교본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이정재와 정우성을 보게 하면 되지 않을까. 1999년에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친분을 다진 두 배우 사이에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있다. 여전히 서로 존댓말을 한다, 옆집에 살며 자주 왕래한다, 항상 북돋워준다. 그 사이에서 돋아난 신의 성실한 우정은 23년 만의 합연인 영화 <헌트>에 진하게 묻어 있다. 첫 연출작이라는 사실이 놀랍도록 안정적인 이정재의 연출에, 극 중 캐릭터 김정도의 옷을 마침맞게 입은 정우성이 힘을 더한다.

올해의 실화 <환승연애>와 <나는 솔로>
사랑이 뭐길래 겨우 헤어진 연인 앞에 다시 앉게 하나. 사랑이 뭐길래 질투에 입이 삐뚤어지게 하나. 사랑이 뭐길래 고작 7일 만에 7년 치 희로애락을 쏟아내게 하나. 사랑이 뭐길래 그럼에도 제정신인 척 말쑥한 척하게 하나. 사랑이 뭐길래 파열한 수도관처럼 결국 눈물 흘리게 하나. 사랑이 뭐길래 너의 추억도, 나의 시간도 떠올리게 하나. 넘치게 쏟아지는 남의 연애 얘기가 지겨워 귀를 막다가도 빼꼼 돌아보게 되는 이유. 사랑이 뭐길래.

피처 에디터
김은희
아트워크
김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