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게와 새우를 먹어야만 무르익는다.
1. 캐다나 바닷가재 최근 가격이 폭등한 탓에 어시장 수조 구석으로 내몰렸지만 공룡처럼 두툼한 꼬리와 집게발은 여전히 한 성격 한다.
2. 울진 닭새우 작지만 얼굴과 벼슬에 위엄이 넘쳐서 바닷가재를 봤을 때보다 더 놀라게 된다. 맛도 자존심인 양 탱탱하다.
3. 가덕도 보리새우 빛을 받으면 꼬리가 한복 저고리처럼 화려해진다. 주로 회로 먹는 귀한 새우.
4. 울진 꽃새우 지진파 같은 등 무늬가 뚜렷해 독도 줄새우라고도 불린다. 진짜 이름은 물렁가시붉은새우. 살짝 데쳐 날름 먹으면 혀가 정신없이 바쁘다.
5. 대부도 돌게 배 위에서나, 어시장에서나, 산 채로 고춧가루에 버무리면 양념게장이 되는 짱짱한 돌게.
6. 소래포구 방게 방게는 돌게보다 작고 연약해, 그대로 튀겨서 우두둑 씹어 먹을 수 있다.
7. 동해 털게 바다의 짭조름한 맛이 속속들이 밴 살 맛으론 털게를 따를 게가 없다. 무시무시한 털에 비해 몸통이 깨끗하고 껍질이 연해 찜 쪄 먹기 딱 좋다.
8. 동해 적새우 익히지 않아도 진달래색을 내는 새우. 국물 하나는 끝내주게 우린다.
9. 호주 바나나새우(익힌 것) 색깔 때문에 바나나새우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신기하게도 살에서 바나나 같은 단맛이 돈다.
10. 필리핀 타이거새우(익힌 것) 수산시장 입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잡는 고등어만 한 새우. 호랑이털처럼 보이는 무늬 때문에 타이거새우라고 하는데, 우리말론 얼룩새우다.
11. 서산 흰다리새우(익힌 것) 요즘 잘 잡히지 않는 대하의 왕좌를 차지한 새우. 대하보다 머리 뿔이 짧고 눈알도 튀어나와 있다. 12. 강화 민물새우(익힌 것) 민물새우는 찌개에 넣고 끓여 먹거나 전분을 묻혀 튀겨 먹는다. 새우깡보다 맛있는 술안주.
13. 태국 시타이거새우(익힌 것) 타이거보다 더 커서 시타이거다. 바다는 도대체 얼마나 넓은 걸까?
14. 러시아 킹크랩 어찌나 큰지 이걸 한 번에 넣고 찔 찜통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
15. 서산꽃게 삐죽 나온 다리와 각진 모양 때문에 곶게라 불리던 것이 이름의 어원이다. 하지만 갑각류의 꽃이니 꽃게라고 부른다고 믿어도 좋다.
16. 러시아 대게(익힌 것) 이제 진짜 영덕 대게를 맛보긴 힘들어졌지만, 긴 다리살을 쭉 뽑아 먹는 그 맛은 포기할 수가 없다.
RESTAURANT
게와 새우를 근사하게 즐기는 여섯 가지 방법
1. 경리단길 올리아 키친 앤 그로서리의 꽃게 로제 파스타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함께 찾고 싶은 레스토랑 올리아 키친에선 매일 스무 마리의 꽃게만 접시 위에 올라간다. 새벽마다 서해안에서 올라오는 꽃게의 향긋한 살을 하나하나 발라 파스타에 버무렸다. 크림소스와 토마토소스가 섞인 로제 소스로 새콤함과 구수함도 제대로 섞었다.
2. 신사동 보르드메르의 블루 크랩 프렌치 파이
보르드메르는 해산물 전문 식당이지만 횟집도 아니고 뷔페도 아니다. 싱싱한 생선과 게를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식당이다. 특히 해산물로 만든 전채를 이렇게 알차게 갖춘 곳은 별로 없다. 이 메뉴는 꽃게 살에 치즈와 과일을 넣고 버무린 뒤 파이 위에 올린 것이다.
3. 한남동 도미닉의 해산물 스튜
한남동이 내려다보이는 큰 유리창과 어깨가 들썩이는 음악이 있는 도미닉의 메뉴판은 짧다. 대신 다 맛있다. 바닷가재가 통째로 들어간 이 요리가 있다면 새벽까지 놀고 싶어질지도…. 홍합, 생선, 사프란을 넣고 뜨끈하게 끓인 이 수프는 샴페인과 함께 먹어야 맛이 더 선명해진다.
4. 소공동 조선 호텔 홍연의 싱가포르 소스 꽃게 튀김
중식도 섬세하고 보드라운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매번 요리로 증명하는 홍연은 꽃게 튀김을 이제 막 메뉴에 올렸다. 막 잡아 온 꽃게를 먹기 좋게 자른 뒤 말린 토마토, 두반장 소스, 칠리소스, 케첩을 넣고 만든 싱가포르 소스에 들들들 졸이며 버무렸다. 잇몸을 찌르는 달콤한 그 맛.
5.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 코너스톤의 유기농 타이거 새우 구이
좋은 식재료를 조금씩만 들여놓아 더 믿음이 가는 코너스톤에선 요즘 접시마다 각종 해산물이 그득하다. 이 요리에 쓴 새우도 전 세계를 뒤져 찾은 아프리카 모잠비크산 유기농 양식 타이거 새우다.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를 약간만 뿌려 굽고, 신선한 토마토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6. 신사동 모시모시의 간장 새우
대하장이라고 평범하게 부르기엔 좀 아쉬울 정도로 모시모시의 새우 요리는 기막히다. 간장이 배었을 때 짜지도 퍽퍽하지도 않을 크기의 새우를 고른 뒤 껍질을 까고 과일로 맛을 낸 간장에 끓인다. 3~4일 숙성한 뒤 먹으면 이 맛있는 걸 왜 밥이랑 같이 먹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김종현,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