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부르는 날씨. 서울 구석구석엔 맛있는 김밥집이 넘쳐난다.
1. 구의동 줄줄이김밥
분식집이었지만 김밥이 유명세를 타면서 아예 김밥 전문으로 나섰다. 식탁이 있어야 할 가게 한복판에 김밥을 마는 작업장까지 차렸다. 유달리 두툼한 달걀 지단이 김밥 맛을 부들부들 살린다. 가게가 동서울 터미널과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맷돌처럼 딱딱한 김밥을 먹으며 고향에 갈 일은 없었을 텐데…. 2천원.
2. 동교동 찰스 숯불김밥
아무래도 마포구엔 숯불구이의 기운이 흐르는 게 분명하다. 숯불 향이 배어 있는 고기를 넣은 숯불김밥을 파는 이 분식집도 신촌과 홍대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밥은 최대한 적게, 채소와 술불 향이 나는 고기는 터질 듯이 넣는 게 맛의 비결이다. 그래서 입에 넣으면 고기쌈처럼 푸짐하고, 한 줄로도 배가 부푼다. 4천원.
3. 압구정동 나드리김밥
송파동의 작은 동네 김밥집이었던 곳이 백화점 바이어의 눈에 띄어 현대백화점 지하에 입점했다. 양손에 일정하게 힘을 주며 꼭꼭 다져서 만 옹골찬 김밥 덕에 매출도 끝내준다. 김치나 유부 같은 속 재료는 김으로 한 번 더 싸서 말아 색이 번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맛도 역시 모범생처럼 말끔하다. 3천5백원.
4. 용문동 싱싱나라
이름에서 단박에 알 수 있듯이 이전엔 부식가게였던 김밥집이다. 부부가 만드는 김밥이 인기를 얻으면서 용문시장 사거리에 있는 이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이목이 사방에서 쏠려 ‘줄 서는 김밥집’으로 통하게 됐다. 우엉 없는 김밥은 거들떠도 안 볼 이들이 환영할 맛이다. 1천5백원.
5. 서초동 스쿨푸드
굳이 ‘마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구별짓지 않아도 이곳의 김밥은 특색 있다. 강남 일대에서 김밥으로 이렇게까지 가게를 키운 점, 베이컨, 케이준치킨, 오징어 먹물, 스팸으로 입맛 당기는 김밥을 개발한 점, 여자 손님이 넘치는 분식집을 만든 점, 깊은 밤 허기가 질 때마다 떠오르는 김밥을 만든 점…. 7천5백원.
6. 제기동 고대앞 멸치국수
국수와 파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지만, 국수와 김밥도 잊지 못할 조합이다. 이 집에서 파는 매콤김밥은 입 안이 ‘화’해질 정도로 화끈하게 볶은 어묵을 넣는다. 매울 땐 멸치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마시면 개운하다. 김밥 속엔 독특하게 깻잎 대신 상추가 들어가는데, 역시 매운 맛을 시원하게 감싸준다. 3천5백원.
7. 광장시장 마약김밥
별칭처럼 부르던 김밥이 이젠 이름이 됐다. 위치를 찾기 어려워 광장시장 골목의 지도를 그리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일본인 관광객들도 찾아와 사먹는다. 그래도 알쏭달쏭하게 입맛을 당기는 매력은 여전하다. 맛은 역시 이것저것 더하고 보태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김밥 한 줄로 알게 된다. 2천5백원.
8. 봉천동 진순자김밥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세를 누리는 김밥집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이 김밥 말기, 지단 말기, 썰기로 담당을 나눠 늘 분주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두께가 병뚜껑만 한 작은 김밥을 달걀 옷이 따뜻하게 감싸는 맛이 별미인데, 먹다 보면 양이 푸짐한 데도1인분 가지곤 어쩐지 모자라게 느껴진다. 4천원.
9. 방배동 서호김밥
카페 골목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김밥집이다. 올해로 문을 연 지 딱 20년이다. 인기 비결은 꼼꼼하게 김밥을 마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로 가늠한다. “요즘에는 웰빙 열풍이 불어서 조미료를 안 쓰는 게 광고거리가 됐지만, 우린 원래 넣지 않았어요. 이 가게를 열고부터 한 번도요. 우린 그냥 재래식이에요.” 3천원.
10. 대현동 이화사랑
이화여대 안에 있는 카페 한쪽에 주방을 만들고 김밥을 팔기 시작한 곳이다. 터질 듯이 참치를 넣은 참치김밥이 제일 인기다. 크기도 엄청나서 이 김밥을 입에 넣은 뒤엔 젓가락으로 꾹꾹 눌러줘야 쉽게 씹을 수 있다. 이대생이 아니라도 맛볼 수 있지만, 한창 신입생들이 넘칠 때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2천2백원.
11. 이수역 포장마차 계란말이김밥
오후 2시쯤부터 문을 여는 이수역 13번 출구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김밥이다. 학생들이 몰리면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동나고 없다. 푹신하고 따뜻한 달걀지단으로 김밥을 둘둘 말고 특제 케첩과 고추냉이 소스를 뿌려 먹는다. 이 맛에 이 가격이라니, 이수역 근처에 살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든다. 1천5백원.
12. 연희동 연희김밥
34년간 김밥 장사를 하신 할머니가 머리를 깨끗하게 묶고 김밥을 만다. 뒷문을 열고 제집처럼 들어오는 단골 손님에게는 맞춤 김밥을 건넨다. 산더덕김밥, 오징어 김밥, 장조림김밥 같은 메뉴는 아이들 먹이듯이 김밥을 만들다가 탄생한 특별식이다. 그래선지 김밥 한 줄을 먹는데 한 상 차려진 밥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3천원.
13. 안양시 비아김밥
안양중앙시장에 가면, 위 크기는 그대로인데 사먹고 싶은 건 무한정이다. 닭강정, 순대곱창, 호떡…. 비아김밥도 놓치면 안 된다. 도매 집이라 가격도 싼데, 그나마도 최근에 3백원이 올랐다. 이곳 김밥은 각 재료의 맛을 꾸밈없이 살리는 것으로 승부한다. 참기름이 재료의 맛을 구수하게 엮는다. 1천3백원.
14. 남가좌동 엄마분식
작고 허름한 동네 분식집이지만 신조는 확실하다.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음식을 내겠다는 것. 이곳의 김밥은 흑미밥으로 만든다. 그래서 맛과 모양이 늘 먹던 밥으로 만들던 엄마표 김밥에 가깝다. 밥도 한꺼번에 많이 짓지 않아 어느 땐 김밥을 먹기 위해 제비새끼처럼 기다려야한다. 2천원.
15. 신사동 부산집
신사동 일대 아귀찜 집에서 팔기 시작한 김밥이 일명 못난이김밥이다. 마산 아귀찜에 비하면 그리 매운 편도 아니지만, 매콤한 그 맛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편으로 맨밥에 김을 뜯어 넣고 주먹으로 한 번 쥔 주먹밥이 등장했다. 김밥을 만드는 아주머니 주먹 크기대로 1초에 4개씩 꽉꽉 쥐어내면 이런 모양이 된다. 2천원.
16. 방배동 해남원조김밥
터질 것 같은 김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햄과 맛살은 없지만 오랫동안 조려 맛을 압축한 유부와 우엉으로 속을 그득하게 채웠다. 자꾸만 손이 가는 짭조름한 맛은 야외에서 먹으면 더 당긴다. 다른 김밥에 비해 단무지가 투명하고 아삭한데, 시판 단무지가 아니라 직접 만들어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2천원.
17. 남대문시장 꼬마김밥
남대문시장 대도상가와 장띠모아 상가 사이에 김밥 좌판이 히나 있다. 출몰하는 시간이 일정치 않고 김밥도 한 ‘다라이’만 팔고 얼른 치우기 때문에 운이 따라야 맛볼 수 있다. 늦은 밤과 새벽녘 사이를 노려볼 만하다. 단무지, 시금치, 당근만 넣었지만 함께 나오는 시래기 된장국과 만나면 맛이 폭발한다. 3천원.
18. 신사동 소망김밥
소망교회 앞에 있어 이름이 소망김밥이다. 일요일이면 하루에 김밥을 몇백 줄씩 판다. 반찬가게도 겸하고 있는데, 깨끗하게 만든 밑반찬과 ‘사라다빵’도 김밥만큼 불티나게 팔린다. 이곳 김밥은 맛이 깔끔하고 가뿐한데, 좋을 쌀로 밥을 짓고 햄과 맛살을 뺀 기본 재료로만 단출하게 만들어서 그렇다. 2천원.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김종현
- 스탭
- 어시스턴트/ 하지은, 어시스턴트/ 유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