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목격한 워치 메이커들의 현재와 미래의 시간.
지난한 시간을 지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선 워치 메이커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2023 워치스 & 원더스가 개최됐다. 작년, 펜데믹을 거쳐 무려 3년 만에 성공적인 복귀를 치른 만큼 올해 2023 워치스 & 원더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찌르면 콕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몽블랑 다리를 비롯한 제네바 시내 곳곳에는 워치 메이커들의 신제품이 프린트된 깃발이 휘날렸고, 대형 건물과 버스들은 광고판이 되어 도시의 이곳저곳으로 축제 분위기를 실어 날랐다. 도시를 온통 들뜨게 만든 2023 워치스 & 원더스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워치 메이커부터 떠오르는 독립 시계 제조사에 이르기까지 총 48개의 브랜드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일주일간 총 방문객 수는 작년의 약 두 배에 달하는 4만3천 명이었고, 1백25개 국적의 사람들이 시계 왕국으로 모여들었다. #watchesandwonders가 태그된 포스트가 1백80만 개에 달했고, 6억 명 이상에게 도달하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웠다. 특히 아시아 시장의 방문객 수가 50퍼센트 증가했고,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는 1만2천 장의 티켓은 모두 팔렸다. 티켓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35세로, 그중 25퍼센트는 25세 미만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고급 시계 브랜드가 모두에게 더 가까워졌다는 방증이다.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시계를 다시금 불러낸 워치 메이커, 시계를 하나의 오브제로 삼아 조형물과 같이 전시한 이슈 등 연일 새로운 화젯거리가 가득했던 제네바 팔렉스포. 그중에서도 올해의 시계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와 소식을 모았다. 손목 위에 놓인 작은 물건이 도대체 어떤 물성을 지녔는지, 각각의 워치 메이커가 어떤 스토리 텔링을 풀어내는지, 복잡한 시계를 더 친근하고 기꺼이 반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머리카락 하나 정도의 두께만큼 얇은 부품을 담고, 찰나의 순간까지 정확하게 측정하는 완벽한 타임키퍼로서의 시계와 예술적인 터치로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우아한 시계는 모두 흘러가는 시간 속 붙잡지 못하는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새로운 시계들의 향연을 보며 앞으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생각한다면 더 의미 있는 순간이지 않을까?
웰컴 백
2023 워치스 & 원더스에서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보고 싶은 시계들이 방문객들을 반겼다. 모두 각 시계 메이커를 상징하는 모델로 유구한 역사와 많은 사랑을 받은 타임피스들이다. 태그호이어는 까레라 탄생 60주년을 맞아 빈티지한 모델부터 다소 파격적인 모델까지 눈이 즐거운 다채로운 라인업을 구축했고, 매년 프리베 컬렉션을 공개하는 까르띠에는 최초의 탱크 워치인 노말을 부활시켰다. 백미는 IWC가 공개한 인제니어 40 오토매틱. 전설적인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포츠 워치는 수많은 컬렉터들의 관심을 폭포처럼 받았다. 예거 르쿨트르는 아주 이례적이게도 이번 컬렉션 전체를 리베르소 시리즈만으로 채웠다. 2021년, 90주년을 맞이했던 황금비율을 지닌 사각형 시계는 크로노그래프, 스몰 세컨즈, 투르비옹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부스를 장식했다.
손목 위의 우주
예부터 우주는 인류가 꿈꾸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해와 달과 별자리를 관측해 시간을 측정하고 시계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시계와 우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올해 제네바에서도 우주에서 영감 받은 시계가 여럿 등장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앞면에는 회전하는 2개의 달을 넣었고, 뒷면에는 별자리를 표시한 듀얼 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샤넬은 ‘인터스텔라’ 컬렉션을 통해 우주를 닮은 시계를 무려 20개 이상 만들었고, 구찌는 은하수를 빛내는 6개의 보석과 별자리가 담긴 시계를 내놓았다. 끝으로 총총히 박힌 다이아몬드 별자리 주변을 부유하는 마더 오브 펄을 넣은 에르메스까지. 시계 메이커들은 시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낭만적인 우주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미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려는 노력은 시계 업계에서도 유효하다. 파네라이는 재활용 스틸로 제작한 차세대 금속 eSteel™을 적용한 케이스와 재활용 패브릭을 활용한 스트랩 등 세심한 부분에서 자원의 순환을 고민한다. 쇼파드는 재활용 스틸을 활용한 독자적인 소재인 루센트 스틸 A233으로 2023 워치스 & 원더스의 거의 모든 신제품 시계를 만들었다. 2023년 말까지 스틸 워치의 80퍼센트 이상을 재활용 스틸로 만들 것이며, 2025년까지는 이 수치를 최소 90퍼센트까지 높일 예정이라고 한다.
살몬 컬러 다이얼
시계 다이얼 컬러에도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몇 해 동안은 블루 다이얼과 그린 다이얼이 시계 시장을 점령했다. 그런데 패션계에 불어닥친 레트로 열풍처럼 시계 업계에도 복고 바람이 불더니 샴페인 골드와 연어를 닮은 옅은 핑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중성적인 연어 색깔 다이얼의 인기가 뜨거운데, 작년부터 거의 모든 시계 메이커들이 신제품 라인업에 살몬 컬러 다이얼을 올리고 있다. 옅은 핑크와 골드, 그리고 실버 세 가지 컬러를 균일한 크기로 불규칙하게 다이얼에 담은 탱크 루이 까르띠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인덱스를 고명처럼 얹은 튜더 로얄의 살몬 컬러 워치, 1940년대에 처음 탄생한 살몬 다이얼을 소환해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패트리모니 워치에 담은 바쉐론 콘스탄틴, 알프스의 봉우리인 몬테로사에서 영감 받아 ‘몬테로사 핑크’라고 명명한 쇼파드의 다이얼까지.
투르비옹
유독 기술력을 상징하는 투르비옹 워치가 많이 엿보였다. 예거 르쿨트르는 리베르소 라인업에 ‘회오리바람’을 추가했다. 태그호이어도 까레라 60주년을 기념해 투르비옹을 넣었고, 작년에 첫 인하우스 플라잉 투르비옹 무브먼트를 소개한 샤넬은 사자 데코가 들어간 워치를 선보였다. 레트로그레이드와 투르비옹을 한몸에 담고 우아한 도피네 핸즈와 아워 마커를 장식한 바쉐론 콘스탄틴, 빼놓으면 섭섭한 위블로, 모노톤 투르비옹 다이얼에 사파이어 컬러를 포인트로 넣은 불가리까지. 수많은 브랜드가 기계식 시계의 정점이라 불리는 투르비옹 워치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뽐냈다.
대담한 시도
시계 업계에서 고고하고 전통적인 제품만 선보이는 건 아니다. 깜짝 놀랄 만큼 대담하고 초현실적인 시도도 적잖이 펼친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를 다이얼, 베젤, 케이스에 가득 넣은 그랜드 세이코, 다이아몬드를 시계 전면에 가득 채운 파격적인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플라즈마,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오팔을 대담하게 채운 파텍필립, 무지개색 다이아몬드를 채운 위블로, 투르비옹을 둘러싼 루비, 가닛, 오팔이 인상적인 구찌, 투르비옹과 진동 매스를 재창조해 중력을 제어하는 로저드뷔까지. 한계를 의심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뛰어드는 워치 메이커들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시계들이다.
멀티플레이어
시계 메이커이면서 주얼리까지 만드는 브랜드들은 주얼리와 시계를 하나로 합한 아름다운 오브제들을 소개했다. 까르띠에는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판다의 얼굴 아래 블랙 래커 다이얼을 결합한 브레이슬릿을 선보였다. 피아제는 길로셰 기법으로 만든 커프를 깎아낸 후 보석을 세팅한 시계 다이얼을 더해 아름다운 조형물을 완성했다. 사자 머리를 열면 선물 같은 다이아몬드 다이얼이 등장하는 샤넬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행사장에 방문한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진귀한 보석들을 세팅한 팔찌에 탱크 다이얼을 결합한 탱크 주얼리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화려한 주얼리와 시계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들의 활약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유니크 다이얼
직경 40밀리미터, 즉 4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원은 때로는 드넓은 캔버스가 되기도 한다. “롤렉스 시계 맞아?”라고 반문할 정도로 독특한 다이얼의 오이스터 퍼페추얼 데이-데이트 36. 알록달록한 퍼즐들과 요일 창에는 ‘LOVE’, ‘PEACE’, ‘HOPE’와 같은 단어가, 날짜 창에는 이 시계만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31개의 감정을 담은 이모티콘이 표시된다. 우리 삶이 매일 맞춰나가는 퍼즐 같다는 의미를 담았다. 파텍 필립은 제네바호의 벨 에포크 유람선을 그랑푀 에나멜 기법으로 그렸고, 위블로는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를 상징하는 스마일 플라워를 담은 시계를 선보인다. 끝으로 에르메스는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네앙브뉘가 그린 만화를 시계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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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 김성지