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는 끝이 없다는 믿음으로, 임시완.
GQ 골프의 ‘18홀’이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는 시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썰’이 있다는 사실 알아요?
SW 오, 처음 들어요. 스코틀랜드니까? 추워서? 어쨌든 굉장히 일리 있는 말이네요.
GQ 맥캘란 컬렉터이자 굉장한 위스키 애호가로 알고 있어요. <바퀴달린집 2>에서 전혜진 배우에게 갓파더 칵테일을 만들어주면서 기주로 라프로익을 넣더군요. 골프에서 자신을 위한 갓파더를 만든다면 기주는 무엇으로 할래요?
SW 골프 하면 로크 로몬드니까, 로크 로몬드 18년.
GQ 건배사는 샬루테 대신 마젤토브?
SW (얼음)
GQ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나저나 아까 영상 찍으면서 퍼팅, 쇼트 게임이 가장 좋다고 했죠?
SW 맞아요. 파5 홀 가면 코스가 정말 길잖아요. 티샷 시작할 때부터 ‘어느 세월에 저기까지 가나’ 싶어서 벌써 걱정이 돼요. 부담되죠. 홀 근처에 다다라서 샌드나 58도 웨지를 잡으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쯤 되면 아무리 실수해도 최소 OB 날 확률은 적어지니까요. 제겐 퍼팅이 잘 맞아요. 계속 쇼트 게임만 했으면 좋겠어요.
GQ “무식해서 용감하다”던 연기 초창기의 정신은 골프에도 적용되던가요?
SW 맞아요, 맞아요. 잃을 게 없으니까, 못해도 그럴 만한 사람이 그런 거니까 괜찮아요.
GQ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요?
SW 골프에 있어선 굉장한 시간을 할애해 열정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반년 이상 필드에 살다시피 하는 분도 많잖아요. 저는 그만큼 하지 않았으니까 못해도 그러려니 해요.
GQ 시간만 있다면 기꺼이 들이고 싶어요?
SW 그럼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경치를 보면서 시간을 오래 보낼 수 있는 스포츠잖아요. 소중한 사람들과 필드에 나갔을 때 적어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저는 민폐죠.(웃음) 80점대, 90대 초반까지는 만들어놓고 싶어요. 아직 ‘깨백’은 못 했어요.
GQ 임시완의 라운딩 상대가 되는 사람들은요?
SW 최근에는 (정)해인이랑 몇 번 다녔어요. (김)수현이랑 골프하러 가자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GQ 함께 라운딩 가는 게 임시완에겐 어떤 의미죠?
SW 요즘 저는 연습생 시절만큼 바쁘게 살고 있어요. 그럼에도 하루를 통째로 골프에 양보한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예요. 라운딩 나가는 상대에게 내 시간을 양보하고,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저에게 시간을 양보하고. 아주 특별한 거죠.
GQ 얼마 전 <유퀴즈>에서 이성민 배우가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갔더니 골프 TV만 보고 계시더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나네요.
SW 그때는 제가 아직 골프를 배우기도 전이었어요. 선배님이 “골프나 한번 쓱 치러 갈까?” 하시더라고요. 선배님이 제 머리를 올려주시기로 약속 하셨는데, 어느 날 지인이 “잔디밥 좀 먹어봐”라며 트리니티 CC로 초대한 거예요. 말 그대로 ‘잔디밥’ 경험 차원에서 갔어요. 제 마음속에서 그건 영혼의 첫 필드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뒤에 이성민 선배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첫
마디가 이랬죠. “(사투리 톤으로) 갔대매?”.
GQ 아하하하. 몹시 섭섭하셨나 보다. 그래서요?
SW “선배님, 죄송합니다” 했죠. 커헣헣헣.
GQ 안 할 것 같지만 묻고 싶어요. ‘구찌’를 하나요?
SW ‘구찌’가 뭐예요?
GQ 역시나. ‘구찌’는 말로 상대방의 멘털을 흔드는 걸 이르는 비속어예요. 그린 위에서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안 들어요?
SW 없어요. 골프에 있어 제 가치관은 그래요. 골프만큼은 경쟁하는 스포츠로 남겨두지 말자. 본업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 굳이 취미까지 누군가를 이기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한테 져도 상관없고, 자존심도 안 상해요.
GQ 스코어를 줄이는 것보다 몰두한 무언가를 하게 되었을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일 것 같았어요.
SW 맞아요, 맞아요. 지금도 점수보다는 제가 약한 부분을 강화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어요. 그렇게 연습하듯이 필드에 나가요.
GQ 지금 몰두하는 건요?
SW 드라이브할 때 슬라이스가 많이 나서 연습하고 있어요. 실내에서 할 땐 깡깡 잘 맞는데 필드만 나가면 슬라이스가 나더라고요. 에임 감이 없어서 OB도 잦고 슬라이스가 잦은 구질이래요.
GQ OB나면 기분이 어때요?
SW 당황스럽죠. OB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판단이 잘 안 서요. 공 치는 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몸이 굳더라고요. 필드에서 안정적인 드라이브를 만들어보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그래서 함께 라운딩 가는 사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죠. 자체 멀리건을 해야 한다고. 뒤 팀만 바짝 쫓아오지 않는다면 연습 삼아 몇 번 더 치고, 그 로스만큼 다른 데서 덜 쳐요.
GQ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동의해요?
SW 99퍼센트 이상 동의해요. 공은 제 마음을 꿰뚫어봐요. 조금만 자만하거나 해이해지고, 딴 생각에 빠져 있으면 공에 표출되어 생각 그대로 날아가요. 마치 제 마음을 들킨 것처럼. 그래서 골프를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심신 수양이라고 하는구나, 그만큼 민감한 스포츠구나 깨닫죠.
GQ 몰랐던 내 모습이 거기서 드러나기도 하던가요?
SW 퍼팅이나 쇼트 게임이 가장 잘 맞는 걸 보면서 느끼죠. 아, 나에겐 역시 혼자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집중해 무언가를 하는 게 잘 맞구나.
GQ 임시완이 분한 캐릭터들은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거든요. 그 인물들 중에서 누가 가장 골프를 잘했을 것 같아요?
SW <런온>의 기선겸요. 몸 쓰는 선수니까요. 러닝과 골프의 연관성?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마라톤이 좀 더 닮았죠. 힘을 빼야 하니까요. <1947 보스톤>의 서윤복이 가장 잘하겠네요.
GQ 임시완은 힘을 잘 뺄 줄 아는 배우이기도 하죠. 힘 빼는 건 타고난 성정인 것 같아요?
SW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살고 있어요. 있는 대로 힘을 주어 잔뜩 판을 벌여놨어요. 콘서트도 시작했고 앨범 작업도 계획 중이고, 영어, 복싱, 춤을 배우고 마라톤도 해요. 여러 사람을 만나서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며 삶의 지혜를 얻어보려고도 해요. 그리고 골프도 해야 되지! 매일매일 바빠요. 꽉꽉 채워진 삶에서 호흡도 빨라졌는데, 아울러 한번 정리가 되면 다시 힘 빠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요.
GQ 지금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는요?
SW 젊을 때, 아직은 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젊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젊을 때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에 집중 하면서 살아봐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버렸어요.
GQ 누군가는 ‘물음표 살인마’라고 부를 정도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트레이서>의 제작진들이 시완 씨에게 준 롤링페이퍼에 “좋은 질문이 좋은 작품, 좋은 연기가 되는 것 같아요”라고 누군가 무기명으로 쓴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SW 아마 감독님이 쓰셨을 거예요. 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분은 감독님이었으니까.
GQ 왜 자꾸 묻는 것 같아요?
SW 완벽에는 끝이 없다는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완벽함에는 끝이 없다, 더 좋을 수 있다, 그 방법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고 늘 생각해요.
GQ 그 곁에는 늘 후회도 함께 놓이나요?
SW 허용된 시간 안에 빈틈없이 치열하게 고민을 했는가로 스스로 당위를 찾아요. 그래서 정해진 시간 안에 최고의 결과가 나왔는가가 중요해요. 만약 시간이 무한대라면, 끝까지 고민하겠죠.
GQ 여전히 초능력 중 ‘되감기’를 고르고 싶어요?
SW 가능하다면요.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이 늘 있어요. 그 걱정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잃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데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면, 그것을 한번 겪어보고 지향점을 간파한 다음 다시 리플레이한다면 밀어붙일 힘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러면 더 마음 편히 임할 수 있겠죠. 실수해도 된다는 안도감도 생길 테고.
GQ OB 난 공을 티 샷으로 되돌리듯이?
SW 그러니까 무한 멀리건 쓰는 거예요. 될 때까지.
GQ 최근에 세계탁구 홍보 대사를 맡으면서 “탁구 영화를 만든다면 김택수가 되겠다”고 했죠. 골프 영화를 만든다면 무슨 역할을 맡고 싶어요?
SW 남자 박세리! 역경을 딛고 극적으로 이기는 역할 너무 하고 싶어요.
GQ 어떤 장면이 욕심나요?
SW 일단, 양말을 벗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